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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2. 2021

직장인이 이솝우화를 함부로 믿으면 안 되는이유

'정답'이 없는 직장생활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까?

이솝 우화의 기원


이솝은 고대 그리스에 살았던 노예이자 이야기꾼이었다.

재치가 넘치고 똑똑한 그는 노예 신분에서 벗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가 뛰어난 그는 여러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우화를 많이 남겼다. 그러나 이솝 우화를 그가 직접 집필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들이 사람들에 의해 구전되면서 17세기 프랑스 시인에 의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이솝 우화는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한다.

친숙한 동물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각각의 단편 이야기들은 전 세계의 어린이 도덕성 교육을 위한 인기 교재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엔 1895년 <신정심상소학>이라는 신식 교과서에 처음 실렸다. 나 또한 어릴 적 이솝우화를 보고 세상을 미리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세상이 많이 변했다.

고전은 시대와 세월을 막론한다 하지만 그러하지 않은 부분도 분명 있다.


시대의 변화를 먼저 피부로 맞이하는 직장인에겐 더 그렇다.

어렸을 때 읽었던 이솝 우화를 그대로 현실에 적용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이솝우화 중엔, 그의 자전적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그가 노예였을 때. 주인이 짐을 잔뜩 가지고 먼 여행을 떠나는데, 다른 노예들은 저마다 가벼운 짐을 들려고 꾀를 부렸다. 그런데 이솝은 가장 크고 무거운 짐을 들었다. 다른 노예들이 이솝을 비웃었다. 

"저거 바보 아니야? 가장 무거운 짐을 들게?"


그러나 고된 여행길이 이어지는 동안 이솝의 짐은 점점 가벼워졌다.

그가 고른 짐은 식량이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다른 노예들은 그의 지혜에 깊이 감탄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읽고, 어렸을 때 나는 이솝에게 경외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직장인인)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솝이 직장인이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 이유는 (직장인이라면) 이미 간파했을 것이다.


21세기.

이솝 과장. 큰 프로젝트가 하나 주어졌다. 팀장은 팀원들에게 각자 맡을 업무를 먼저 고르라고 했다. 다른 팀원들은 저마다 부담이 없는 일을 고르려 골몰했다. 이솝은 가장 난도가 높은 일을 택했다. 초기 프로세스를 셋업 하는 일이므로,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그 일은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대로 처음엔 힘들고 어려웠지만, 프로젝트의 3분의 1 정도가 지나자 일이 쉬워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야근을 밥 먹듯 하던 근무 시간에도 서서히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솝 과장은 이솝 우화처럼 아름다운 결말을 맞이했을까?

아니다. 일이 점점 줄어드는 그를 보고 회사와 조직과 팀장은, 또 다른 일을 주었다. 다른 팀원들은 초반에 고른 일을 그대로 하고 있는데 이솝 과장은 자신이 하던 일에 또 다른 일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야근은 오늘도 끝나지 않고 있다.


직장인이 이솝 우화를 함부로 믿으면 안 되는 이유


이처럼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더불어, 직장인이란 특수한 조직은 '도덕성'과 '재치'를 뛰어넘는 세계이자 또 하나의 우주다. 괜한 잔머리나, 다른 곳에서 통할법한 지혜는 무력화되기 일쑤다.


직장에서 통하지 않을, 그러니까 직장인이 이솝우화를 함부로 믿으면 안 되는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떠올려본다.


1. 개미와 베짱이


겨울을 대비해 음식을 모으는 개미와 따뜻한 계절 동안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낸 베짱이 이야기.
겨울이 오자, 베짱이는 굶주림에 시달리다 개미에게 음식을 구걸하고 개미는 베짱이의 게으름을 비난한다.


어렸을 때에는 진리와도 같은 이야기였으나 시대가 많이 변했다.

오히려 베짱이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승진을 대비해 열심히 일한 사람, 주변 후배들을 잘 챙겨주던 선배와 상사는 회사에서 잘리고, 월급루팡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임원진급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 열심히 하자고 휴가도 반납하고 일하는 사람, 그러니까 나중을 생각해서 지금을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회사와 조직은 감사함을 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휴가를 반납하고도 일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땐 욕만 먹고 끝날뿐이다. '나 휴가도 반납했는데...'란 하소연은 그 어디에도 할 곳이 없고, 그 이야기를 들어줄 이도 없다. 각자가 알아서 쉬어야 하고, 알아서 휴일이나 휴가를 챙겨 먹어야 한다.


이솝 우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도덕성을 위해 어느 한쪽으로 쏠려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개미와 베짱이 그 둘 모두가 되어야 한다. 열심히 겨울을 대비하면서도 따뜻한 계절을 만끽해야 하는 것. 


그 누구도 이것을 챙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2. 금도끼 은도끼


'금도끼 은도끼' 또는 '헤르메스와 간사한 나무꾼'이라고도 불리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전래 동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금도끼와 은도끼를 자신의 것이라 말하지 않고, 자신의 것이 쇠도끼라고 말한 나무꾼은 그 모든 도끼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금도끼 은도끼'가 우리나라 고유의 전래 동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고대 그리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화이며,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에 다양한 형태로 전해진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정직'과 '겸손'의 교훈을 이야기한다.

나는 '정직'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다만, '겸손'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선 언제나 '드러낼 때'와 '드러날 때'를 잘 구분해야 한다.

드러낸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성과를 알리는 것이다. 드러난다는 건 내가 그러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알아서 인정해준다는 말이다. 과하게 드러내는 사람들은 잘난 척한다던가, 정치질을 한다던가, 광만 판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반대로 지나치게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가만히 있는 사람은 아무리 일을 잘해도 묻히고 만다.


직장에선 드러내야 할 땐 과감히 드러내야 하고, 때론 드러날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 금도끼가, 저 은도끼가 네 것이냐고 누군가 물을 때. 무조건 아니라고 하지 말고, 곰곰이 그 질문의 요지를 잘 헤아려야 한다. 직장은 나 하나의 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내가 한 일이, 어떤 일에 나도 모르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고 의도치 않게 처리한 일이 성과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나와 관련된 성과라면. 그러니까 드러내야 할 때라면 과감하게 그것은 내 것이라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구분하는 잣대는 '정직'이 될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에 광을 팔았다가는 성과는 성과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오늘 나는 직장에서 금도끼와 은도끼를 만들어 내는 일에 기여를 하고 있는지.

내 일을 다시 한번 더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3. 여우와 두루미


심술 가득한 여우와 두루미의 음식 대접 이야기.
여우는 두루미를 초대하여 납작한 접시에 수프를 내밀어 잘 먹지 못하게 하고, 반대로 두루미는 여우에게 긴 병에 담긴 수프를 내어 수프를 먹지 못하게 했다. 남에게 상처를 주면 같은 방법으로 상처를 받을 수 있고,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역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

곧이곧대로, 상대방을 골탕 먹이는 게 아니라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을 헤아릴 때 그것을 떠올리는 것이다.


직장엔 저마다의 KPI (Key Performance Index)가 있다.

즉, 각자의 목표다. 이 목표는 조직의 것일 수도 있고 개인의 것일 수도 있다. 직장이라는 곳이 참 재미있으면서도 잔인한 게, 각 조직의 KPI가 다르고 그것들이 상충하며 회사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월급쟁이들끼리 지지고 볶을 수밖에 없다.


이 KPI에 따라 의도치 않게 나는 '갑'이 되거나 '을'이 되기도 한다.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다. 돌고 돈다. 때에 따라, 그러니까 내가 아쉬울 때 나는 '을'이 되고 상대방이 아쉬울 땐 내가 '갑'이 된다.


내 KPI로 상대방이 곤경에 처할 경우가 있다.

이러한 때 그것을 빌미로 상대방을 괴롭히거나 압박한다면, 반대의 경우가 되었을 때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여우인 내가 두루미를 초대했다면 두루미가 먹기 좋은 그릇을 내어 놓는 게 맞다. 반대로 두루미인 내가 여우를 초대했다면 상대방의 어려움을 미리 간파하여 배려 가득한 음식과 그릇을 내어 놓는 게 좋다.


설령, 나에게 맞지 않는 그릇을 받는 푸대접을 받더라도.

나는 그에 동요되지 말고, 추후엔 상대방을 배려한 업무 처리를 하는 것이 좋다. 물론, 내 KPI가 먼저다. 무조건 그것을 양보하라는 것이 아니라 합치점을 찾을 수 있는지, 내가 양보하고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살피라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을 배려한 그릇을 내어 놓으면, 상대방도 그러하게 되어 있다.

그러하지 않은 상대방이 있다면? 상종하지 않을 사람으로 거르면 된다.


철저히 업무적으로만 대하면서.


4. 농부와 독사


이솝우화의 176번째 이야기. 한 농부가 눈 속에서 얼어 죽어가는 독사를 발견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옷 속에 넣어 품는다. 그러나 독사는 농부를 물어 죽게 한다. 악에 대한 친절은 헛된 일이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개인적인 욕심과 야망에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선배나 상사에 공개적으로 대들기도 하고, 나 혼자 돋보이자고 정치적으로 행동한 적이 꽤나 많다. 사실, 그때는 내가 그런 사람인지 몰랐다. 그저, 나에게는 내가 맞아 보였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나 충고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잘못을 깨달았던 계기는 바로 선배들의 친절이었다.

그 선배들은 나를 품었다. 경거망동하는 나를 농부가 독사를 품듯 품은 것이다. 그러자 나는 정신을 차렸고, 내 안에 있는 독이 주위 사람뿐만 아니라 나도 서서히 죽어가게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악에 대한 친절은 헛되지 않다.

그것을 돌려받으려 하거나, 본전 생각을 하면 헛될 수 있다.


직장엔 수많은 독사가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지나 보면 결국 그 독은 스스로를 향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혹, 독을 품은 후배가 있거나 경거망동하는 팀원이 있다면 친절로 포용해주길. 그래서 스스로 그 독을 발견하고 깨달아 그 인내와 사랑이 계속해서 전해지길.


사실, 모든 직장인은 처음부터 독사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직장 생활이 사람들을 독하게 만드는 것일 뿐.


5. 북풍과 태양


어느 날 거리를 지나가는 나그네의 상의를 벗길 수 있을지를 놓고 북풍과 태양이 힘겨루기 승부를 벌였다.
가장 먼저 북풍이 바람을 힘껏 불면서 상의를 벗기려고 했다. 그렇지만 추위를 싫어했던 나그네가 자신이 입고 있던 상의를 눌렀기 때문에 북풍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태양이 햇빛을 쨍쨍 내리쬐었다. 그러자 나그네는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입고 있던 상의를 벗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태양이 힘겨루기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빠르게 서두르는 것보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하는 편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메시지는 힘보다는 따뜻하고 다정한 태도로 사람을 움직이면 그 사람은 스스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우선 '속도' 측면에서 생각해보자면.

직장은 우리가 성과를 낼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열등생이 우등생이 될 때까지, 학교처럼 응원을 해주거나 지긋하게 그 과정을 용인하지 않는다. '결과'가 인격인 곳이 직장이다. 만약, 태양이 나그네를 덥게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면 북풍이라도 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주니어 때 내게 조언을 주었던 상사의 말을 속으로 되뇐다. 유럽 시장에 처음 주재원으로 부임했을 때 너무나 어려운 시장 상황에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상사는 위로와 충고를 동시에 주었던 것이다. 


그 말은 바로, '너무 서두르지는 말고, 천천히 빨리 개선시켜 봐'였다.

문장 안에 있는 모순과 같이 내 감정도 역설적으로 웃음과 진중함이 뒤섞였던 기억이 난다.


더불어, 상대를 이해시키고 어르고 달래서 이끌어가야 하는 게 우선이지만 리더가 되면 때로는 태양이 아닌 북풍으로 팀원들을 이끌어야 할 때가 분명 있다.

물론, 이러한 때는 그 결과에 온전히 리더가 책임을 져야 한다. 확신이 있다면, 이게 더 맞고 더 좋은 길이라면 태양이 아닌 북풍을 활용할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나는 이솝우화를 부인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이솝의 이야기는 충분히 재치와 교훈을 얻기에 좋은 이야기다.


다만, 그것은 '정답'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권선징악이 담긴 이야기나, 우화에 나오는 '정답'은 현실 세계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왕자와 공주가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을 믿는 사람도 거의 없지 않은가.


직장생활엔 '정답'이 없다.

단지, '오답'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솝우화에 빗대어 직장생활을 한다면 정답은 없고 오답만 있는 직장생활 속에서 마음의 상처만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이 없는 직장생활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까?

자신만의 '해답'을 찾거나, 적어도 '오답'은 만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솝우화는 어렸을 적 추억으로 고이 남겨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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