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누구야?”
“완전 멋있어졌다 못 알아보겠는데?”
몇몇 여자애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남자애들도 놀란 눈치였다. 나는 무슨 소란인가 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화도 나를 따라 가게 문 쪽으로 걸어갔다. 가게 입구에는 한눈에 봐도 귀티 나게 생긴 차림의 남자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분명 아는 얼굴이 아닌데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동창생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나의 고민을 알았는지 옆에서 화가 아 하는 탄식과 함께 ‘필수!’라고 말했다. 그제야 나도 변한 얼굴 속에 있는 김필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5:5로 얌전하게 가르마를 타고 갈색 코트를 입은 김필수는 중학교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얼굴도 더 갸름해졌고 전체적으로 마른 몸이었지만 궁핍해 보이기보다는 체계적으로 관리를 받은 느낌이 들었다. 피부도 웬만한 여자보다 하얗고 깨끗해서 ‘곰보 선장’이라는 예전의 별명이 과연 김필수를 두고 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 정도였다.
“안녕, 오랜만이야 얘들아.”
김필수가 한쪽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난처해하는 듯하면서도 싫지 않은 눈치였다. 다들 김필수에게 어떻게 지냈냐는 둥 신수가 훤해졌다는 둥 한 마디씩 던졌다. 그러자 김민수가 나서서 아이들을 제재했다.
“자자, 묵은 회포는 필수 술 한 잔 따라주면서 풀자!”
김민수의 한마디에 다들 쪼르르 테이블로 돌아가 자기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시선은 김필수에게로 쏠려 있었다. 동창들이 김필수에게 보고 싶었다며 갖가지 근황을 묻는 것을 보며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중학교 때 관심도 없었던 이들이 김필수에게 그렇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내는 것은 지난날의 추억이나 곱씹자는 의도가 아니었다. 도대체 그 찌질했던 김필수가 어떻게 이렇게 근사한 도련님으로 변했는지가 궁금한 것이었다.
김필수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아이들의 질문에 차분하게 하나씩 대답했다. 아이들은 김필수의 대답에 와- 하면서도 찝찝해하는 눈치였다. 김필수가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을 했다, 몸에 좋은 음식을 가려서 먹었다는 둥 의례적인 대답만 앵무새처럼 반복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였으면 그런 김필수의 대답이 못마땅한 누군가가 나서서 ‘그게 무슨 엉터리 같은 소리야 이 곰보 선장 자식이 건방지게!’라며 뒤통수를 후려갈겼겠지만 술이 거나하게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나이가 들었고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김필수에게서 은연중에 느껴지는 기운 때문이었다.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코트와 니트, 그리고 팔목에 감긴 은색의 롤렉스, 당황해도 움츠러들지 않고 대답하는 여유가 김필수가 가진 부와 사회적 위치를 알게 했다. 부자들만 가진 특유의 여유가 김필수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자리에 앉은 모두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김필수의 등장으로 한바탕 소란이 일었던 가게는 술이 몇 순배 돌자 자연스럽게 진정되었다. 몇몇 여자애들은 김필수에 대해 여전히 집착하며 어디 사는지, 차는 무엇인지에 대해 캐물으려 애쓰고 있었지만 김필수는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선화는 김필수의 등장에 잠깐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으나 곧 술병을 들어 자기 잔에 술을 따랐다. 내가 선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선화는 웃으며 내 잔에도 술을 따라주었다.
“잔이 비웠으면 네가 챙겨줬어야지!”
“미, 미안 잠깐 정신이 팔려서.”
“왜, 너도 필수가 어떻게 저렇게 됐는지 궁금하니?”
선화가 놀리듯이 말했다. 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김필수 쪽을 쳐다보았다. 김필수는 여전히 질문공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흠 그래? 난 궁금한데.”
“어?”
내가 벙찐 표정을 짓자 선화는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궁금하잖아! 사람이 갑자기 확 바뀌었으니! 아무리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어쩜 저렇게 변할 수 있어?”
나는 여태껏 선화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왔다. 부, 명예, 권력 같은 세속적인 가치에 환장하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르게 선화는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나에게 보인 호의와 눈빛이 그토록 순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화가 필수의 변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는 진한 실망감을 느꼈다.
선화는 내 실망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다가 술을 따라 마시기를 반복했다. 나는 처음에는 선화가 자작을 하지 못하도록 술을 따라주었으나 선화가 고민하는 대상이 김필수 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기분이 나빠져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선화는 내가 술을 따라주든 말든 상관없이 알아서 홀짝홀짝 술잔을 비웠다. 나는 의도적으로 선화의 시선을 피해 딴 곳을 보면서도 곁눈질로 선화를 관찰했다. 그러고 보니 선화는 술이 꽤 센 편인 듯했다. 아까 바에서도 꽤 마신 것이 분명한데 이곳에서만 벌써 3병째 소주병을 비우고 있었다. 나와 나눠마신 것을 빼도 2병은 훌쩍 넘긴 양이었다. 나는 그만 마시라고 말해야 되나 고민하던 차에 선화의 눈을 보고는 그러한 생각을 접었다. 선화는 김필수 쪽 테이블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을 김필수를 쳐다보던 선화는 술잔에 술을 채우고는 ‘나중에 물어봐야겠다’는 혼잣말을 하고는 술을 삼켰다.
나는 김필수에 대해 묘한 질투심을 느꼈다. 물론 내가 선화를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10년이나 전의 일이다. 졸업식에 서럽게 우는 아이가 학교에 남아 있고 싶어서 우는 것이 아니듯 내가 선화를 다시 만났다고 해서 선화에 대한 사춘기 소년의 감정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나에 대한 호감 어린 시선이 다른 쪽으로 옮겨졌을 때, 그 상실감이 나로 하여금 김필수에 대해 질투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김필수는 선화와 다른 아이들의 말처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다른 아이들도 물론 세월이 느껴지는 변화가 있었지만 삭풍에 깎인 돌이 원형을 잃지 않는 것처럼 예전의 체취랄까, 중학교 시절을 기억나게 하는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비록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나와 함께 한 세대를 지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어떤 친근감이었다.
하지만 필수에게서는 그런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김필수와 나는 김민수에게 괴롭힘 당하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김민수가 괴롭히는 애들 중에서도 우리 둘은 특별한 존재였다. 내가 김민수의 바지를 벗긴 이후로 김민수는 나를 무자비하게 괴롭혔다. 쉬는 시간마다 갖가지 무술 연습을 한다며 샌드백처럼 두들겼다. 레슬링 놀이를 하는 날에는 바닥에 하루 종일 쓸린 탓에 교복에 묻은 먼지가 걸을 때마다 떨어져 나왔다. 킥복싱 놀이를 하는 날에는 맞은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명백히 ‘놀이’였기 때문에 그 일을 가지고 학교폭력이니 뭐니 신고하는 애들은 없었다. 물론 그것을 곧이곧대로 ‘놀이'라고 보는 애들은 없었겠지만 눈이 돌아간 김민수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배짱을 가진 아이는 없었다. 이따금 ‘놀이’가 너무 심해지면 이광철이 나서서 말려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에 비하면 김필수는 육체적으로는 전혀 힘들 것이 없었다. 김민수 패거리들은 김필수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장난으로라도 툭툭 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단지 그들은 김필수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려놓고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돈을 갈취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필수가 돈을 뺏기게 된 것은 김민수 패거리와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필수는 나처럼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나와는 달리 외로움을 많이 타는 류였다. 내성적이어서 남에게 말을 잘 못하고 우물쭈물하면서도 누군가와 친해지길 바라는 모순적인 성격이었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김필수가 김민수 패거리에게 타깃이 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필수의 가장 큰 문제는 사춘기 소년 특유의 일탈을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김필수는 우물쭈물하면서도 학기초에 김민수 패거리와 친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김민수 패거리는 그런 김필수를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한 듯했다. 겉으로 딱 보기에 김필수는 김민수 패거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와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김필수는 170이 될까 말까 한 자그마한 키에 웬만한 여자보다 손목이 얇을 정도로 깡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다. 눈도 굉장히 나빠서 두꺼운 안경알이 달린 뿔테 안경을 썼기 때문에 인상이 더욱 멍청해 보였다. 게다가 왕성한 호르몬 작용인지는 몰라도 얼굴에 여드름이 한가득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거리를 두게 할 정도였다.
김민수 패거리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처음에는 도대체 이 딴 자식이 왜 자기들 무리와 어울리려고 하는지 전혀 이해를 못했던 것 같았다. 무시도 해보고 무섭게 분위기도 잡아보았지만 김필수는 끈질기게 김민수 패거리 근처를 맴돌았다. 김민수 패거리의 인내심이 한계점에 달할 때쯤, 김필수가 김민수 패거리와 잠시나마 함께 놀게 된 계기를 제공해 준 것은 이재민이었다. 이재민은 그 나이답지 않게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았는데, 누구네 집이 얼마고 누구 아빠가 얼마 벌고 하는 소식들을 제일 먼저, 제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날도 김필수가 점심시간에 김민수 패거리 옆을 빙빙 맴돌고 있었다.
그 날따라 날씨는 덥고 습해서 아이스크림 생각이 간절한 하루였다. 김민수 패거리도 매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을 요량으로 서로의 주머니를 탈탈 털었지만 모인 돈은 고작 2천 원 정도였다. 더운 날씨에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도 못 먹으니 혈기 왕성한 사춘기 소년들의 짜증은 극도로 높아졌고, 누군가 조그만 건더기만 쥐어준다면 펑하고 터져버리기 직전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감지한 이재민은 옆을 돌고 있던 김필수를 불러 가까이 오게 했다.
“야 필수야.”
“으, 응?”
“500원 있냐?”
김민수 패거리의 시선이 김필수에게 몰렸다.
“어.. 500원은 없는데.”
김필수의 대답에 김민수 패거리는 다시 흥미를 잃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이재민도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저리 가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필수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때 김필수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토록 귀찮게 해도 눈길 한 번 안 주던 패거리들이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500원은 없는데 뭐 사고 거스르면 될 것 같아!”
김필수가 다급하게 말했다. 이재민이 김필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무슨 소리하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러다 김필수가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는 것을 보고는 씩 웃으며 김필수의 지갑을 낚아챘다.
“오, 이거 끌레드인데 지갑 좋은 거 쓴다? 와, 이 새끼 돈 졸라 많네.”
이재민이 김필수의 지갑에서 5만 원짜리 2장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헐, 이거 연회비 250짜리 카든데? 야 필수야 너희 집 부자구나!”
이재민이 김필수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김필수는 멋쩍게 웃으며 ‘부자는 아니고..’라고 말했지만 김필수를 쳐다보는 김민수 패거리의 눈빛을 보고는 말을 삼켰다. 김필수는 그때부터 김민수 패거리와 어울리게 됐다. 말이 어울리는 거지 사실상 물주나 다름없는 듯했다. 항상 점심시간만 되면 아이들과 함께 매점에 가야 했고 방과 후면 학원도 빼먹으면서까지 피시방이나 노래방 같은 곳에 끌려다녀야 했다.
또 종종 김민수 패거리는 한 명씩 은밀하게 김필수를 끌고 학교 운동장에 있는 컨테이너 뒤쪽으로 데리고 들어가 둘만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한 다음날이면 꼭 각자 새로 산 운동화며 옷이며 자랑하기 바빴기 때문에 모종의 거래가 이뤄졌음을 누구나 눈치챌 수 있었다. 물론 김필수만 손해 보는 거래라는 것도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어도 명확했다.
“오랜만이네?”
아이들과 있던 자리를 벗어난 김필수가 선화 옆에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뭐 그럭저럭. 옆에 앉아도 될까?”
“응, 뭘 허락까지 맡고 그래.”
“하하, 원래 여자 옆에 앉을 때는 허락을 구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김필수가 선화 옆에 앉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필수의 능청스러움에 처음에는 경계하던 선화도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건 누구한테 배운 거야?”
“글쎄. 아마도 엄마?”
김필수가 골똘히 생각하는 척하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나는 저건 절대 김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까이서 보니 김필수의 얼굴에서 더욱 부티가 느껴졌다. 뽀얀 피부에 5:5로 세련된 가르마를 탄 그에 얼굴에서는 예전의 곰보 선장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와, 필수 선수네. 한 잔 할래?”
“선수는 아니지만 한 잔은 받을게.”
김필수가 선화의 말을 능숙하게 받으며 잔을 받아 들었다. 둘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잔을 부딪힌 뒤 단숨에 잔을 비웠다.
“순덕이도 한 잔 할래?”
김필수가 소주병 입구를 내 쪽으로 겨누며 말했다. 나는 뭔가 순서가 잘못된 것 같아 기분이 나빴지만 굳이 내색하기는 분위기가 그래서 됐다고 이야기했다. 옆에서 선화가 순덕이는 아까 술 많이 마셨어라고 거들었는데 그 말이 마치 술 마실 거 아니면 저리 꺼져-라는 소리로 꼬여서 들렸다. 나는 잠깐 바람 좀 쐬고 온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오자 김민수 패거리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안 그래도 김필수 때문에 선화와의 자리를 뺏긴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밖에 나와 그들을 보니 괜히 옛날 생각이 나서 얼굴을 구겼다. 그대로 뒤로 돌아 건물 뒤편으로 가려는데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내 발을 붙잡았다.
“야, 필수 그 새끼 왜 저렇게 신수가 훤해졌냐 아예 못 알아보겠던데?”
“입고 있는 것도 다 명품이야! 시계도 롤렉스고. 아니 쟤 뭔데?”
“거봐, 내가 말했잖아. 저 새끼 엄청 잘 나간다고.”
나는 그대로 입구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다행히 술도 취했겠다, 저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에 빠져 내가 듣고 있는 것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아니, 그래도 저 정도일 줄은 몰랐지. 누가 곰보 선장이 저렇게 잘 나간다고 이야기하면 그렇게 쉽게 믿냐?”
“씨바 곰보 선장, 오랜만에 듣네 진짜.”
이재민과 유현석이 낄낄 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김민수가 정색을 하고 조용히 하라며 입에 검지를 갖다 댔다.
“야야, 들릴라 조용히 해!”
그 모습에 이재민과 유현석은 별 이상한 사람 보듯 김민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야, 곰보 선장이 곰보 선장이지 돈 좀 번다고 아니냐?”
김민수는 유현석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쟤, 너네 생각보다 거물이야. 우리 아빠도 굽신거리면서 이사님, 이사님 한다고.”
“뭐? 너희 아빠가?”
김민수의 말에 이재민과 유현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나도 어렴풋이 김민수의 아버지가 거의 조폭이나 다름없는 생김새와 행동으로 유명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김민수는 유현석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돈 앞에는 장사 없지. 우린 쟤네 회사의 하청의 하청이니까.”
“그럼 곰보가 다니는 데가 본청의 본청이야? 와 새끼 진짜 출세했네. 근데, 그래도 그렇지 너네 회사도 돈 쓸어 담는데 그렇게 까지 굽신거려야 돼?”
“씨바 곰보라고 하지 말라고!”
“알았어, 알았어 예민하게 굴기는.”
“아니, 하. 자 들어봐. 우리 회사는 년 단위 계약이란 말이야. 그래서 계약 시즌 되면 난리 나 아주. 필수네 회사에서 과장급이 파견 나오지? 진짜 난리 난다니까. 사단장 방문급이야 거의.”
“아니 그 정도야?”
“그래. 하 새끼들. 너네 편하게 돈 버는 줄 알아 진짜. 쟤 한마디에 우리 회사 사람들 몇십 명 모가지가 그냥 날아간다니까.”
“야 그런 말 마라. 어디 자영업자 서러워서 살겠냐. 나도 힘들게 살거든? 근데 곰.. 필수 쟤가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된 건데?”
이재민이 믿기지 않는다는 말투로 김민수에게 물었다.
“저 새끼가 그래도 대가리가 좋았잖아 어렸을 때도. H사에서 하는 창업 콘테스트에서 1등을 했나 봐. 그래서 H사에 특전으로 바로 입사했대. 근데 씨바 웃긴 게 뭔지 아냐? 창업 콘테스트 1등부터 3등 수상식에 그룹사 회장도 왔나 봐. 거기서 그 회장이 김필수를 보고는 자기 큰아들 닮았다고 붙잡고 엉엉 울었다는 거야.”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회장이 이제 팔순쯤 되는데 정신이 약간 오락가락하나 봐. 근데 그 회장 큰 아들이 한 삼십 년 전쯤 이십 대 초반에 우울증으로 자살했대. 그때 회장이 사업 한창 키울 때라서 큰 아들이 우울증 있는데도 잘 챙겨주지도 못하고 밖으로만 돌아다닌 게 한이었나 봐. 그 날 김필수 붙잡고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주변 사람들도 당황해서 말리지도 못했대.”
김민수가 말을 멈추더니 담배 있냐고 이재민에게 물었다. 이재민이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가치를 김민수에게 건네며 불을 붙여줬다. 김민수는 크게 한 모금 빨아드리더니 후- 하며 연기를 뱉었다.
“그러더니 김필수를 무조건 회사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인재로 키워야 된다고 난리를 쳤나 봐. 비서진들이랑 그룹사 사장들도 어디 근본도 없는 애를 데려다가 키우냐고 반발했는데, 회장이 그럼 니들 다 갈아엎는다고 노발대발해서 어쩔 수가 없었대. 오락가락해도 아직 최대주주고 하니까 어쩔 수가 없었나 봐. 그래서 뭐, 입사하고 2년 만에 초고속 승진해서 이사가 된 거지.”
“아니, 말이 안 된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이야기네.”
“씨바, 말이 안 되지 아예. 더 웃긴 거는 저 새끼 이력 만들어줄라고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연달아 맡겼는데 이게 말이 몰아주기지 사실 불가능한 프로젝트가 대부분이었나 봐. 위에서도 이 새끼가 프로젝트 몇 번 말아먹으면 능력 없어서 안된다고 회장한테 말할 요량이었던 거지. 근데 이 새끼가 무슨 수를 썼는지 그걸 다 대박을 쳐버렸네? 그래서 위에서도 어쩔 수 없이 다들 쉬쉬하며 인정하는 분위기래. 오히려 회장 라인이라고 김필수한테 줄 대는 사장들도 있다고 하더라고.”
“야… 곰보 완전 다르게 보인다…”
이재민이 또다시 곰보라고 김필수를 부르자 김민수가 째려봤다. 이재민은 아차 싶었는지 얼른 뒤를 돌아 가게 안을 살폈다.
“야 못 들었어 못 들었어 걱정 마. 그렇게 잘 나가니까 저렇게 신수도 훤해지고 아주 행동거지가 기품이 넘치시는구먼?”
이재민이 비꼬며 말하자 김민수가 다시 한번 가게 안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야. 진짜 너네 이거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된다."
“아, 우리가 어디 가서 뭘 말한다 그래. 빨리 말해봐.”
이재민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김민수를 재촉했다.
“아니 미친놈아. 진짜 이건 퍼지면 안 되는 거야.”
김민수가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하자 이재민과 유현석은 절대 말 안 하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김민수는 고개를 돌려 가게를 한 번 쓱 보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나는 갑작스레 작아진 김민수의 목소리에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곧바로 몸을 돌려 바람이나 쐬러 가기에는 김필수에 대한 내용이 너무 궁금했다. 나는 슬며시 그들의 이야기가 들릴 만한 정도로 가까이 접근했다. 약간 남아 있는 취기가 용기를 북돋아줬다.
“…. 했다니까.”
“이게 진짜야?”
"대박이지 않냐?”
김민수의 말에 이재민과 유현석은 말도 안 된다며 소리쳤다. 김민수가 기겁을 하며 조용히 하라고 낮게 소리쳤다.
“아니, 그러니까 김필수가 회장 큰 아들이랑 일부러 비슷하게 성형을 했다는 거야?”
“아 그렇다니까. 나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아빠한테 들은 얘기야. 아빠도 H사 임원한테 들었대. 그쪽에서도 쉬쉬하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나봐.”
“보통 미친놈이 아니네… 아니 큰 아들 얼굴은 대체 어떻게 알고?”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졸업앨범이나 이런 걸 어디서 구해가지고 봤겠지. 더 소름 돋는 건 뭔지 아냐?”
“뭔데?”
“얼마 전에는 회장이랑 독대하는 자리에서 ‘아빠’라고 불렀다는 거야. 회장이 놀래니까 실수인 척 ‘아 죄송합니다 방금까지 아빠랑 통화하다 오는 바람에. 회장님이 아빠처럼 편하게 느껴졌나 봅니다’라고 했다는 거야.”
“와 이게 진짜야? 그래서?”
“노망난 노인네가 죽은 아들이랑 똑 닮은 애가 와서 ‘아빠!’ 이 지랄하는데 어쩌겠냐? 그 자리에서 또 대성통곡해서 비서진들 총출동하고 난리도 아니었대더라. 그러더니 회장이 김필수를 꼭 껴앉으면서 고맙다고 했대.”
“미친놈이네…”
“보통 미친놈이 아니지. 이 정도면 사이코패스급이야. 야 그래도 너네는 쟤랑 만날 일이 없잖아. 나는 쟤 처음 봤을 때 어땠는 줄 아냐? 어후.”
“왜 뭐 어땠는데?”
"처음에는 나도 못 알아봤지. 곰.. 아니 얼굴도 깨끗해지고, 눈도 코도... 엄청나게 바뀐 건 아닌데... 뭔가 예전의 인상이 아니잖아."
김민수의 말에 나 역시 공감했다. 김필수는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도 선화가 '쟤 김필수잖아!'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김필수라고는 전혀 생각이 안들었을 정도로 기묘한 외모가 되어버렸다.
"뭐, 아무래도 피부가 깨끗해진 게 크겠지."
이재민이 김민수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래. 그래서 나도 처음 만났을 때 별생각 없었단 말이야. 아버지랑 같이 만나기도 했고, 내 입장에서는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데 굽신거리기도 싫었고. 나도 어쨌든 명함은 이사로 팠으니까, 그렇게 꿇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뭐, 그럴 만도 하지."
유현석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이 새끼가 아버지가 먼저 인사하면서 명함을 건네는데 쳐다도 안 보고 나만 물끄러미 보는 거야. 옆에 있던 그 새끼 비서도 당황하고 아버지도 무슨 상황인가 싶어 명함 내민 손 그대로 굳어버리고 나는 나대로 뭐하는 새낀가 싶어서 나도 쳐다봤지."
김민수가 다 핀 꽁초를 둘둘 말아 손가락으로 탁 퉁기고는 이재민에게 한 가치만 더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이재민이 담뱃갑을 열더니 '아 쌍댄데...' 하며 김민수에게 한 가치를 건넸다. 옆에서 유현석이 나중에 자기가 한 갑 사 줄 테니 어서 얘기나 듣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이재민은 툴툴거리면서 김민수에게 불을 붙여주었다. 김민수가 또 한 번 깊게 담배를 빨아들이고는 담배연기를 길게 뿜었다. 자욱하게 퍼져가는 담배연기가 김민수의 짜증스러운 기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한참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라고. 나도 오기가 생겨서 계속 쳐다봤지. 그러더니 지가 먼저 고개를 돌리대? 그래서 '하 새끼 졸았네'했지. 그냥 우리가 하청업체고 하니까 기 죽이려고 하는 줄 알았거든. 그래서 속으로 비웃고 있었는데 이 새끼가 비서를 부르더니 갑자기 차를 대기시키라는 거야 나가겠다고. 비서가 놀래서 네? 이러니까 이 새끼가 우리 아버지는 쳐다도 안 보고 '저런 사람들이랑은 거래 못하겠네요' 하더니 휙 나가버리는 거야."
김민수가 말을 멈추고 담배를 다시 한번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빨았다. 길게 내뿜는 담배 연기가 아까보다 더 짙게 느껴졌다.
“아빠도 그쯤 되니까 열이 받았지. 그 양반 성격 알잖냐. 그 길로 김필수를 뒤따라가서 붙잡고는 말했지. ‘어이 이사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거는 경우가 아니지 않느냐’고.”
“그렇지 너네 아부지가 그 걸 참으실 리 없지.”
이재민이 김민수의 의견에 동조하며 말했다.
“맞아.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김필수 팔을 잡고 이야기하는데, 그래도 김필수 그 새끼는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거야. 그대로 아빠를 쳐다보더니 ‘아드님한테 물어보세요’ 하고는 팔을 뿌리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버렸어.”
“와 그래서 어떻게 됐냐?”
“어떻게 되긴. 아빠는 황당해서 나보고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지. 근데 그때는 그 김필수가 그 김필수인지 내가 알았냐? 나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그랬지. 그 길로 우리는 회사로 돌아왔어. 부장급 위로 다 호출해서 긴급회의를 했지. 근데 그 양반들 모아서 회의한다고 방법이 있냐? 이번 거래 끊기면 회사가 도산할 위기인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거지. 아빠는 노발대발하면서 재떨이 던지고 임원들은 전화 붙잡고 김필수란 새끼가 대체 뭐하는 새낀지 알아보느라 난리고. 어휴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아주.”
“아주 회사가 뒤집어 졌겠구만.”
“난리도 아니었지 진짜. 나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멍하게 있다가 그 새끼가 나를 걸고넘어지니까 이건 안 되겠다 싶더라고. 다시 H사로 차 타고 갔지. 비서한테 물어보니까 웬걸 안에 있다네? 그래서 면담 좀 하러 왔다고 전해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잠깐 기다리라는 거야.”
“오 그래서?”
“후, 씨바 근데 삼십 분이 지나도 어째 오라는 기미가 없는 거야. 그때가 세시인가 그랬는데. 근데 뭐 별 수 있냐? 갑질이라면 힘없는 을이 숙이는 수밖에. 뺑이치면서 기다렸지 뭐. 그랬더니 여섯 시인가? 그 새끼가 가방 들고 안에서 나오는 거야. 그러더니 나한테는 눈길도 안 주고 비서한테 ‘먼저 퇴근할게요’하면서 나가는 거 있지.”
김필수가 다시 생각해도 열받는다며 가슴을 탕탕쳤다.
"와 나 진짜 황당한 그 기분 아냐 너희들? 내가 진짜.. 아무리 옛날에 개 같이 살았어도 이제 마음 잡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데 꼭 그걸 못 참고 건드리는 놈들이 나타나는 기분?"
유재환이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옛날엔 진짜 막 살기는 했지."
"근데 어쩌겠냐. 회사 존망이 걸려있는데. 바로 엘리베이터 잡고 쫓아 내려갔지. 갔더니 기사가 차 문 열어주고 있대? 그대로 차 문 붙잡고 아이고 이사님 했지."
김민수가 무릎을 꿇는 시늉을 하며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 자식이 눈을 이렇게 올려 뜨고는 '무슨 일 인데요?'하는거야. 와 그때는 열도 안 받더라 단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이 새끼가 고분고분해질까? 이 생각밖에 안 드는 거야. 그래서 일단 무릎 구부리고 눈높이를 맞췄지. 이게 정말 간단한 퍼포먼스인데, 꼰대들은 이걸 기가 막히게 좋아하대. 응? 나도 아빠한테 배운 거지 옛날에. 씨바 꼰대가 나이 많다고 다 꼰대냐? 젊은 놈들도 대접받는 거 좋아하고 권력 휘두르고 이러면 꼰대지. 아무튼 그러니까 이 새끼가 표정이 좀 변하대? 이때다 싶어서 내가 아이고 이사님 제가 좋은 데 아니까 그쪽으로 모실게요 식사 한 번 어떠십니까 했지."
"야 그걸 어떻게 참냐 너도 참 대단하다."
"나도 속으로 내가 대견했다니까 그때는? 그래서 이제 강남에 VVIP들만 가는 룸빵에 갔지. 와 씨 너네 거기 얼마인 줄 아냐? 테이블당 500이야 500. 그것도 카드 안 받고 현금으로. 내가 진짜 내 돈 털어서 데리고 갔다. 예약도 못하고 마담한테 사정사정해서."
"그런데가 있어? 야 우리도 함 데리고 가주라."
이재민이 낄낄거리며 이야기하자 김민수가 꺼지라고 말하고는 김필수와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무튼 가서 애들도 A급으로 싹 불러 모아서 일렬로 대기시키고 술도 샹동으로 준비했지. 그랬더니 이 새끼가 처음엔 당황하대? 그러더니 테이블에 혼자 가서 싹 앉는 거야. 그래서 옳다쿠나 싶었지. 너 새끼도 남자는 남자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제 됐다 싶었던 거야. 얼른 옆에 뛰어가서 술잔 쥐어주고 한 잔 따라줬지. 그랬더니 술잔 들더니 냄새를 킁킁 맞대? 그래서 나는 새끼가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그런다며 속으로 웃었지. 그러더니 갑자기 냅다 술을 내 얼굴에 뿌리는 거야."
"뭐? 술을 얼굴에 뿌렸다고?"
"그래 씨바. 하 내가 술 싸대기는 그때 처음 맞아봤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건데."
"미치겠다 진짜. 아니 왜?"
"들어봐. 그래서 내가 순간 당황해서 한 3초? 멍 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열이 너무 뻗치는 거야. 그대로 일어나서 그 새끼 머리카락 쥐고 욕 갈겼지. 개새끼가 사람 무시해도 유분수 아니냐고."
“아니, 넌 그래서 머리채를 잡았다고? 김민수 성격 여전하네.”
“야, 씨바 너 같으면 참겠냐? 아부지 굽신거리는데 쳐다도 안 보지, 내가 응, 이사님 이사님 하면서 룸빵 데리고 왔더니 술 싸대기를 때리지, 그걸 어떻게 참냐?”
“하긴 그건 그렇네. 그래서 그 새끼가 뭐라든?”
“내가 머리채 잡고 한대 쥐어박으려고 하는데 이 새끼가 표정이 이상하게 평온한 거야. 뭐지 싶었는데 말을 하더라고 ‘민수야, 너 이래도 되냐?’라고. 그 말을 듣네 피가 싸 하게 식는 게 느껴지는 기분 너네 뭔 줄 아냐? 갑자기 막 아버지 얼굴 떠오르면서 우리 회사 망해서 차압당하고 직원들 짐 싸고 이런 게 상상이 되는데 와 미치겠더라… 그 순간 머리채 놓고 바로 무릎 꿇었지. 내가 무릎 꿇고 이사님 제가 미쳤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비는데 이 새끼가 낄낄 거리면서 갑자기 웃는 거야.”
말을 멈춘 김민수가 다시 가게 안쪽을 힐끗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민수야 나야 필수. 이러는데 내가 맨날 그.. 별명 불렀지 언제 이름을 부른 적이 있어야지. 씨바 필수가 누구야? 이 생각에 다시 얼굴을 보니까, 와 곰보인 거야. 내가 놀래서 멍 때리니까 이 새끼가 내 뺨을 툭툭 치더니 ‘친구끼리 장난 좀 쳐봤어. 너 장난 좋아하잖아?’ 이러는데 진짜 미치겠더라. 그러더니 ‘오늘 일은 아버지한테 잘 말해둘게’ 이러면서 짐 챙겨서 나가더라.”
“와 소름 돋네. 아버지가 뭐라셨냐?”
“우리 아빠 성격에 어떻게 됐겠냐? 재떨이 날아가고 장난 아니었지. 야 나이 서른 다 돼가는데 골프채로 맞았다 씨바 말이 되냐?”
“김필수가 대체 아부지한테 뭐라 그랬대?”
“뭐 다행히 학교 다닐 때 얘긴 깊게 안 했나 봐. 그냥 동창인데 행실이 불량해서 같이 일 안 한다고 했던 거래. 근데 내가 술 취해서 폭행하려 했다고 얘기했다더라. 아빠는 그 말 듣고 꼭지가 돌아버린 거지 완전. 씨바 집에서 내쫓길뻔한 거 엄마가 말리고 내가 진짜 싹싹 빌어서 넘어갔다.”
김민수가 답답한지 한숨을 내쉬었다. 유현석과 이재민이 뭔가 더 듣고 싶은 눈치였지만 김민수가 이제 그만 들어가자고 말했다. 김민수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감지한 탓인지 이재민이 불쑥 최선화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그래. 이제 들어가자 오래 나왔다. 오랜만에 최선화도 보는데 술이나 이빠이 마셔야지.”
“미친놈. 근데 최선화 뭔가 한물간 것 같지 않냐? 애가 옛날에는 청순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맛이 없어.”
“어 나도 느꼈는데! 뭔가 아직도 이쁘장하긴 한데 뭐라그래야 하나 축 늘어진 화초 같다고 해야 되나?”
“씨바꺼 김필수 새끼 때문에 짜증 나는데 오늘 함 해봐?”
“너한테는 안 줄듯.”
김민수 패거리는 선화를 향한 음담패설을 내뱉으며 가게로 들어갔다. 그들은 들어가는 내내 내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저들의 이야기에 취해 낄낄거리며 술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그들이 남기고 간 자리에서 복잡한 심정을 느꼈다. 김필수의 성공 이야기도 그렇고 김민수와의 악연도 그렇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김민수의 말대로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들이 담배 몇 가치 태울 시간 동안 김민수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남기고 간 선화의 대한 질 낮은 농담은 내 머릿속을 더욱 혼돈으로 치닫게 했다. 그들의 시시껄렁한 음담패설이 단지 남자들의 친목을 위한 단순한 유희로 치부되기에는 선화의 표정이 너무나 쓸쓸했다. 미처 흩어지지 않은 담배연기가 콧속을 매캐하게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