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서영칼럼]아주 개인적인, 독립운동사

'최평산'과 '김홍기' 선생을 위하여.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이 말은 모든 역사는 아주 개인적인 역사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s. spinoza


전남 완도군 소안면에 독립운동의 발자취가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곳에는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이 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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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안배달청년회 사건과 살자회 사건

1920년 소안도에서 회원 100여명을 중심으로 배달청년회가 조직되었다. 이 조직은 1924년에 노농대성회, 1926년에 살자회를 조직하고 그들과 연대하여 투쟁하였다. (중략) 1927년 소안사립학교 강제폐쇄사건이 터지자 이를 규탄하는 면민대회를 같은해 11월 20일에 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대회를 준비했던 <선언>이란 문서가 일경에 의해 압수되고 말았다.
<선언>은 ”민족해방운동의 선구가 되자. 조선총독 폭압정치를 여지없이 폭로하자“는 등 일제를 규탄하는 격렬한 문구로 작성되었다. 이 일로 송내호, 최평산, 최형천, 신준희, 강정태, 신광희, 김병규, 김통안, 김남두, 주채도, 이정동, 이각재, 김홍기 등 13명이 구속되었다. (중략)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사건의 일심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송내호와 김홍기가 서거하고 말았다. 송내호는 1928년 12월 20일 34세를 일기로 영면하였으며, 김홍기는 1929년 8월 27일 21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위에 등장하는 '최평산'은 나의 5촌이고, '김홍기'는 나의 4촌이다.


얼마 전 외할머니 댁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90세를 훌쩍 넘긴 외할머니께선 자신의 친오빠 김홍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형무소에 갇혔던 오빠가 결국 심한 폐병으로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얘기는 금시초문이라 당황스러웠다. 곧바로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접속해 독립유공자 명단을 샅샅이 뒤졌고, 마침내 그분의 이름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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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내 외외종할아버지라고 하니 자료를 냉정하게 읽을 수 없었다. 조금은 감정적이 되어 기록을 읽어내려갔다. 고작 21년의 짧은 생애를 확인하곤 마음이 저릿해졌다. 외할머니 말에 따르면 오빠가 중국군관학교에서도 활동했다고 했다.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황푸군관학교라면 의열단과도 관계가 깊은 곳 아닌가. 난 '한겨레:온'에 실린 2018.4.15일자 기사에서 관련 기록을 찾아냈다.


일심단 사건

1927년 수의위친계의 후신으로 일심단이란 비밀결사대가 조직되었다. 이 조직 역시 송내호 선생의 지도하에 조직되었는데 사업내용 또한 수의위친계와 같은 것이었다. 광동(황푸)군관학교에 김홍기(소안도)를 책임자로 김광재(노화도), 김재수(노화도) 등 3명을 파견하였고, 일본에 김장안(소안도), 위경양(소안도), 이수산(소안도), 정광택(소안도) 등을 파견하여 점조직으로 비밀리에 항일운동을 하였다.


당시 오빠가 집안 돈을 몰래 전부 가져가 군관학교 자금으로 쓰는 바람에 가족들의 생계가 곤란했었다고 외할머니는 덧붙이셨다. 소심하기 그지없는 나로선 그런 담대함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외할머니께선 내 5촌인 최평산이란 사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다. 그는 유명한 항일운동가였는데 해방 후 경찰에 즉결처형 당했단다. 언뜻 듣기에도 비극적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작은아버지인 그분의 흔적을 찾다가 한겨레21 제888호에서 관련 기사를 발견했다.


전남의 완도·해남 등 지역에서는 항일운동에 몸담았던 상당수 사람들이 해방 직후 자연스럽게 건국준비위원회, 인민위원회, 조선인민당, 청년단체 등 지역 정치에 가담했다. 그러나 이들은 미군정의 공출에 반대하거나 이승만 편을 들지 않거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한국전쟁 이전에 경찰에 사살되기도 했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보도연맹원 혹은 부역자로 지목돼 대부분 학살되었다. 최평산(1903년생)은 일제 시기 완도군 소안면에 본부를 둔 수의위친계(守義爲親契) 구성원이었고, 배달청년회 사건으로 3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는 대표적 항일 인사였다. 그는 해방 뒤 과거 항일운동 동료들과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다가 경찰의 주목을 받았고, 결국 1948년 11월 5일 경찰에 사살되었다.


잊혀져가는 그분을 적어도, 나는 기억해야겠다.





방서영

- 고흐 그림보고 울 수 있는 사람. (하품 말고)

- 한 시간동안 하늘을 볼 수 있는 사람.(미친 건 아님)

- 하지만 평범하게 살고 싶어함. (그런데 이미 틀렸음)

- 장점 : 6개국어 가능한 언어천재(라고 본인이 말함)

- 단점 : 자기 객관화 부족(자신이 얼마나 근사한 사람인지 자신만 모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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