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 하늘과 땅, 그리고 우주
- 소요 시간: 도사곡 자연휴양림 → 예미랩 차량 약 20분(12km) → 가곡광산 약 20분
- 주요 동선: 도사곡 → 예미리 입구 → 예미랩 지하 실험동(AMoRE·COSINE 연구실 등)
[3] 예미랩 ― 지하 1,100미터, 우주의 어둠을 탐색하다
이동: 도사곡 자연휴양림 → 예미랩 차량 약 20분(12km) → 예미리 가곡광산 차량 약 20분(12km)
포인트: 세계 최대 규모 지하실험실 중 하나 (깊이 약 1,100m)
운영: 한국천문연구원(KASI) · IBS 지하실험연구단
연구 분야: 암흑물질, 중성미자, 지하입자물리, 방사선 배경 저감 연구
예약: 일반 방문은 제한적(IBS 사전 승인 필요)
어릴 적, 친구가 내 뒷목에 손가락을 대고 묻곤 했다. “어느 손가락이게?” 나는 감으로 맞혀보지만, 정답은 늘 알 수 없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그 느낌이 과학자들이 우주를 연구하는 방식과 닮은 것 같다. 지금 과학자들은 우리가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는 우주의 물질을 탐색하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찾아 나선 곳이, 지하 1,100미터 아래의 조용한 실험실 예미랩(Yemilab)이다.
예미랩은 강원 정선의 한덕철광 폐갱도를 개조해 만든 세계적 규모의 지하연구시설로, 이탈리아 그란사소(LNGS), 캐나다 스노랩(SNOLAB), 일본 가미오카와 함께 세계 5대 지하 실험소로 꼽힌다. 과학자들이 지하로 내려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지상에서는 손바닥 크기 면적을 초당 한 개꼴로 통과하는 우주입자 ‘뮤온(μon)’이 지하에서는 하루에 단 두 개만 지나간다. 그렇게 외부의 모든 소음을 차단해야만, 우주가 남긴 미세한 신호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모와 안전화를 착용하고, 철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철컹거리는 소리가 몇 차례 울리고 나서야 문이 열렸다. 약간 눅눅하지만 정지된 듯한 공기, 그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니 지하 1,100미터 실험실의 풍경이 펼쳐졌다. 벽과 천장은 거칠게 드러난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공간 자체는 안정적이었다. 형광등의 희미한 빛 아래에 배관과 전선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벽에는 ‘방사선 차폐구역’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생각보다 “지하의 이질감”은 없었다. 오히려 차분하고 고요했다. 소리 하나 없이, 마치 시간의 흐름이 느려진 듯한 정적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첫 번째 방문한 연구실은 아모레(AMoRE) 실험실이었다. 벽면 전체가 구조물인 커다란 실험실이었다. 이곳에서는 몰리브덴-100(¹⁰⁰Mo) 결정 속에서 ‘이중 베타붕괴’를 관찰한다. 보통 베타붕괴는 한 번의 전자 방출로 끝나지만, 이중 베타붕괴는 두 번 연속 일어나는 드문 현상이다. 과학자들이 찾는 건 그중에서도 중성미자가 전혀 방출되지 않는 경우, 즉 ‘무중성미자 이중 베타붕괴’다. 만약 이 현상이 실제로 관측된다면, 중성미자가 자신의 반입자인 마요라나(Mayorana) 입자라는 사실이 증명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입자물리의 발견이 아니라, “왜 우주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단서가 된다. 물질과 반물질이 완벽히 대칭이라면 우주는 처음부터 0이 되어야 했다. 마치 전자와 양성자가 결합해 전하가 사라지듯 말이다. 그러나 우주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비대칭의 이유를 찾는 실험이 바로 아모레 실험이다. 다시 말해, 이 연구는 “왜 반우주는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이며, 상상을 더해 보자면 마블(Marvel) 세계관의 멀티우주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설명이 되기도 하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코사인(COSINE) 실험실이었다. 은색 철문을 열자, 빨간빛이 새어 나오고, 그 안에는 정교한 장비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이곳에서는 우주의 또 다른 수수께끼인 암흑물질을 직접 관측한다. 암흑물질은 전체 우주 질량의 26%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 번도 직접 본 적은 없다. 이곳에서는 검출기에 탈륨(Tl)을 섞은 요오드화나트륨(NaI) 결정을 넣고 암흑물질이 이 결정과 충돌하기를 기다린다. 만약 암흑물질의 후보인 윔프(WIMP)가 결정의 원자핵과 충돌한다면, 아주 미세한 섬광이 일어날 것이고, 과학자들이 그 희미한 빛을 포착해 윔프의 정체를 밝혀낼 것이다.
과학자들은 암흑물질이 우주의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둘러싼 공기와 대기, 심지어 우리 몸과 지구의 내부를 통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암흑물질은 거의 모든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존재를 직접 감지하기 어렵다. 코사인 실험은 바로 그 미세한 충돌의 흔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우주”를 증명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예미랩은 단순한 입자물리를 위한 실험실만은 아니였다. 산업의 흔적이 과학의 터전으로 바뀐 이곳은, 과거의 철광이 미래의 지식 기반으로 전환된 상징적 공간이었으며, 지역 학생과 주민을 위한 과학문화 프로그램, 고교 실험 교육, 영화 촬영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지하 1,100미터, 암흑 속의 실험실에서 어린시절 손가락 놀이를 하듯 과학자들은 우주를 탐험하고 있다. 우주의 손가락 손끝이 우리 세계를 스친다면, 아마 우주는 잠깐 반짝이며 자신이 존재한다는 빛의 흔적을 남길 것이다. 과학자들은 예미랩에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 참고문헌: Kim, Y., & Lee, H. S. (2024). Yemilab, a new underground laboratory in Korea. AAPPS Bulletin, 34(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