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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은 Jan 30. 2022

서른 되면 괜찮아질까요

드라마 <멜로가 체질> 리뷰







    서른, 어리다는 핑계를 댔다간 다 큰 어른이라는 것이 질책이 되어 돌아오고, 어른이라고 으름장 놓았다간 코웃음에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인 이상한 나이.

드라마 <멜로가 체질> 中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바로 그 이상한 나이 서른을 살아가는 세 친구, 진주와 은정, 한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랑과 일, 그리고 사는 것에 대한 저마다의 고민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은 때로 버거운 하루들을 견디듯 살아내고, 때로 고민을 모른 척하며 즐거이 하루를 보내는 우리들의 현재를 떠올리게 한다. 시청자들은 진주와 은정, 한주, 그리고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들의 모습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한다. 공감이 건네는 위로는 다른 어떤 위로보다도 큰 힘을 가진다.



    <멜로가 체질>은 방영 중 시청률은 저조했으나, 유튜브에 업로드된 짧은 클립들의 조회수는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인생 드라마를 물으면 <멜로가 체질>이라 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방영 당시 시청률에 비해 화제성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나, 드라마를 시청한 이들의 호평을 통해 입소문을 타며 넷플릭스나 티빙 등의 OTT 서비스에서 드라마를 정주행 하는 유입층이 꾸준히 존재하는 덕도 있다.



    지금껏 다른 공간에서도 써왔던 영화 리뷰와는 달리, 드라마 리뷰는 아직까지 내게 도전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리뷰를 적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전체 분량으로 보았을 때 드라마는 영화보다 훨씬 더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고, 당연히 더 많은 인물과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다. 앞으로 리뷰를 써나가면서 그 방식은 꾸준히 변화하겠지만, 우선 나는 각 드라마마다 좋았거나, 아쉬웠던 포인트들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모니터링 해보려 한다.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궁금증이나 제안하고 싶은 개선점이 있다면 그 역시 다뤄볼 것이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1. 평범해서 더욱 특별한 이야기





    "사는 게 그런 건가. 좋았던 시간의 기억 약간을 가지고 힘들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티는 것."

    드라마 <멜로가 체질> 中




    자신의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 까탈스러운 작가의 비위를 맞추는 보조 작가로 일해야 하는 진주, 일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했던 은정, 매일 같이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직장인 한주,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누구도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덜어주진 못하지만, 대신 그들에겐 서로라는 좋은 친구가 있다. 고된 하루의 끝에 함께 맥주를 마시고, 야식의 유혹에 매일같이 함께 넘어가버리고 마는 그런 친구들. 한없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과 함께하면서 더욱 특별해진다.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우리 눈에는 날씬하기만 한 배우들이 매일 같이 몸무게를 재고 비명을 지르는 장면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이것 역시 여성들이 겪고 마주하는 현실적인 고민 중 일부인 것은 맞지만, 여성들이 느끼는 일종의 강박적인 스트레스가 유쾌한 분위기인 이 드라마의 전체에 걸쳐 계속해서 다루어질 부분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있었다.



    드라마 속에서 진주가 쓰는 대본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는 <멜로가 체질>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일과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다. 극 중 손범수 PD는 이 대본을 보고 멋지지 않은 이야기라고 말한다. 온통 멋진 거짓말인 드라마들 사이에서 멋지지 않고, 거짓말도 아닌 솔직한 이야기.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이 문장은 어쩌면 많은 이들이 <멜로가 체질>을 인생 드라마라고 말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시청률이라는 결과를 내야만 하는 드라마들은 때로 자극적인 소재와 이야기들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고, 그것이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람의 이야기가 가진 힘을 믿는다. 아주 거창하고 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사람 냄새가 나고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야기는 결국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된다. <멜로가 체질> 역시 아주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고 따뜻하다.







2. 멈추지 않는 서른들







    "우리 나이가 너무 좋은 거 같아. 뭔가를 다시 시작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 중에는 제일 노련하고,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좀 애매한 나이 중에는 제일 민첩하고. 우리 어리고 똑똑한 거구나."

 드라마 <멜로가 체질> 中



    서른이라는 나이는 어른 같다. 이십대에서 고작 한 발자국 더 나갔을 뿐인데, 삼십대의 시작이라는 이유로 그 무게감이 더해진다. 이십대의 끝, 삼십대의 시작, 누구나 그 애매한 간극에 공감할 수 있기에 <멜로가 체질> 속의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실수하고, 실패하고, 때로 무너지면서도 친구들과 맛있는 야식을 먹으며 고단했던 하루를 날려 보내는 모습에 함께 울고 웃게 되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말은 그 의미를 느낄 때 비로소 무게감이 느껴진다. '어른'이 주는 책임감이라는 무게는 때로 우리의 도전을 가로막고, 원하는 크고 작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든다. 계속되는 실수와 실패에 더는 '어려서'라는 핑계를 댈 수 없어 좌절하기도 한다. <멜로가 체질>의 진주와 은정, 그리고 한주 역시 여전히 많은 고민을 안고 실패를 겪으며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어른'이라는 말에 자신들을 가두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여러 일들을 통해 배우며 발전한다.



    드라마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쓰고, 결국 그 꿈을 이뤄낸 진주, 이미 다큐멘터리로 한 번 큰 성공을 거뒀지만, 또 하나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나가는 은정, 매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직장에서도 끝끝내 존경스러운 상사의 인정을 얻어내는 한주까지, 완벽하지만은 않은 어른이기에 더 빛나는 존재들이다.








    "나는 택배 받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식당에서 메뉴판 보는 것도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이 일을 좋아해요. 무엇보다 소중한 이 일을 작가님과 같이 하고 싶다는 거고요. 막 아니고 잘."

 드라마 <멜로가 체질> 中




    드라마의 초반부 손범수 PD가 임진주 작가에게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하며 하는 말이다. 이전까지 한없이 가볍게만 그려졌던 손범수라는 인물이 본인의 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정과 책임감을 단번에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 대사이기도 했다. 사람이 계속해서 꿈을 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꿈을 이루게 되었다고 해도,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할 일이 되었을 때 처음과 같은 애정을 가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기에 범수가 진주에게 진솔하게, 일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털어놓는 장면은 마음 깊이 와닿았다. 자신의 일을 사랑할 수 있는 범수가 부럽기도 했고, 멋지다고도 생각했다. 특히 나 역시 손범수 PD의 직업인 드라마 PD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잠시 쉬어가야만 하는 시기가 오더라도, 끝내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아가는 <멜로가 체질> 속의 서른들도 보며 나도 멈추지 않고 꿈꾸기 위해 노력하는, 그 꿈을 이뤄가는 어른으로 성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3.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 드라마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온통 미워할 수 없는 보통 사람들로 가득하다. 소위 말하는 밉상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회차를 거듭하며 미운 정이 들기도 하고, 이야기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그들의 속내와 진심에 쌓아두었던 마음의 벽이 무너져내리기도 한다. 극 중 이소민 캐릭터나 정혜정 작가가 대표적으로 그렇다. 그런 부분에 있어 <멜로가 체질>은 사람의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부분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우리에겐 착하고 선한 사람처럼 보였던 사람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우리에게 나쁘고 미운 사람으로만 보여도 누군가에겐 다정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현실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적 선에도, 절대적 악에도 속하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 그런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모든 선택과 행동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때로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래, 세상엔 저런 사람들도 있지'와 같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 건 그만큼 이 드라마가 모든 인물들을 현실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뜻일 거다.



"원래 세상은 조금 더 착한 사람들이 조금 더 애쓰고 살 수밖에 없어요. 그게 막 엄청난 손해 같지만, 나쁜 사람들한테 세상을 넘겨줄 수는 없잖아.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구를 지키고 있는 거야."

 드라마 <멜로가 체질> 中



    절대적 선이나 절대적 악에 속할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도 그렇다. 무조건적인 이타심과 포용력을 가졌느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자신의 실수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질 줄 알고, 자신의 삶이 버거워도 다른 이에게 다정할 줄 알며, 때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 상처를 보듬고 안아줄 줄 아는 사람들이다.



    착하게 사는 것보다 나쁘게 사는 것이 더 쉬워 보이고, 이타주의적으로 사는 것은 손해 보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세상에서 선함을 지키는 것은 결국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이다. 사람에 대한 친절함, 세상에 대한 다정함, 사랑이나 배려와 같은 가치를 잊지 않는 것은 조금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조금 더 따뜻한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멜로가 체질>이 좋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세상과 사람의 선함을 잊지 않는 이야기라서 좋았다.






4. 감독과 배우의 합이 만들어낸 대사 맛집




    <멜로가 체질>은 이병헌 감독이 극본과 연출에 모두 참여한 드라마다. 지금껏 이병헌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을 본 적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정말 맛깔난 대사를 쓰고 연출하시는 감독님이다. <멜로가 체질> 역시 본 사람들 사이에선 흔히 대사 맛집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명대사들을 남겼다. 마음에 콕콕 박혀오는 명대사뿐만 아니라, 대화 사이사이의 티키타카와 클리셰를 약간씩 비트는 표현들은 드라마를 훨씬 통통 튀고 위트 있게 만들어주었다. 곱씹을수록 깊이 와닿는 대사들은 우리를 주인공들과 함께 웃고 울게 만든다.



    드라마 내에서 부러 문어체적이거나 연극적인 어투의 대사를 구사하는 경우도 많았고, 현실감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는 장면 연출들도 꽤 있었으나,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속의 현실적이지 않은 장면과 대사들은 오히려 드라마의 매력을 더해주었다. 자칫 잘못하면 지나치게 어색하거나 흐름을 깨뜨릴 수 있는 부분들을 매끄럽게, 재미있게 살려낸 감독의 연출 능력에도 감탄이 나왔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소화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천우희, 전여빈, 한지은 배우뿐만 아니라 안재홍 배우와 공명 배우는 물론이고, 크고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캐릭터를 구축한다.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마치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고, 드라마 속의 이야기가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만큼 실감 나는 배우들의 연기 덕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은 사랑을 잘하고 싶다는 말과도 같지."


"헤어지는 이유가 한 가지일 수는 없지. 한 가지 이유로 사랑했던 건 아니었을 거 아냐."


"그래, 꽃길은 사실 비포장도로야.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데 죽을 수도 있다."


"당신의 눈에 뭐가 보이든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은정이는 처음 알았다고 했어. 부와 명예의 가치가 사랑의 가치보다 한참 아래쪽에 있다는 걸."




    이미 앞서 적은 카테고리에서도 <멜로가 체질>의 여러 대사들을 인용했지만, 명색이 대사 맛집 카테고리인 만큼 몇 가지 대사들을 더 소개해보았다. 텍스트로 읽어도 충분히 좋은 대사들이지만, 드라마를 통해 접할 때 훨씬 생생하게 와닿으리라 생각한다.







5. 모든 청춘들에게 건네는 공감과 위로






    세 친구들의 현실을 솔직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멜로가 체질>에는 재밌고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도 많지만, 슬픔과 씁쓸함이 느껴지는 장면들도 많다. 첫 번째 카테고리에서 인용한 대사에서 말하고 있듯이, 우리의 인생은 약간의 좋은 기억과 대부분의 힘든 기억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살아내야만 하는 하루들 속에서 수없이 상처받고 무너져도 괜찮았던 건, 사랑했던 남자가 행복해지고 싶다며 아이와 저를 떠났을 때 제 인생을 버려도 좋다며 흉기까지 들고 쫓아가 준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세상과 이별하려 했을 때 백마디 말보다 빈틈없이 안아주며 곁에 있어준 친구들과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고, 나의 새로운 시작과 가끔의 성공을 제 일처럼 기뻐해 줄 가족과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인생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많은 것들과 우리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를 버티게 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바로 사람이다. 우리를 상처받게 하는 것도 사람이지만, 우리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존재도 사람이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힘든 일이 더 많은 것만 같은 삶에서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 친구, 연인, 직장 동료, 혹은 아주 짧은 인연으로 스친 사람 역시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 여전히 미숙하기만 한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해가며 조금씩 나아가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때로 무너지고 실패하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세상에 완벽하기만 한 사람은 없으니까, 언제든 다시 일어나 나아가면 되니까 괜찮다고 말해준다. 아무리 내가 무너질 것만 같은 순간에도, 나를 자랑으로 여겨줄 사람은 있고, 변함없이 옆에 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서툰 리뷰였지만,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본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 때 다시금 드라마를 떠올리고, 아직 <멜로가 체질>을 보지 않은 이들이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드라마에 흥미가 생기기를 작게 소망해 본다. 이것으로 나의 첫 번째 드라마 리뷰를 마치겠다. 다음 드라마 리뷰 업로드는 아마 월말이 될 것이고, 그전에 책이나 영화 리뷰가 먼저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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