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에세이>
멕시코에 온 지 4년 반이 훌쩍 지났다.
보통은 4년만 주재해야 하는데, 업무로 인해 일정이 늘어난 것이다.
멕시코에 도착했을 때, 두 아들 녀석의 키는 내 가슴을 밑돌았다.
지금은, 키도 덩치도 나보다 크다. 팔씨름을 아직은 내가 이기고 있지만, 그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주재원의 삶은 녹록지 않다.
하여, 대개의 집안 일과 아이들 교육은 아내가 담당한다.
결혼 생활의 성패는 각자의 역할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갈린다.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 아빠와 엄마. 어렸을 적, 우리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랑스러운 아가씨 시절을 지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엄마가 되고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 있는 그 모습이 이제는 영 낯설지가 않다. 그 시간의 반 이상을 나는 따라잡고 있으니까.
아내에게 나는 많이 고맙다.
내 아내가 여자, 아내, 엄마의 역할을 잘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결혼할 땐 이러한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그렇지 않은가... 서로 좋은 모습만 보이고 꽁냥꽁냥한 달콤한 그 시간에 취해 미래를 제대로 보지 못하니까. 결혼 후 각자의 역할을 잘 받아들일지 아닐지는 정말로 복불복이다. 주위에 이미 갈라선 부부들의 모습을 보면 이게 더 실감 난다. 결국, 각자의 역할보다 자신의 욕구가 더 크거나, 역할 간의 갈등에서 오는 네 탓이 대개의 이별 사유였다. 연애와 결혼은 철저하게 다르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 아내는 조금 예민하다.
아이들이 수험생이기 때문이다.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도 한 몫한다. 지금도 아내는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아이들의 학업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 뒷모습이 아가씨일 때보다도 더 아름답다. 예민함 속에 나는 조금은 배제되어 있어 섭섭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니 이해가 된다. 투정 부릴 때가 아니라,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때다.
아이들에게도 나는 말한다.
우리는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하나의 팀이라고. 팀워크의 가장 큰 원동력은 각자의 역할을 잘하는 것이라고. 아빠는 돈을 벌고, 엄마는 너희를 돌보고 학업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 너희는 학생의 신분에 맞게 공부를 하고.
내가 없을 때, 아내와 아이들의 신경전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 분이라도 더 공부를 시키려는 엄마와, 한창 자신만의 시간 속으로 침잠하고 싶은 아들 녀석들의 기싸움. 퇴근하고 듣는 아내의 하소연에 나는 때로 미소 짓지만, 그 현장은 얼마나 고되고 분주했을까.
그렇다고 엄마 편만 들어 아이들에게 뭐라 하면 엇나갈 수 있으니, 나는 애써 돌려 말한다.
"엄마 말씀 잘 들어,
엄마 눈에 실핏줄 터졌다.
엄마 괴롭게 하지 마.
너희 엄마는,
엄마이기 전에 내 여자이니까.
(좋은 말 할 때 잘 들어라....)"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