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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10. 2022

메타인지, 나에게로의 경청

그렇게 메타인지의 시작이 된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을까?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

프로나오스(앞마당)엔 이런 말이 새겨져 있었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너무나 통용되어서 재론의 가치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더불어 사람들은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까지 한다. 거대한 소비의 물결과 알고리즘이 팽배한 이 시대에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사회가 부여해주는 페르소나와 알파벳을 돌려가며 설명하는 세대의 특성, 출처를 알 수 없는 여러 심리검사 등이 과연 나를 얼마나 설명해낼 수 있을까?


실상, 사람들이 방황하는 이유는 '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을 완벽히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르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아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우리는 다 알 수가 없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아는가?

모든 것은 나아가고 있고, 아무것도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러한 법칙엔 '나'라고 예외가 아니다. 내가 알던 어제의 나는 오늘과 다르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와 분명 다를 것이다. 신체가 노화 하든, 이것을 좋아하던 마음이 저것을 좋아 하든. 어떤 법칙과 기준으로도 '나'와 '내'가 같다는 설명은 성립될 수 없고, 그 어떤 증거로도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가 너무나도 많다.


이제, 다시 아폴로 신전에 있던 질문을 되뇌어 보자.

'너 자신을 알라.'


이것은 인류에게 주어진 지상 최대의 과제이자, 풀리지 않는 신비일 수도 있다.


의식을 의식하고,
그것을 의심하자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은 데카르트가 방법적 회의 끝에 도달한 철학의 출발점이자 하나의 명제다. 그의 논리는 '우리가 의심하고 있는 동안 우리의 (의심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걸 의심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의심'은 하나의 '의식'이며, 이 '의식'을 다시 '의심'함으로써 스스로 완전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더 완전한 것을 지향하게 된다. 무엇이 더 완전한 것인가.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추구하는 바와 위안을 얻는 바가 다르며, 스스로 존재하고 있다는 확신을 확고히 하는 데 있어서의 경중은 그야말로 주관적인 것이다. 


나는 데카르트의 이러한 고민이, '너 자신을 알라'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답은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자신을 완벽히 알 수 없고, 명쾌히 결론 낼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고 또 의식해야 한다. 사실, 이것은 우리 일상에서 반복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뇌리에서 잊히기 마련이다. 숨을 쉬고 있는 우리가 공기의 존재를 잊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나를 알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결론 내려하지 말고, 답을 안다 생각하지 말고.

의식을 의식하고, 그것을 의심해야 한다.


메타인지,
나에게로의 경청


이렇게 나 스스로를 '의식'하고 '의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나에게로의 경청'이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데 그것은 그야말로 귀 기울여 잘 들어야 한다. 요즘처럼 외부가 시끄러운 시대에는 더 그렇다. 보고 즐길 게 너무나도 많고, 우리의 의식을 빼앗아 가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의식'은 자극적이고 단순한 것에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앉은자리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짧은 동영상으로만 몇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네 의식을 다른 무언가에 통째로 빼앗길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식을 의식하지 못하고, 더불어 의심하지 못한다. 그것이 되풀이되면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져 간다.


메타인지의 시간을 늘려야 한다.

나를 '의식하고 의심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메타인지다.


이 시간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때로는 세상과 단절을 해야 한다.

단절은 곧 나 혼자만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혼자 있을 시간이 별로 없다. 먹고살기 위해선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면 그 안에서 제 역할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점점 더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각박한 세상에서, 나를 메타인지하려면 혼자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없어도 만들어야 하고, 어려워도 그리해야 한다.


메타인지는 결국 나에게로의 경청이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질문과 의심을 정리하고, '나'라는 존재를 조금씩 알아가는 그 과정.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있다. 메타인지를 통해 또 다른 나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우리는 나라는 실체에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경청'의 '경'은 '기울이다'라는 뜻이다.

내 마음에, 내 영혼에. 그러니까 나 자신에 몸과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내 모든 걸 기울여 잘 듣고 이해해줘야 한다. 




세상엔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소리치는 것들이 참 많다.

그 아우성 속에 우리는 자칫 우리 안에 있는 스스로의 목소리를 놓치기 일쑤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우리는 소란한 소리에 이끌려 살 수밖에 없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또는 내게 독이 되어도.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삶이 힘들다고 투덜대며 나아가는 것이다.


삶이 가장 어려운 때를 돌아보면, 그것은 나 자신이라는 존재의 선명함과 반비례한다.

나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고, 의심하지 못하고, 경청하지 못할 때. 내가 가장 흐릿할 때. 삶의 무게는 더 무겁다.


나에게 기울어야 한다.

나를 들어야 한다.

나를 의식하고 의심해야 한다.


나에게로의 경청은, 그렇게 메타인지의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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