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이 무엇인가를 다시 물으며...
본질을 잃고
다른 것으로 채워지는 것들
휴대폰으로 골프 게임을 할 때였습니다.
하루하루 레벨을 높이는 재미가 상당했죠. 드라이버 거리와 정교한 타격 등, 경쟁을 하고 반복을 하는 과정 중에 실력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게임회사가 유료 아이템을 속속들이 판매하면서부터, 그 게임은 실력의 대결이 아니라 아이템 대결이 되었습니다. 노력하여 이룬 나의 드라이버 비거리를 비웃듯, 아이템 하나면 두 세배 먼 곳으로 공을 보내는 경쟁자와 저는 게임이 되지 않았습니다.
글쓰기 초기.
글쓰기를 마음먹고 어디에다 무엇을 써야 하나 고민이 깊은 때였습니다. 당장 글을 쓸 수 있는 곳은 블로그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언제든지 쓸 수 있으니 자연스레 글을 쓰게 된 것이죠. 그런데 어느 날 정신 차려 보니, 저는 글을 쓰고 있지 않고 블로깅을 하고 있었습니다. 즉, 글쓰기보단 블로그를 꾸미거나, 메뉴와 게시판 등을 정렬하고 구축하는데 더 힘을 쏟고 있던 겁니다. 더 어떻게 하면 검색에 더 노출이 될지, 수많은 이웃을 가진 블로거의 비법은 뭔지를 궁금해하며 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를 잊어 갔습니다.
SNS는 시대의 화두입니다.
안 하는 사람이 이상한 시대.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말하는 사람이 머쓱할 정도로, 갖가지 마케팅과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픈 사람들의 욕구로 SNS는 세계적인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존재를 알리고픈 욕망의 크기는 제어되지 않습니다. 보정 어플을 당연시할 정도로 사람들은 자신을 왜곡합니다. 조회수와 좋아요, 팔로우를 위해서라면 노출은 기본이고 자극적인 말과 콘텐츠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성됩니다.
즐거운 게임이, 글쓰기의 다짐이,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어쩌다 그 본질을 잃고 다른 것으로 채워졌는가. 열심히 노력하던 사람은 아이템 앞에서 무너지고, 글쓰기보단 다른데 신경을 더 쓰고, 자신을 뭉개고서라도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상황의 역설.
오로지 글로 승부하는 곳
이런 제게 브런치가 다가왔습니다.
아이템도 필요 없었고, 뭔가를 꾸미지 않아도 되었으며 나를 날씬하게 보이게 하거나 보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썼습니다. 쓰고 또 썼습니다. 내 글이 부끄럽고, 하찮아 보이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썼습니다. 글을 쓰는 그 시간에 저는 저를 만나고, 저를 고찰하고, 저를 포용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글이 쌓였고, 쌓인 글들은 전구 하나하나가 되어 빛을 발했습니다. 그 빛은 네온사인의 그것과 같이 제 세계관을 비추는 싸인(Sign)이 되어 제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제가 브런치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브런치는 기본적으로 조회수나 구독자를 늘리는데 목적이 있는 플랫폼이 아닙니다.
그것을 좇을 때, 글쓰기의 본질은 소멸합니다. 본연의 가치를 차곡차곡 모을 수 있는 곳이 브런치라면, 우리는 응당 누군가의 '좋아요'를 바라기보단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글에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광고 없이, 현란한 메뉴 없이. 오로지 글쓰기를 독려하는 플랫폼은 만나기 드뭅니다. 온갖 볼거리가 만연한 시대에 '텍스트'에 투자하고 그것을 활성화시키려는 시도도 거의 없다는 걸 볼 때, 저는 브런치를 만나게 된 것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잘 쓰지 않아도, 조금 부족해도 메인에 걸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그 마음에도 경의를 표합니다.
[종합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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