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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는 꼬여버린 이어폰 줄과 같아서

<삶이란 부조리극>

by 스테르담

요즘은 줄이 없는 이어폰이 대세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어폰은 줄이 있는 것이 당연했다.

참으로 신기한 게, 이어폰을 쓰다 주머니나 가방에 넣어 놓으면 언제나 이어폰 줄은 어떻게든 꼬여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이어폰 줄 요정'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마도 그 요정은 악동 기질이 있는, 심술 가득한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주머니에 있던 이어폰을 꺼냈는데, 손쉽게 풀지 못할 때가 더러 있었다.

제대로 꼬인 것이다. 꼬인 줄을 풀다 화딱지가 났다. 대체 이게 뭐라고. 뭐가 이렇게 꼬여 버린 거냐고. 끓어 오른 분노는 아마도 내 삶이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다.


우리 삶은 왜 이리 꼬여 있는 걸까.

누가 살살, 시나브로 그것을 꼬아 놓은 것일까. 때론, 느슨하게 꼬여 손쉽게 풀리는 경우도 있지만, 당최 연유를 알 수 없이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꽁꽁 꼬여버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하나... 를 고민할 정도일 때도 있다.


열심히 살았는데.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그래도 이어폰 줄은 꼬이고.

그럼에도 삶은 이리저리 엉킨다.


식빵에 잼을 발라 땅에 떨어 뜨리면, 늘 잼 묻은 면이 바닥을 향한다.

마치, 이런 법칙일까. 부조리는.


잘 정리하여 넣은 주머니 속 이어폰은 과연 누가 꼬아 놓는 것일까.

그 누구가 아니라면, 그러한 법칙은 누가 만든 것인가.

얽히고설킨 삶의 부조리는 누구의 창작품인가.


나는 묻고 싶고, 따지고 싶다.

고이 접어 넣은 그대로, 다시 이어폰을 꺼낼 수는 없는 거냐고.

열심히, 열과 성을 다해 사는 사람들의 인생은 꼬이지 않으면 안 되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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