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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24. 2019

상처 주지 않고 일할 수 있을까?

업무와 사람, 사람과 업무. 그 사이엔 '상처'란 환영적 실체가 있다.

메일 하나를 받았다.

문제는 분명 상대방에게 있었다. 상대방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상대방을 제외한 모두가 피해자인 상황. 직장은 (살아있는) 부속품으로 이루어진 유기체와 같아서, 각각의 부서와 담당자가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그것이 내부적인 갈등을 넘어 흘러넘치면, 마침내 우리를 먹여 살리는 고객에게 피해를 입히고 우리의 신뢰는 바닥을 치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화를 내는데도 지친 나는 각자가 챙겨야 할 일을 강조하며 차분하게 메일을 보낸 터였다. 내가 받은 메일은, 내가 보낸 것에 대한 답신이었다.


반복되는 문제에 대한 언급을 조금 한 뒤, 메일의 말미에는 서로 '예의'를 지키자는 말이 달려왔다.

사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 기본적으로 각자의 할 일을 챙기자는 메일이었는데. 그렇다고 과격하거나 공격하는 어투나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분명 뭔가 기분 나쁜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는 편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바로 분노의 회신을 할까 손가락 끝마디가 저렸지만 참았다.


어찌 되었건, 분명 (그럴 입장이 아니든 말든) 상대방은 상처를 받은 것이니까.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려는 '프레임 전환'이라고도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상처'라는 말에 주목을 해보면 나는 의도하지 않아도 상처를 준 것이다. 그리고 '예의'를 지키자는 말에 나 또한 상처 받았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업무로 엮이고, 그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화살은 '사람'으로 향한다. 내 메일을 받은 그 '사람'은 수세에 몰린 것이다. '적반하장'의 반응은 그렇게 나온다.


감정을 배제해보면,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도 노력하고 있고, 나름 고생하고 있으니 그만 좀 챌린지 하시오!'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어도, 그것에 대한 공격을 여기저기서 많이 받게 되면 사람은 객관성을 잃는다. 자신을 지켜야겠다는 방어기제가 발동한다. 방어기제는 '감정'에 기반한다. 살아남아야겠다는 강한 '감정'은 이성과 합리라는 단어를 퇴색시킨다.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예의'를 운운한 것은 정글이라는 직장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발버둥인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나보다 직급이 높으니 합리적이지 않은 그 반응이 더 쉽게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상처'는 환영적 실체다. 또는 실체적 환영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고, 나는 그것을 주지 않았고, 상대방도 나에게 준 적이 없다는데 직장인 누구의 마음에나 그것은 있다. 사람의 뇌에 있는 해마는 기억을 담당하는데, 여기엔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가 찰떡같이 붙어있다. 그러니 '상처'를 받게 되면 사람은 그 순간을 감정과 함께 저장한다. 이것이 고착화되고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치면 트라우마가 되는 것이다. '상처'가 환영이면서도 실체인 이유다.


어렸을 땐, 상처 '받는 것'에만 주목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직장은 물론 어디에서나 나는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나에게 삐딱하게 나오는 사람은, 어쩌면 내가 모르는 내가 준 상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는 한, 아니 직장을 떠나서도 우리는 사람(타인, 상대방)과 부대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엔 어김없이 '상처'는 공존할 것이다. 나의 그것과, 상대방의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중요하다. 상대방을 이해 함으로써, 결국 나를 지킬 수 있는 무기/ 방어기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고민한다. 오늘도. 지금도. 매일을.


"나는, 상처 주지 않고 일할 수 있을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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