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열등감
학벌에 관한 피해의식을 생각해보자. ‘현철’은 공부를 못했다. 당연히 대학도 이름 없는 지방대를 나왔다. ‘현철’의 형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잘해서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 만한 명문대를 나왔다. “우리 현철이가 형만큼만 공부를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의 입버릇이었다. 부모는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늘 ‘현철’을 형과 비교했다. “현빈이는 이번에도 1등이지. 어? 현철이? 글쎄, 잘 모르겠네.” ‘현철’은 거실에서 들려오는 부모의 통화를 들으며 알았다. 형은 부모의 자랑거리이지만, 자신은 부모의 부끄러움이라는 사실을.
‘현철’은 학벌 때문에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고 그로 인해 과도한 자기방어의 마음이 생겼다. “나 같은 게 뭘 잘할 수 있겠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만 안 줘도 다행이지.” 이것이 ‘현철’의 자기방어다. 의아하다. 이런 자기비하가 어떻게 자기방어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다. 이 마음은 언제 고통이 되는가? 사랑받지 못했을 땐가? 아니다. 앞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희망(가능성)이 있다면 지금 사랑받지 못하는 건 견딜 만하다. 언제 사랑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채로 사랑을 기다려야 할 때 우리는 가장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마치 지독한 희망고문의 고통처럼 말이다.
이 고통에서 자기를 방어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열등감이다. 열등감이 무엇인가? 자신은 다른 사람에 비해 (능력이나 매력이 없어서) 항상 뒤떨어진 존재라고 여기는 만성적인 의식이다. 이는 명백한 자기방어의 마음이다. 자신을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열등한 존재로 확정해버리면, 사랑(인정‧관심‧칭찬)받지 못해 고통스러운 마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랑받을 가능성 없다고 단정해버리면 사랑받지 못해 고통스러울 일도 없으니까 말이다.
공부는 못했지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던 ‘현철’은 어느 잡지사에서 인정 받으며 포토그래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현철’은 유식해보이거나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 앞에서는 시선을 피하거나 말을 더듬곤 했다. 왜 그랬을까? ‘현철’은 자기 분야에서 이미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일이 ‘현철’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유식하고 학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현철’은 공부를 못해서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해 홀로 방안에서 사진기만 만지작거렸던 주눅든 아이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적극적 열등감, 시기와 질투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열등감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소극적 열등감과 적극적 열등감이다. 소극적 열등감은 위축감이라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현철’이 바로 그 소극적 열등감에 사로잡힌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적극적 열등감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이는 시기와 질투라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흔히, 시기와 질투를 피해의식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꼽는다. 그도 그럴 것이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자주 통제할 수 없는 시기와 질투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기와 질투는 피해의식의 근본적인 얼굴은 아니다. 이는 열등감이라는 얼굴에서 파생된 표정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시기와 질투는 열등감의 적극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피해의식이 열등감이라는 얼굴로 드러날 때, 이는 다시 위축감과 시기‧질투이라는 두 가지 마음으로 분화된다. 전자는 사랑받을 가능성을 애초에 제거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고, 후자는 오직 자신만이 누군가의 사랑을 독점해야 한다는 마음이다. 얼핏 이 둘은 상반된 마음처럼 보인다. 하지만 위축감(소극적 열등감)과 시기‧질투(적극적 열등감)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위축된 이는 시기‧질투에 사로잡혀 있고, 시기‧질투에 사로잡혀 있는 이는 위축감에 짓눌린 상태다. ‘현철’은 유식해보이거나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 앞에서 위축감만 느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현철’의 마음 한구석에는 그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늘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처럼 피해의식은 열등감이라는 얼굴로 우리를 찾아온다. (과거의 상처 때문에 발생한) 열등감에 휩싸일 때 우리는 과도하게 자신을 방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어찌 이해하지 못할까? 형과 비교당하며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상처 속에서 살아온 ‘현철’ 아닌가? 그런 ‘현철’에게 자신이 타인보다 열등하지 않다고 믿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남겨진 열등감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형과 유사한 존재들만 보면 그 상처는 다시 벌어져 진물이 흐른다.
하지만 ‘현철’은 알고 있을까? 그 열등감 때문에 ‘현철’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서마저 점점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여기는 이가 자신의 잠재성을 온전히 실현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또 ‘현철’은 알고 있을까? 그 열등감 때문에 ‘현철’은 사랑하는 연인에게마저 크고 작은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열등감에 사로잡힌 이는 누군가에 크고 깊은 사랑을 줄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받을 수도 없는 법이다. 애초에 자신은 그런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열등한 존재라 여기기 때문이다. 피해의식이 열등감이라는 얼굴로 우리를 찾아올 때 불행의 전주곡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