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별거가 지금이 처음은 아니다.
외박이 체질인 남편은 부부싸움을 하거나 본인이 궁지에 처할 때면 잠수를 탔고, 내가 수소문해서 연락이 닿으면 마지못해 들어오곤 했다.
짧게는 이삼일, 길게는 열흘정도까지 갔던 것 같다.
툭하면 집 나가는 것이 나도 지겨워서 한 번은 찾지도 않고 연락할 생각도 안 했더니 그대로 6개월의 별거가 되었던 적이 있다.
6개월 정도가 되었을 때 인내력이 바닥 나서 결국 또 내가 먼저 연락을 해서 남편이 돌아왔었다.
내가 습관을 잘못 들인 건지 남편이 지독한 회피성향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친구들은 물론 친정식구들, 딸과 아들까지 내가 이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많이 답답해했다.
나는 정말 왜 이혼하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이혼녀'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내세울 것 하나도 없는 나에게 이혼녀라는 딱지까지 붙으면 나는 인생 전체가 실패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이혼은 처음부터 인생의 옵션에 없었지만 그게 전부라고 할 수는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생활비를 잘 주지 않는 남편도 가끔 돈을 줄 때가 있었는데 얼마 되지 않는 그 돈이 나에게는 너무 귀했다.
보험영업, 부동산업 등으로 수입이 일정하지 않으니 내 생활은 늘 궁핍했고, 대리운전도 해 보았는데 소득에 별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취객을 상대하는 게 생각보다 고달팠다.
3주 정도 하다가 대리운전 회사 여사장이 자기 마음대로 수수료를 올려서 공제하는 악덕에 질려버려 그만두었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사정을 하든 협박을 하든 남편에게서 적은 금액이라도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
남편 없이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더라면 진작에 이혼했을 수도 있겠다 싶으니 결국 돈이 나의 이혼을 막아준 셈이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지금은 상대적으로 그때보다 형편이 나아져서 남편이 주는 돈에 구질구질하게 기댈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버는 돈만으로 빠듯하게나마 먹고살 수 있으니 이제는 남편의 '쓸모'에 대해 객관적이고 심각하게 생각하게 됐다.
그 생각이 나를 오늘의 별거에 이르게 했다.
집을 나가는 마지막 날까지 남편은 모든 원인을 나에게 떠넘겼다.
남편 지갑에 있는 돈을 받을 수 있는 건 모두 아내인 내가 하기 나름이라며 내가 잘못해서 자기가 돈을 안주는 것이라고 했다.
여우짓을 해서라도 자기 기분을 맞춰주면 안 줬겠냐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내세울 때는 말 같지 않아서 입을 닫았다.
생활비는 당연히 줘야 하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이런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나 싶지만 그런 사람을 선택한 게 나 자신이니 할 말이 없다.
그러고 보면 남편은 평소에 남 탓을 자주 했었다.
바람을 피우다가 발각되었을 때도 처음에는 꽃뱀에게 잘못 걸린 거라며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으나 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니 나에게도 원인이 있다는 식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바람피울 수 있다는 거냐고 따져 물으니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꼰대 같은 말을 했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남편과 맞서면 결국 나만 잔뜩 약이 오르고 억울한 패잔병이 되어 버렸다.
싸워서 마음이 다치느니 차라리 투명인간처럼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남편의 입에서 '살림하는 여자가 '라는 말이 나오면 견딜 수 없을 만큼 화가 났었다.
남편의 역할도 제대로 안 하면서 직장 생활하는 나에게 전업주부의 역할까지 요구하는 게 참을 수 없었다.
남편은 뭐가 그리 당당했을까.
아니면 당당한 척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걸까.
남편과는 거의 돈 때문에 싸웠는데 아주 가끔 나에게 굉장히 미안해할 때가 있었다.
늘 당당했던 남편이 그때는 왜 그렇게 미안해한 걸까.
지금 생각하니 앞뒤가 안 맞았던 남편의 행동에 궁금증이 생기네.
분명 나한테 미안할 일이 있어서 그런 걸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