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칼럼]'나'는 '기억'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야. 기억은 불완전하다고."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야. 기억은 불완전하다고."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 대사처럼, 기억은 해석이 맞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상의 기억을 왜곡하고 변형시킨 형태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는 기억하지만 현재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문신으로 기록을 남기며 과거에 집착하고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한다. 이 영화는 기억의 조작과 불완전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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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분명 왜곡되어있고 그래서 불완전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분이기도 하다. 근대의 철학자 ‘피히테’는 ‘자기의식(자아)이란 주체와 대상을 연관 지어 통일시키는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자기의식을 통해 스스로를 규정하게 된다. 피히테가 언급했던 명제 “나는 나다(A=A)”는 의미 없는 동어반복이 아니다.


딸기(A)를 딸기(A)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로 생각될 수 있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기억의 총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A=A”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나’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기억은 ‘나’란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토대인데, 이것이 왜곡과 변형으로 인해 불완전하다면, 도대체 ‘나’는 무엇으로 정의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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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불완전한 과거의 기억으로 정의될 수도 없고, 미래에 변화할 현재의 나로서도 정의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언젠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나 어느 순간마다 깨달음(?)를 주는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에 비해 생각이 많이 달라진 까닭이다. 고통과 고됨을 걸어온 ‘현재의 나’가 더욱 마음에 드는 탓에 가끔 ‘과거의 나’를 원망할 때도 있다. ‘그때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하고.


「철학흥신소」수업에서 정말 중요한 기억은 ‘고정불변의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기억’이라고 결론 맺었다. 이 결론은 마치 어느 영화의 열린 결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허무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특정한 기억에 결코 머무를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내가 실재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 기묘한 자기인식이 어디서 오는지 알게 되었다.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상대와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나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나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김지연

-글루미한 것을 좋아하는, 과도하게 진지한, 핵노잼

- 회사에서 일하지만 언제나 백수를 꿈꾸고 있음

- 비영리재단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있음(돈에 환장하진 않았다는 자부심임)

- 독서와 영화(좀비)와 맥주를 좋아함

- 지금은 철학 꿈나무

- 남자친구를 찾고 있는 건 절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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