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일상의 지혜>
어릴 적, 문제집을 풀 때, 고백하자면 저는 정답지를 꽤 자주 들춰보곤 했습니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그것을 풀 수 있을 때까지 씨름하는 것을 잘 참지 못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호기심이 많았던 거고, 그와 반대로 말하자면 쉬운 길을 택한 거였습니다. 답을 보면 그새 호기심이 풀렸고,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습관은 당연히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고민하고, 씨름하지 않았으므로 나중에 같은 문제가 나와도 그 문제를 풀 수 없었습니다.
답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되는 듯 하지만,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지 않은 정답은 내 것이 아니란 걸 그때 알았습니다.
이는 학생이란 신분을 벗은, 사회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아무 고민 없이, 고생과 경험 없이 얻은 것들은 쉽게 사라지거나 정작 필요할 때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인생엔 정답이 없다는 겁니다.
살다 보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거나, 지금은 맞으나 그땐 틀렸던 것들이 허다합니다.
내가 가진 신념이 딱지치기하듯 쉽게 뒤집히기도 하고, 믿고 따르던 사람들의 배신부터 자신이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어른이 되면 이러한 상황을 당황스러우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될 일이 많아지고, 이것은 대개 먹고사는 문제로 야기됩니다. 즉, 돈을 벌기 위해 관련된 모든 일이 정답 없이 혼재되어 우리 삶의 곳곳에서 출몰합니다.
다만, 정답은 없되 선택만이 존재합니다.
선택의 결과가 정답인지 아닌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답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 모든 책임은 오롯이 어른이 된 각자의 몫이 된다는 겁니다.
누구를 탓할 수도.
누군가에게 내 선택을 대신해 달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명문대에 진학한 사람의 끝이 흐지부지될 수도 있고, 백수로 놀고먹던 사람이 우연히 시작한 사업으로 떼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흐지부지된 것이 나쁘다고 할 수도 없고, 떼돈을 번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흐지부지함은 평범함이 될 수도 있고, 떼돈을 번 사람은 그로 인해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평범함이 지겨운 것이 될 수도 있고, 배신을 당했더라도 큰돈이 주는 안정감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삶은.
살아가는 데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답은 있다는 걸 늘 상기해야 합니다. 여러분만의 오답노트를 적어야 합니다. 학생 때 정답지에 집착하던 저는, 이제 오히려 오답지에 관심을 더 갖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이유기도 합니다. 글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내가 만나 해답을 논의하고 오답 노트를 나누는 꽤 좋은 수단입니다.
선택에 대하여, 늘 옳은 선택을 하려는 강박은 버려야 합니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말은, 선택에 대한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의 선택은 우리가 원하는 답에 가까워질 수도, 오히려 더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정답이 없다는 것이, 삶을 더 짜릿하게 해주는 신의 괘씸한 선물일는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선택'에 대한 명언 하나를 남깁니다.
정답일지 오답일지에 대한 두려움은 잠시 잊는 걸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가장 큰 비극은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