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우중충하다가 잠깐 갠다면
국문과를 전공한 게 내 여행 인생을 후퇴시켰다. 대학생 때까지 나는 국문과라서 외국어를 공부할 일도 없고 해외도 안 가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교환 학생 제도도 대만 정도만 가능해서, 유럽 여행 같은 건 꿈도 안 꿨다. 그래서 방학 때 해외도 안 가고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열심히 알바를 했다면 가능했겠지만 일할 열정도 없었고 부모님께 돈을 꾸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집에 틀어박히니 더 무기력해졌는데 이유도 몰랐다. 그저 생각했다. 젊을 때는 이렇게 혼란스럽고 세상을 하나도 모르겠는 느낌인걸까.
유럽에 가볼 생각을 한 건 돈을 벌고 난 후부터다. 25살 졸업을 앞두고 6개월 동안 인턴을 하며 나는 빠르게 늙은 것 같았다. 영화 업계에서 쓰디쓴 세상을 압축적으로 맛봤다. 단맛은 없고 씁쓸하기만 했고 혀끝엔 냉혹한 냉기만 감돌았다. 상사고 정치질이고 모든 사람이 좀 무서웠다. 앞으로 이런 회사 생활을 계속해야겠지? 내 첫 단추는 영화 업계로 꿰어져 버렸으니. 이제 내 길은 직장인이겠구나. 운명이 정해진 느낌에 서늘했다. 인턴 생활을 마치고선 뭔가 환기 거리가 필요함을 느꼈다. 직장의 쳇바퀴로 본격 편입되기 전에 기분 전환을 시켜줄 무언가.
유럽 배낭여행을 가볼까?
주변엔 이미 대학생 때 유럽 여행을 갔다 온 애들이 많았다. 그때는 별로 부럽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미 과제를 끝낸 그들이 부러워졌다. 배낭여행 경험이 있는 애들한테 연락해서 정보를 수집했다.
“응. 이번에 가보려구. 비행기 끊으려 하는데, 뭐 팁 같은 거 있을까?”
“너 그때 영국이랑 독일 갔다고 했지? 어디가 제일 좋았어?”
혼자 여행을 짜는 게 처음이었으니 가이드북도 사서 정독했다. 완전한 미지의 세계에 혼자 부딪혀보기로 했다. 여러모로 혼자가 더 나을 것 같은 예감이 있었고, 그 촉은 정확했다.
그건 내가 부모님에게서 떨어져 본 최초의 순간이었다. 20대 중반까지 난 독립해 본 적도 없고 대학 기숙사에 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항상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지지고 볶고 싸우고 미워하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면서도 거리를 둬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만큼 서로 밀착돼 있는, 집착적인 관계였다. 엄격한 부모님은 통금과 외박 금지로 나를 통제해 왔고 나는 거기에 저항하다가 지쳐서 무기력해 있었다.
인천 공항에 온 건 8년 만이었다. 엄마는 물가에 내놓는 애 같다며 공항까지 따라와 줬다. 내가 공항 게이트를 통과할 때까지 이것저것 챙겼다.
“이거 안 필요하니? 귀마개.” “여행자 보험도 들어야지?”
할 일을 끝내고 공항 의자에 앉아 엄마가 싸 온 김밥을 나눠 먹었다. 공항으로 소풍 나온 것이다. 야채와 계란 지단을 충실히 넣은 정석적인 맛이었다. 막상 3주간 집을 떠나려니 불안해진 나는 걱정거리들을 늘어놓았고, 엄마도 실감이 안 난다는 말을 계속했다. 엄마도 딸과 잠시 떨어지는 걸 걱정하면서 응원도 해주었다. 내가 왜 혼자 가겠다고 했을까. 복잡한 마음에 입꼬리는 경직되어 갔다. 심지어 아침에는 부처님께 절까지 하고 온 참이다. 부처님이 지켜주실 거야. 손목에 차고 온 염주 팔찌를 물끄러미 보았다.
다른 사람들 눈에 우리 모녀는 이민을 앞두고 생이별하는 모습 같았을 것이다. 울며 끌어안고 난데없이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평생 그런 말을 하지 않는 집안 분위기였음에도. 엄마 아빠는 평소에 내게 돈을 아꼈었는데, 이번만큼은 필요한 것들을 사주어서 놀랍고 좋기도 했다. 돌덩이같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가는 내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는 엄마를 뒤돌아보면서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입국심사, 수화물 검사 등 모든 게 신기한 경험이었다. 1터미널 탑승구로 가는 열차를 타는 건 이세계로 가는 기분이었다. 열차 밖 창문은 어두웠다. 우주선에 탄 듯 현실감이 없어지려는 찰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게이트를 찾아갔다. 루프트한자 713기 좌석 68J에 탔다. 불행히도 가운데에 낀 좌석이었다. 첫 혼자 여행이라 통로석을 잡아야 좋다는 걸 몰라서 발생한 참사였다. 양옆엔 외국인 아저씨와 한국 여성이 있었다. 담요를 덮고 좁아터진 좌석에 앉아 여행 오기 전 받은 ‘비행귀’ 귀마개를 꼈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사소하고 큰 고민이 많았다. 메르스가 유행인데 두바이를 경유할 것인지 위약금을 내고 바꿀 것인지. 비염 수술을 하고 올까, 동행을 몇 명 구해놓을지, 시기는 언제로 할지, 카메라는 뭘 가져갈지, 짐은 어떻게 쌀지 하나부터 열까지 고민투성이였다. 나 같이 걱정, 염려증이 많은 사람도 대범하고 여유로워질 수 있을까?
‘이렇게 할 걸, 저거 가져올걸…’ 비행기를 타자마자 후회가 시작됐지만, 이제 소용없으니 그냥 즐겨보자. 첫 여행에 품은 기대는 이것이다. 생각을 좀 버리고 오기. 실제로 기내 자리가 좁고 불편하다 보니 한국에서 가져온 생각의 자리도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10시간 한자리에 앉아 있으니 할 게 없어서 영화를 봤다. 리즈 위더스푼이 출연한 2015년 작 <와일드>를 보았는데, 내가 헤쳐 나가는 상황과 비슷하진 않지만 왠지 이입됐다. 영화 속 여주인공은 엄마를 잃고 아무 남자랑 섹스도 하며 망가진 일상을 살아간다. 가장 밑바닥을 치며 방황하던 중, 트래킹에 도전하게 된다. 그 트래킹 과정은 드라마틱하지 않고 담담하게 서술된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그녀의 묵묵한 트래킹에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지만 숨차 오르는 발걸음을 보고 들으며 같이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신발 끈을 묶고 다시 걷는 장면이 특히 뭉클했다. 나는 지금 영화사 인턴을 막 끝마치고 여행길에 오른 터였다. 졸업 후 인턴을 거쳐 이젠 어느 회사로 가게 될까? 여행을 다녀오면, 진로를 좀 더 알게 될까?
책과 영화에서 많이 봐왔지만 유럽 땅을 여행하는 건 완전한 미지의 세계였다. 아무리 시뮬레이션 해 보고 공부해 봐도 와닿지 않는 공상 속 얘기 같았다. 실제로는 어떨지 감이 하나도 안 잡혔다. 아무래도 혼자 여행은 처음이라 더 막막했다. 동행과 함께라면 뭔가를 뚫을 때 생기는 저항력이 나누어져서 책임도 덜하지만, 혼자 여행은 저항력이 내 어깨에만 지워지므로. 그게 무겁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비행기 날개 하나로 공기를 뚫는다는 것은.
중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경유했다. 경유 게이트까지 걷는 구간이 매우 긴 데다 시간이 촉박해 막 뛰었다. 종로 3가 5호선에서 1호선을 갈아타는 구간보다도 길었다. 다시 루프트한자 비행기로 갈아타는 데 성공했다. 나는 좌석에 앉아 숨을 몰아쉬며 비행기 엔진소리와 함께 시작될 이륙을 기다렸다. 경유가 좋은 건 이륙, 착륙을 한 번 더 경험할 수 있다는 거다. 이륙은 스릴 있고 멋진 경험인데 그걸 두 번 할 수 있다니. 입을 꾹 다물고 누구와 감상을 나누지 못한 채 혼자 겪으니 몸에 진동도 더 세게 오는 듯하다. 앞으로 어떤 진동이 오든 버틸 수 있을까? 젊을 때의 날개 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