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Bah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12월 중순. 카페 안에는 오전 11시의 햇빛이 구름 사이로 간간히 비춰오고, 그때마다 찻잔 속 투명한 찻물이 반짝인다. 잔잔하고 훈훈한 재즈풍의 캐롤이 흐르고 있다. 여름의 12월도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나는 방금 코타키나발루의 한 에어비앤비 아파트에서 체크아웃을 했고, 건물 1층의 카페에 앉아 바선생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언제부터 바선생을 무서워했나? 따끈한 실론티 한 잔을 호로록대며 목 뒤로 넘겨본다. 부드럽다. 지난 3일간의 내 모습을 돌이켜보니 어이가 없어 '후후' 웃음이 난다. 뭐, 이것도 그 집에서 나온 자의 여유이지 하루라도 거기에 더 머물라고 하면 나는 다시 아까, 그리고 어젯밤, 그제 밤의 얼굴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니고 눈가에 가까운 광대 위쪽이 살짝 들려 올라가 바들대고, 입은 나도 모르게 살짝 벌어졌으나 목구멍은 혀로 꽉 막아 숨은 겨우 콧구멍 두 개로만 소리도 안 나게 쉬는- 이 되어 바선생이 출몰했던 화장실 근처를 지날 때마다 "나오지 마~?!" "들어가!" "야! 야!"를 외칠 것이겠지. 정작 바선생 앞에서는 그런 큰 소리도 내지도 못하면서….
바선생은 두 번 나타났고 그 두 번이 다른 자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나온 그 선생은 내가 우주 먼지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왔으므로 (…….) 두 번째 나타난 그는 그가 아니다. 나는 두 번째 만난 그 선생 앞에 쫄아서 호기롭게 슬리퍼를 쳐 들었다가 조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손에 힘이 풀려버렸다. 슬리퍼를 놓친 내가 두 손을 가슴팍에 모으고 결정적인 순간을 놓친 나를 탓하며 팔을 몇 번 부들대는 동안 그는 유유히 사라졌다. (도대체 어디로...?) 눈에서는 눈물 대신 지진이 났다. 눈물은 입이 대신 흘려주었다. "으아아… 으아아… 나약한 자식아…." 나는 우는 소릴 해가며 이미 아무도 없는 화장실 문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검지손가락 하나만 쭉 뻗어 재빠르게 문을 닫은 뒤 싱크대에서 세수하고 침실 문을 꼭 닫았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스타일의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울고 있는 입을 다물며 문을 잠갔다. 진드기 알레르기가 있어 가져온 계피 오일 스프레이를 문지방에 뿌리며 제발 세상의 발 많은 모든 것들이 이 계피 향을 싫어하길 기도했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가슴팍까지 끌어 올린 뒤에도 한참을 잠들 수 없었다.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바선생들이 불빛에 환장하는지 여부를 고민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불을 끄고 자야 할 것이고, 그들이 불 켜진 방엔 누가 있을지 모르니 조심성 있게 행동하는 자들이라면 불을 켜고 자야만 한다. 아 도대체 그들은 어느 쪽일까…. 세상의 모든 지식이 떠다니는 인터넷의 어딘가에 이 정보가 있겠지만 나는 그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하며, 이 글에 한 번도 그들의 실명이 등장한 적 없음을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맞다, 그 이름을 쓰지도 못한다. 볼드모트 같은 존재들…. 인터넷엔 너무 정보가 넘쳐 어찌어찌 검색한다 쳐도 나는 예고치 않게 내 눈을 놀래키는 사진과 현미경사진 같은 것을 (굳이!) 보게 된다. 아니, 안돼. 안 볼 거야. 안 봐. 나는 혹시 잠에서 깨었을 때 사태를 파악하기 좋도록 불은 켜두기로 한다. 몇 번이고 벌떡 일어나 문 쪽을 살폈다. 아…. 아주 혹시라도 바선생들이 계피와 파티를 벌이는 종족이면 어떡하나…. 문틈에 낀 먼짓덩어리에 이는 작은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따….
엄마와 동생은 바 선생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내게 "무서워하면 그들도 그걸 알고 너/언니를 더 놀릴 거야"라고 내게는 협박에 가까운 다독임을 해주기도 했다. 아빠는 우리가 쥐만한 바선생이 날아다니는 집에서 살 때 "이것 봐, 아무것도 아니야"하며 그 큰 놈의 날개를 붙잡아 별거 아니라는 듯이 들이밀기도 했었다. 아빠! 손 씻어! 아니, 손 잘라 새로 해! 그러나 나는 내가 그들을 이토록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게 미안하고, 그렇게 미움받는 그들이 가여워 울지언정 (미친년이다) 그게 아무렇지가 않았었다. 그리고 여전히…. 도대체 왜일까? 더럽다고 정평이 난 그들이라서? 많은 괴담을 가진 그들이라서? 무엇이든 먹는다는 게 나까지 먹을까 싶어서? 너무 빨라서? 너무 많은가족들을 거느리는 게 가부장제의 어떤 것을 연상시켜서? 아니, 아니… 답은 없다. 저 중 어느 것도 답이 아니지만, 저 모두가 답이다. 정말 미안하지만… 네가… 싫어…!
나는 아직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창밖을 내다본다. 밤새 바선생을 피해 도망치고, 잡고, 치우고, 발견하는 꿈에 시달려서인지 목이 뻐근하다. 며칠간 겁을 너무 먹어서 아침을 안 먹었어도 배가 부르다. 그러나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나는 체크-아웃 하였다. 밖은 푸르고, 파랗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평화롭다. 차는 여전히 향긋하다. 나는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을, 그리고 그중 나와 같은 자들을 위해 정성스레 숙소 후기를 남길 것이다.
"뺨먀땨 뺘쎤썡이 나왔쎠 눈마쮸찌꾜 및찌는쭐 알럈써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