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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탕하게 웃어도 놀이터 스몰톡이 제일 어려워

집 안과 밖, 진짜 나는 누구일까. (2)

by 정벼리

물건을 환불해야 할 때에는 동생을 앞세우고, 경비실에 연락할 일이 있을 땐 남편을 앞세운다. 나는 소심해서, 어제 산 물건을 환불해 달라는 말도, 아랫집 아저씨가 자꾸 베란다 너머로 담배를 피워서 불편하다는 말도 입밖에 꺼내놓기가 너무 어렵다. 내가 어릴 적, 엄마아빠는 나에게 종종 이렇게 말씀하시며 혀를 차셨다.


“저렇게 대가 약해서 어찌할꼬…"


엄마아빠의 걱정이 무색하게, 나는 이제 사무실에서 무려 ‘호탕하다’는 소리도 종종 듣는 씩씩한 사회인으로 잘 자라났다.


직장에서의 나는 목소리도 크고, 웃음소리도 크다. 의견도 아이디어도 퐁퐁 내어놓고, 대체로 입장도 분명해서,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끝까지 해내는 편이다. 어쩌다 부당한 상황에 처하거나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고 해버리기도 한다.


아이가 아직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 낮시간 동안 친정엄마가 아이를 돌봐주셨다. 가끔 엄마가 여행이라도 가시면 하원 이후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며칠씩 육아 단축근무를 사용하고는 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오후 4시 퇴근을 앞두고 차키와 휴대폰을 챙기다가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불타는 육아기를 애진작에 끝내고, 이제는 자녀가 모두 성인이 된 동료가 애잔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집 당직 시작이네요. 그맘때는 퇴근이 또 다른 출근이지? 청소에, 빨래에, 애는 보채지, 매일 당직일 거예요!"


나는 입꼬리를 축 내린 채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요, 가면 애 하원시켜서 놀이터에 가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어요."

"왜? 여자애인데도 험하게 놀아요?"

"아니요. 그 시간이면 동네 애엄마들이 전부 놀이터에 모여있더라고요. 애들은 막 어울려 노니까 엄마들끼리 수다 떨고 그러는데, 전 모르는 사람들하고 스몰톡 나누는 게 기 빨리고 힘들어요."


동료는 말도 안 된다며 깔깔 웃어넘겼다. 업무 미팅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금방 농담을 나눠가며 대화를 트는 편인 내가 고작 놀이터 스몰톡이 어려워 집에 가는 길에 한숨을 내쉰다는 게 아마 믿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그맘때 나에게 놀이터는 정말 공포스러울 만큼 어색한 공간이었다. 더 어릴 때는 아이들끼리 상호작용이 별로 없으니 놀이터에 따라 나가더라도 내 아이만 지켜보면 됐는데, 놀이터에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나이가 되니 그 아이들의 엄마들도 무리가 되어 모이게 되더라. 첫째는 몇 살인지, 방문 교육은 어떤 걸 하는지, 요새 미세먼지 수치가 왜 이렇게 안 좋은지, 별로 어려운 이야기는 아닌데도 거기 껴서 대화하는 것 자체가 그렇게 어렵고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나마 하원 후 놀이터라도 데려가야 뛰어놀지, 한 번 집에 들어가면 꼼짝도 안 하고 앉거나 누워서 손으로만 사부작거리는 아이인지라 영유아검진에서 늘 대근육 발달이 늦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아이의 신체발달을 생각하면 그깟 놀이터, 안 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 멀리서 애는 (달리기가 느리니까) 무리에서 한 박자씩 뒤떨어진 채 종종종종 뛰어다니고, 나는 엄마들 사이에서 어색하고, 수줍고, 반박자 늦게 이해하고, 딱 그만큼 늦게 대답하고 있었다.


놀이터 스몰톡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사무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터져 나오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놀이터에서는 맥을 못 추고,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린 가짜 웃음으로 바뀌고는 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 쌀 씻어 안칠 힘도 없이 기가 쪽 빨린 채로, 아이가 소파 위에서 노곤노곤 드러누워 있는 동안, 나는 그 아래 거실 바닥에 한참을 널브러져 있었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아마도 어릴 때부터 존재했던 수줍음 많고, 타인에게 말 거는 게 어렵고, 뭔가 요구하는 건 더 힘들어하는 그 모습이 원래 나였을 것이다. 그 모습으로는 거칠고 험한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아무래도 힘드니까, 나의 무의식은 으하하하, 크게 웃고 말하는 '대외용 자아'를 만들었나 보다. 그렇다고 해서 후자가 진짜 내가 아니라고 할 것은 없지 않나. 그 새로운 얼굴 덕택에 씩씩하게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제 몫을 하고 있으니, 너 잘하고 있다, 인정받지 못할 이유도 없다.


호탕하게 웃는 나와 입꼬리만 애써 끌어올리는 나, 둘 다 모두 진짜 내 모습이다. 이 모습이든 저 모습이든 스스로에게 예쁘다, 기특하다, 오늘도 잘했다, 토닥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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