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맨 일기》 12편
제가 여의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주식 매매의 중심은 HTS(홈트레이딩시스템)였습니다.
사무실 책상 위 모니터에는 수십 개의 차트가 떠 있었고, 투자자들은 증권사 객장을 찾아와야 주문을 넣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휴대폰으로 거래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어려웠던 시절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가 보편화되면서 누구나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매매를 합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도, 점심시간 식당에서도 주식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거래의 문턱은 낮아졌고, 참여자는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과거에 정보를 얻는 통로는 주로 리포트, 경제신문, 증권방송이었습니다.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보고서를 받아본 뒤에야 시장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하루나 이틀 뒤에야 투자자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뉴스 속보는 스마트폰 알림으로 즉시 도착하고,
SNS와 유튜브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해석이 시장에 즉각 반영됩니다.
정보는 압도적으로 빨라졌고, 투자자들은 그만큼 더 빠른 의사결정을 요구받습니다.
한 발 늦으면 이미 주가는 움직여 버린 시대가 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기관과 외국인의 움직임이 시장을 좌지우지한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개인투자자는 ‘개미’라는 말로 불리며 대체로 수동적인 존재로 취급되었지요.
그러나 2020년 코로나 쇼크 이후 개인투자자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을 쏟아부으며 시장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그 흐름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 주식시장의 구조를 바꿔놓은 전환점이었습니다.
이제 시장을 이야기할 때 개인의 힘을 빼놓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장을 움직이는 인간의 심리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공포로 모든 것을 던지던 투자자들의 모습,
2015년 중국 증시 폭락 당시 무력감에 휩싸였던 순간,
2021년 공모주 열풍 속에서 “무조건 따상”을 외치던 환희까지.
도구와 환경은 달라졌지만,
탐욕과 두려움이라는 인간 본성은 여전히 시장의 주인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차트를 볼 때마다,
숫자 너머에 숨어 있는 투자자들의 감정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돌아보면,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일은 단순한 추억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눈이야말로
앞으로의 시장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기술과 제도는 끊임없이 진화합니다.
하지만 시장의 본질을 꿰뚫는 힘은 결국 사람과 심리를 이해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것이 제가 지난 10년간 배운 가장 큰 교훈이기도 합니다.
《증권맨 일기》 열두 번째 기록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남은 본질을 짚어봤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변화의 한 축인 기술을 조금 더 깊게 다루며,
《기술의 진화 – 트레이딩의 디지털화》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