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by KJ

아직 밝을 때 집에 돌아왔다. 평일의 집은 보송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서재로 들어와서 불을 켰다.

책상에 연결되어 서 있는 선반에는 카메라와 렌즈들로 꽉 차 있었다. 카메라가 둘이었다. R50과 R6 Mark II. 스튜디오 사진 수업을 들으며 풀프레임을 기본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늦게 알았다. R6를 어깨에 메었다. 양 주머니에 휴대폰과 이어 버즈를 넣었다. 스마트워치를 차고 반지를 왼손 중지에 끼웠다. 집을 나섰다. 6시 4분이었다. 오늘 해 지는 시각은 6시 50분이라고 했다. 46분의 골든아워가 남아 있었다. 이후 30분의 블루아워가 추가될 것이었다. 큰 도로를 지나고 두 아파트 단지 사이에 난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한 단지의 후문 계단 앞에는 자전거와 킥보드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렌즈의 덮개를 빼서 왼쪽 주머니에 넣었다. 카메라를 켜고 뷰파인더를 봤다. 자전거, 킥보드들과 함께 옆에 있는 계단, 행인, 가로등이 프레임에 들어왔다. 카메라를 손에서 놓았다.


삼거리의 신호등 앞에서 멈췄다. 횡단보도는 건널목 세 지점의 모든 인도를 연결하는 구조였다. X자와 ㄷ자를 엎어놓은 모양을 겹친 형태였다. 지나가는 차들의 바람을 맞으며 주위를 살폈다. 2시 방향 멀리 고층 주상복합이 있었다. 카메라를 옆으로 세웠다. 주상복합 아래에 있는 주유소가 보였다. 렌즈의 다이얼을 건물만 보일 때까지 돌렸다.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를 눈에서 떼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연푸른색과 재색을 섞은 듯한 하늘 배경에, 비슷한 색의 건물이 보였다. 카메라를 손에서 놓았다. 세 방향에서 차들을 보내는 신호가 끝났다. 마지막으로 내가 서 있는 왼편의 치안센터에서 나오는 차를 위한 신호가 켜졌다. 오른쪽 앞에 걸려 있는 신호등의 화살표가 10초 정도 후에 사라졌다. 보행 신호가 켜지고 사람들이 건넜다. 왼쪽 건너편으로 걸으니 대각선으로 마주 오는 행인이 있었다. 걷는 속도를 조금 줄였다. 행인이 내 앞을 지나쳐갔다. 대로변의 건물 사이를 통해 골목으로 들어갔다.


양식집과 횟집들이 몇 집 계속되었다. 골목 안 교차로에서 왼쪽을 보니 그보다 몇 배 많은 음식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자카야, 와인바, 곱창집 등으로 다양해진 간판과 실내를 두리번거리며 지나쳤다. 음식점 행렬을 지나쳐 길을 건넜다. 다음 골목은 주거지였다. 3층 정도의 빨간 벽돌집들이 이어졌다. 주거지 사이의 교차로를 몇 개 지나가다가 두 건물 사이를 구분해 놓은 목재 담장을 봤다. 담 한가운데에는 붉은색 스프레이로 칠한 듯한 흰색 아크릴판이 붙어 있었다. 천천히 다가갔다. 한글로 된 일종의 공지사항이었다. 조금 더 다가갔다. 경고문임을 직감했다. 아크릴판은 몇 번 깨졌는지 비대칭 오각형이 되어 있었다. 공지문은 원래 몇 행이었는지도 불분명했다. 카메라를 기울이고 뷰파인더를 오른쪽 안경알 앞에 댔다. 인식 또는 추측이 가능한 글자는 다섯 자였다. 주-차-시-좆-됨.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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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