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맥아피의 포스트피크
*이 글은 제가 디지털 투데이 기고하는 '골라주는 책방' 칼럼에 나온 글입니다.
우리에게 '제2의 기계시대'와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를 통해 잘 알려진 앤드루 맥아피 MIT 경영대학원 교수가 '포스트 피크'라는 매우 도발적인 책을 냈다.
그동안 환경이나 자원에 대한 인간의 탐욕, 무지를 경고하는 책은 많았다. 하지만 맥아피 교수는 우리가 생각보다 이런 문제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해 눈길을 끈다. 또 앞으로 중요한 의제 몇 가지를 지켜 나가면 지구 자원 고갈이나 착취, 기후 변화 문제를 완화하거나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낙관주의적 견해를 밝히고 있어 '도발적'이라고 한 것이다.
포스트 피크는 환경학자 제시 오스벨이나 크리스 구달의 연구를 기반으로 고도 산업 국가에서 주요 자원의 소비 추세가 정점을 찍은 뒤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탈물질화' 현상에서 나온 말이다. 금속, 비료와 같은 농업 투입 요소, 건축재와 목재, 화학물질, 에너지 총소비가 최대치를 기록한 뒤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는데 이는 경제가 성장하면서도 이런 자원의 총소비는 줄어들고 있단 것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결국 덜 쓰면서 더 많이 얻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고 이는 바로 자본주의 시장의 본질적 특성과 기술 혁신에 의한 것이란 설명이다. 중국이나 인도 같은 개발도상국은 아직 아니지만 점점 이런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맥아피 교수는 확신한다. 한국은 선진국임에도 이 점에서 어떤 데이터가 나올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물론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 현대 환경운동의 탄생이 이뤄진 1970년 지구의 날 행사까지는 인간의 한없는 욕구와 기술 개발이 자연을 파괴하고 우리 환경을 크게 악화시켰으며 이에 따라 우리 사회가 자원 고갈 위험에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은 맞다.
그러나 맥아피 교수는 지금 보이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가 낙관주의 견해를 갖게 된 데는 긍정적인 변화를 이끄는 4가지 기수가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기술 발전, 대중의 의식, 그리고 반응하는 정부. 이 4가지가 잘 작동하면 그동안 갖고 있던 부정적 선입견이나 과거 지식에 의존한 개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정표를 갖고 역사적인 전환을 이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발달한 자본주의 경제는 효율을 위해서 또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내며 기술 혁신은 우리가 함께 덜 쓰고도 더 많은 것을 얻어내게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맥아피는 이를 입증하는 많은 자료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확신한다. 자본주의가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일부 국가 사례는 오히려 리카르도 하우스만의 의견을 통해 자본주의가 더 넓게 퍼지지 않았던 것이 문제라고 얘기한다.
맥아피는 베네수엘라 상황을 사례로 자신만의 주장을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바라본 경제적 분석만 하는 한계도 보인다. 어차피 자기는 경제학자라고 말하면서 그 역사와 정치 상황에 대한 부족한 인식에 대한 비판을 슬쩍 피해가는 모습도 있다.
그는 자본주의와 기술 개발만으로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것은 대중의 인식과 그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고도 얘기한다. 오염과 같은 부정적인 외부 효과는 시장에 의해서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를 인식하는 시민들의 의지와 이에 적절히 반응하는 정부에 의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염을 개선하는데 비용이 들게 하고 동물 보존에 힘쓰게 하고 프레온 가스(CFC)를 금지하게 하는 것은 모두 시민의 인식과 정부에 대한 압박 그리고 그에 반응하는 정부 정책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협력이 잘못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례로 제초제 글리포세이트와 유전자변형(GMO) 작물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 그에 따른 정부 조치를 제시한다. 과학적 진실과 매우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음도 지적하는 것이다.
맥아피는 책의 후반부에서 그런 사례 중 하나가 탈원자력 정책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GMO에는 동의하면서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그의 견해는 매우 협소한 지식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책은 전반적으로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와 같은 흐름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거나 상식으로 받아들였던 많은 데이터가 실제와는 무엇이 다른지, 또 지금은 1970년이 아닌 21세기의 소위 '제2의 기계시대'로, 산업혁명의 시대나 과거의 자본주의 시장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책 곳곳에서도 한스 로슬링의 데이터와 이름이 등장하는 점이 눈에 띤다.
포스트 피크에서 주장하는 여러 입장은 앞으로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킬 것 같다. 자신의 주장에 맞는 데이터와 사례만을 동원했기 때문에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도 보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가 환경이나 지구 문제를 '말콤 글래드웰' 식으로 풀어나가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물론 맥아피는 오염이나 기후 변화는 우리가 풀어 나가야 할 심각한 문제라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가 앞서 얘기한 4가지 기수가 잘 작동되면 생각보다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풀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양한 이슈를 두고 이 4가지 기수들이 제각기 다른 역할을 갖게 될 텐데 그것이 맞는 분석 틀이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책을 옮긴이도 역자의 말을 통해 이 책이 독자의 신념을 건드리고 분노하게 할 수 있다는 맥아피의 말을 전하며 다소 걱정스러운 입장을 드러낸다. 그러나 맥아피와 여러 가지로 다른 의견을 갖는 필자도 데이터를 통한 새로운 시각, 인류의 발전 추세에 대한 또 다른 의견을 읽어 보는 것은 나름 흥미로운 일이라고 본다.
그는 주로 미국이나 영국 그리고 유럽 국가의 현재에서 바라본 시각으로 얘기한다. 하지만 미국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는 몇 가지 사례는 이런 문제들을 해외로 이전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과연 저자가 몰랐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환경과 오염, 과도한 자원 낭비는 전(全) 지구적 문제이지, 몇몇 국가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앤드루 맥아피 저 | 이한음 역 | 청림출판 | 2020년 10월 28일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