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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어제와 오늘 –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증권맨 일기》 12편

by 주알남

변화의 속도를 체감한 10년

제가 여의도에 처음 들어섰던 시절, 투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HTS를 켜기 위해 PC 앞에 앉아야 했고, 객장을 직접 찾아와 주문을 넣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모니터 너머로 보던 시장은 느리지만 단단하게 움직였고, 정보는 ‘전달’되는 것이었지 ‘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땐 시장과 투자자가 서로 분리된 세계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개념이 무너졌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누구나 실시간으로 매매하고,
해외 지수·환율·비트코인까지 24시간 흐르는 시장 속에서
투자자들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장에 접근하는 문턱이 낮아지면서 참여하는 사람도, 그 속도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정보의 혁명, 판단의 부담

과거에는 애널리스트 리포트와 뉴스가 일종의 ‘정답지’처럼 여겨졌습니다.
보고서를 받아보기 전까지는 시장을 해석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때도 하루, 이틀의 간격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유튜브, 커뮤니티, SNS 속보, 텔레그램 알림…
정보는 순식간에 퍼지고, 그 정보는 또 다른 해석을 낳고,
그 해석은 다시 시장의 움직임이 됩니다.

정보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그만큼 ‘무엇을 믿고 무엇을 버릴지’에 대한 부담도 커졌습니다.
시장은 더 투명해졌지만 더 소음이 많아졌고,
투자자는 더 자유로워졌지만 더 흔들리기 쉬워졌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주인공 – 개인투자자

10년 전만 해도 시장의 중심은 기관과 외국인이었습니다.
개인은 변동성에 흔들리고, 급등락에 취약하며,
결국 ‘패자’가 된다는 고정관념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 쇼크 이후 개인투자자는 시장의 가장 강력한 축이 되었습니다.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대량 매수가 이어졌고,
공매도 금지 기간 동안 시장의 지형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개인은 약하다’는 오래된 통념은 무너졌고,
이제는 개인의 심리·자금 흐름이 시장을 주도하는 날도 많습니다.
시장의 주인공이 바뀐 것이죠.


변하지 않은 단 하나 – 인간의 심리

하지만 아무리 많은 것이 변해도, 시장 그 자체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시장은 결국 사람의 감정으로 움직이며,
탐욕과 두려움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옵니다.

2008년 공포로 모든 것을 던지던 투자자들과
2021년 공모주 광풍 속에서 줄을 서던 투자자들은
표현 방식만 달랐을 뿐, 본질적으로 같은 감정의 흐름이었습니다.

기술은 변했고 정보는 빨라졌지만,
시장을 움직이는 에너지—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차트를 볼 때 데이터를 먼저 보지 않습니다.
그 숫자를 만든 ‘사람의 감정’을 먼저 떠올립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선

시장과 함께 10년을 보낸 사람으로서
저는 이제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동시에 바라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기술, 제도, 참여자들은 끊임없이 바뀌지만
결국 투자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건
그 변화를 받아들이되 본질을 잃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 시선이 있다면,
그 시선은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변화는 방향을 바꾸지만, 본질은 투자를 지탱한다.”


다음 이야기

《증권맨 일기》 12편에서는
시장의 변화를 ‘속도’와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돌아봤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는 또 하나의 주제,
《트레이딩의 디지털화 – 기술이 바꾼 투자》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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