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1)

오랜 친구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by 사수자리 에이미

시절인연 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는 뜻으로, 인연의 시작과 끝도 모두 자연의 섭리대로 그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뜻도 내포한다.


최근들어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 계속 곱씹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내 오랜 친구가 어쩌면 시절인연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우린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만났다. 아직 고등학생티를 벗지 못한 풋풋한 얼굴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친구에게서 왠지모를 친근감이 들었다. 우연찮게 서로 중,고등학교를 같은 지역에서 나왔다는것을 알게되었고, 그날 이후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경상학부였던 우리는 자연스레 같은 과를 선택했고, 대학생활 4년 내내 희노애락을 함께했다. 등하교길에는 항상 함께여서 심심하지 않았고 방과후에 있던 모든 모임에도 대부분 동행했다. 그마저도 아쉬웠을까, 사는 지역이 가까웠던 우리는 주말에도 틈틈히 만나 쇼핑, 수다를 즐기며 둘도 없는 벗이 되었다. 방학이면 항상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도서관에 가서 자격증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렇다보니 대학교 내에서는 나와 친구의 이름을 한글자씩 따서 우리를 별명으로 부르곤 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우리는 직장인이 되었다. 취업을 하고나서도 주말에 틈틈히 만나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우리 둘다 배려심이 많은 편이고,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다 보니 서로에게도 항상 조심스레 대했다. 친구들끼리 친해지면 의례적으로 하는 편한 말들이나 무례한 행동도 잘 하지 않았고,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서로를 배려하며 지냈다. 그러다보니 오랜동안 지내면서 다툰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졸업 이후 몇번의 이직을 거치며 계속해서 직장생활을 이어나갔고, 친구는 몇년 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사를 하고 공기업 입사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명은 직장인, 한명은 취준생으로 각자의 인생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원하는 기업에 입사하려 고군분투하는 친구를 난 항상 응원해주었다. 나는 선뜻 가지 못하는 길을 과감히 선택하고 실행하는 친구가 멋지고 대단해 보였다. 물론 친구도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것 또한 과정이라고 격려해주며 친구의 앞날을 응원했다.


하지만 이때부터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와의 관계가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 2년.. 시간이 흐르고 친구의 시험 낙방 소식을 계속 듣게 되었다. 친구가 시험준비에 열을 올리는 사이, 나도 어느새 n년차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주변 겹지인들의 결혼 소식이 하나 둘 들려오기 시작했고, 한날은 아는 오빠의 청첩장 모임에 친구와 함께 참석했다.


친구를 제외한 모두가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는 '직장생활과 연애, 결혼'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공통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던 도중, 친구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 다른이야기 하면 안되? 왜 계속 직장이랑 결혼 이야기만 하는거야?" ... 순간 우리 테이블에 정적이 흘렀고, 우리는 모두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동시에 다른 지인들은 서로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 역시 그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친구의 눈치를 보며 이야기했다. "ㅇㅇ아, 그럼 원하는 주제를 알려주면 우리 그 이야기하자!" ... 아뿔싸! 이 말이 잘못되었던 걸까. 친구는 더 화를내며 말했다. "뭐라구..?" 이내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