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표 101가지 삶의 지혜>
소비를 부추기는 시대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하루 평균 약 1,600여 개 이상의 광고에 노출된다는 결과가 있단다.
전통적인 'ATL(Above the line)'과 'BTL(Below the line)' 광고 외에, 디지털 광고까지 따라붙는 최근엔 아마도 이보다 더 많은 광고를 우리는 마주하고 있을 거야.
아빠가 눈에 보이는 모든 건 (아니, 설령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이라 해도...) 모두 돈과 연관 지어 보는 습관을 들이라고 했지?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미디어를 예로 들어 보자. TV 속 모든 프로그램은 광고를 기반으로 해. 신문과 잡지, 인터넷 속 모든 페이지 또한 예외는 아니야. 광고의 목적은 한 기업의 브랜드나 제품을 알리는 것이겠지. 그저 알리고 끝이 날까? 아니야. 우리가 소비할 때까지, 그러니까 그 제품이나 서비스를 살 때까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할 거야. 요즘은 알고리즘이란 것이 생겨나서, 한 번이라도 검색하거나 관심을 기울인 제품 배너는 죽을 때까지 우리를 따라올 기세이고, 그 기세는 아마도 결제 버튼을 눌러야 끝날 것 같아. 이처럼, 모든 알고리즘의 끝은 결제버튼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그러다 보면, 사고 싶지 않은 제품도, 필요 없는 제품도 정신 차려보면 배송이 되어 집 앞 문 앞에까지 와 있곤 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소비가 미덕이라고까지 표현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소비가 장려되고 있고, 또한 남은 소비하는데 나는 소비하지 못한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오늘도 우리의 주머니를 시시 탐탐 노리고 있지. 하여, 이 시대가 우리를 소비하게 만드는 방법가 그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단다.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들어봤을지 모르겠어.
'앵커링'은 배가 어느 한 위치에 닻(anchor)을 내려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해. 머무른 그 지점이 '기준'이 되는 효과를 말하는데, 하나의 예를 들어 볼까? 너희가 포르셰 매장에서 억 단위의 차를 구경했어. 그러다 현실을 자각하고 그랜저 가격을 확인했지. 상대적으로 그랜저 가격이 더 싸 보일 거야. 그리곤 그랜저를 계약하겠지. 수중엔 소나타를 살 돈만 있음에도 말이야. 명품 매장 쇼윈도에 있는 몇 천만 원짜리 옷을 본 사람들은, 매장에 가서 (다른 곳보다는 배나 비싼) 몇 십만 원짜리 지갑을 상대적으로 싸다고 느끼며 사는 것과 같단다. 이처럼, 처음에 본 가격이 절대적 기준이 되어, 향후 소비에 미치는 효과를 '앵커링 효과'라 부른단다.
듀크대 경제학과 교수인 댄 애리얼리의 실험도 꽤 흥미롭지.
그는 행동경제학의 세계적 권위자인데, 그는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해. 그가 실행한 실험의 예를 한번 볼까?
15달러짜리 펜을 사는 사람에게, 네 블록 떨어져 있는 다른 상점에서는 이 펜을 7달러에 판다는 정보를 말해주었어. 날씨도 좋고, 걸어가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15달러짜리 펜 대신, 7달러짜리 펜을 선택해. 자, 그런데 말이야. 이번엔 다른 제품이야. 1,200달러짜리 카메라를 사는 사람에게, 1,192달러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카메라가, 네 블록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는 정보를 주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1,200달러짜리 카메라를 선택했다는 거야. 같은 8달러 차이인데, 결과는 확연히 다르게 났지? 15달러짜리 펜을 살 땐, 8달러의 차이가 매우 커 보였는데 값이 비싼 카메라의 경우엔 그 차이가 크게 보이지 않았다는 거지. 콩나물을 사면서 200원을 깎지 못하면 크게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자동차를 사면서 우리는 수백만 원짜리 옵션을 아무렇지도 않게 추가하곤 해. 차 값에 비해선 그 옵션이 그리 비싸 보이지 않으니까.
돈에 대한 감각이
소비 패턴을 결정한다.
이는 모두 돈에 대한 '감각'과 연관이 되어 있어.
그러니까 돈에 대한 감각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 소비에 휘둘리게 된다는 것이야.
특히나, 현금을 쓰지 않는 요즘 시대에는 더 그렇지.
신용카드와 카지노 칩의 공통점도 그와 맥락을 같이 해. 진짜 돈, 현금을 쓰지 않는 것처럼 유도하여 돈에 대한 감각을 흐리게 하는 거지. 단순한 숫자로만 돈을 인식하게 하거나, 거금을 칩 하나에 욱여넣음으로써 내가 지금 얼마를 배팅하고 있는지를 모르게 하는 것야. 그러다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이상의 것을 결제하거나, 얼마를 잃는지도 모르면서 계속해서 돈을 탕진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돼.
독일 학자 베버와 페히너의 실험은 돈에 대한 감각을 아주 잘 설명해 주는 하나의 좋은 예란다.
양초가 한 개 있는 방에서 양초 하나를 더 켜면 매우 밝아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양초가 100개 켜져 있는 방에서 몇 개의 양초를 더 켠다 한들 크게 달라진 걸 느끼지 못한다는 거야. 약한 자극 후의 자극은 크게 느껴지지만, 강한 자극 후의 약한 자극은 별 영향이 없고 그보다 더 큰 자극이 주어져야 변화를 인식한다는 '베버-페히너의 법칙(Weber-Fechner's law)이란다.
작은 돈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
무언가를 소비할 때, 현금을 떠올려야 하는 이유.
돈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키워야 하는 이유.
돈에 대한 감각이 소비 패턴을 좌우하기 때문이란다.
사람은 감정으로 소비하고 이성으로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어. 필요하지도 않은데, 사고 싶지 않았는데. 이걸로 힐링을 한다던가, 그동안 수고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곤 하지. 고백하건대, 아빠도 이런 소비를 많이 해왔단다. 그때를 돌아보면, '자아'라는 개념은 희미해져 있고, 소비로 그 허전함을 채우려 했던 것 같아. 글을 쓰고 나서부터, 자아를 제대로 돌아보기 시작했고 이러한 의미 없는 소비는 확연히 줄어들게 되었지.
소비를 괴물이 아닌,
좋은 친구로 만들어라.
목적 없는 소비의 끝은 허무함이란다.
물건을 잠시 샀을 때 느끼는 기쁨은 하루 이틀을 넘기지 못해. 도파민이란 호르몬은,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거든.
그래서였을까.
아빠는 어느 순간, 너무 소비적으로만 산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언가를 생산해 보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어. 글을 쓰다 보니, 자아를 더 돌아보게 되었고 스스로를 더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면서 외부적인 자극이나 소비로 마음을 달래던 삶의 방식을 싹 바꾸게 되었지. 생산자로 거듭나게 된 거야.
그래서 '소비'는 무조건 나쁜 걸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 앞서 말했듯, 소비는 자본주의 시대엔 미덕이란다. 소비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시대인 건 분명 받아들여야 해. 아빠가 말하고 싶은 건, 그렇다면 우리는 '생산적인 소비'를 해야 한다는 거야. 아빠는 생산자로 거듭난 뒤엔, 알고리즘에 쉽게 속지 않아. 아빠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들을 소비하는 패턴을 구축하게 되었어. 예전엔,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것들을 소비하거나 필요 없어도 도파민을 뿜어내게 하는 것들을 구입한 반면, 요즘은 더 많은 것들을 생산해 내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를 해. 예를 들어, 영화를 본다던가 책을 산다던가. 또는 글감을 일깨워주는 경험을 산다던가 말이야.
내가 소비하는 것이, 내가 생산해내고자 하는 것과 어떻게 연관이 지어질까를 고민하다 보면 무얼 현명하게 소비해야 할지를 가늠할 수 있게 돼. 세상이 알려주는 알고리즘에 이끌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며 소비를 하게 되는 거지.
'막연한 소비'는 우리 삶을 공허하게 만드는 괴물이야.
반면, 자아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의 '생산적인 소비'는 우리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해주는 좋은 친구와도 같지.
돈에 무뎌졌다면, 긴급하게 돈에 대한 감각을 점검해야 해.
흥미롭고도 무서운 건, 돈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을 땐 자아에 대한 감각도 십중팔구 떨어져 있다는 것이야. 돈과 소비로 허무한 마음을 달래려 한다는 것 자체가, 그러한 상황을 방증하는 아주 좋은 예란다.
방에 떨어져 있는 동전을 당장 주워 모아라.
지갑 안에 있는 지폐를 금액 순으로 잘 정리해라.
무언가를 사고 싶을 땐, 마음을 먼저 돌아보아라.
사고 싶은 것의 가격을 알았을 땐, 머릿속으로 그것에 해당하는 현금을 떠올려라.
그리고 내가 소비하는 것들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생산자로 거듭나기 위해 어떻게 활용될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라.
이러한 소비 패턴과 돈에 대한 감각이, 분명코 너를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괴물을 친구로 만드는 지혜는 다름 아닌 네 안에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