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에 적힌 여행] 라인모바일 가입비 영수증
2019년 12월,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다. ‘이제 여행은 당분간 안 해도 되겠어. 충분해.’ 불과 한 달 뒤면 전 세계 국경이 폐쇄될 텐데 참 철딱서니 없는 여유를 부렸다.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면서, 무얼 그리 많이 경험했다고!
남들보다 많은 곳을 다니기는 했다. 20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도시를 기준으로 하면 20곳을 넘게 다녀왔으니까... 그동안 찍어온 사진을 이리저리 하드에서 하드로 옮겨가며 저장하기만 했지 정리해놓지도 않은 게으른 여행자였다. 어떻게 기록을 남길까 하다가, 그동안 버리지 않고 모아놓은 영수증들이 생각났다. 빛바래 글씨가 지워진 것도 많지만 더 지워지기 전에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추억을 적어볼까 한다. 대부분 오래전 상품 정보와 가격이라서 읽는 사람들이 실제 현지 정보로 참고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영수증 글씨와 함께 기억도 사라져서 정확하지 않은 기록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다시 하늘 길이 열리고 위아 더 월드로 되돌아 가면 틀린 기록을 바로 잡으러 다시 가보면 되겠지!
첫 번째 영수증은 1엔짜리다.
외국 살이 별거 있느냐며 사람 사는데 다 똑같다고 호기롭게 떠났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쉬운 ‘처음’은 없다. 여행으로 떠나왔을 땐 이질적인 풍경 속에서 느꼈던 기분 좋은 고립감이 생활이 되자 단절의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이방인으로 존재할 때 생기는 외로움은 적응되기 전까지 새로운 종류의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지금부터는 나를 새롭게 증명해야 한다. 관계도, 연결도 0부터 새로 만들어야 한다.
새 일본 전화번호를 받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바쁘다바빠 현대사회에서 전화번호가 가진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주소가 있고, 소득이 증명되고, 어느 기업이든 회원으로 가입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확인. 사회가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승인.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 수도 있다! 포켓 와이파이에 보조배터리까지 들고 다니면서 인터넷을 연결시키지 않아도, 그저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고 다녀도 모든 접속이 가능하다. 나도 이제 전화번호가 있는 사람이다!
1엔짜리 영수증은 새로운 루틴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일본에 생활하러 가기 전부터 전화번호는 라인모바일에서 만들겠다고 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 깔아 놓은 라인 어플을 그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1년 채류 기간만 쓸고 해지할지, 한국에 가도 번호 살려두고 더 쓰게 될지 알 수 없던 때라 저렴하면서도 한국에서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이 엄청난 메리트였다.
도쿄에 입국한 날. 호텔에 짐 풀자마자 공항에서 받은 재류카드 들고 구약소로 가서 주소 등록을 하고 주민표를 발급받아 얼른 빅카메라(ビックカメラ)로 갔다. 신주쿠, 유라쿠쵸 지점에서 번호를 바로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유라쿠쵸로! 1층 안쪽에 자그마한 라인모바일 부스가 있다. 한국 직원이 있다는 후기도 본거 같은데 내가 갔을 땐 일본 직원만 있어서 그냥 일본어로 진행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번호를 만든다고 하니, 가져간 아이폰에 일본 심을 끼워서 심프리인지 확인하고 가입 절차를 시작했다. 소프트뱅크와 도코모 어떤 회선을 쓰겠냐고 해서 뭐가 더 좋은지 물었더니 소프트뱅크가 더 빠르고 더 많이 쓴다고 해서, 그렇다면 그걸로 오네가이시마스!
원하는 요금 플랜은? 트위터와 인스타를 1초에 한 번 확인하는 사람이니까, 아무 고민 없이 커뮤니케이션 프리 플랜(コミュニケーションフリープラン)을 선택했다. 라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앱을 사용할 때 데이터가 소진되지 않는 요금제다. 2021년은 플랜 구조가 달라져서 라인만 포함할지, 라인-페북-트위터(월 280엔 옵션)만 할지, 여기에 인스타-음악 스트리밍(월 480엔 옵션)까지 더 할지 선택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한국에도 있었으면 하는 플랜이지만, 알뜰폰 무제한 요금제가 더 싸기 때문에 사실 필요가 없기도... 게다가 버스, 지하철에서도 와이파이가 빵빵인 한국의 인터넷은 넘사... 암튼 음성통화도 할 수 있는 유심으로 고르고, 월 3기가로 해서 한 달에 1,690엔(음악 스트리밍 포함 SNS 플랜으로 하면 지금은 1,960엔 정도) 플랜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짜잔. 가는 날이 행사기간이라 월 1,690엔에서 900엔 할인된 월 790엔에 해준다고! 가격 실화? 그것도 할인 적용 기간이 6개월! 음성통화가 포함된 플랜은 전부 900엔 싸게 해주는 기간이었다. 한국에서 검색했을 때는 내가 도착하기 직전에 프로모션이 끝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도착한 달에도 계속 진행 중이었다. 게다가! 원래는 엔트리카드를 아마존에서 900엔 주고 사서 직접 등록해야 가입 절차가 무료고, 창구에서 직원을 통해 등록하면 가입비 3000엔을 받았는데 이것도 행사 중! 단돈 1엔만 내면 된다고 했다. 1엔 영수증은 바로 이렇게 해서 계산된 총 개통 금액이다. 라인뿐만 아니라 통신사 신규 가입은 기간 할인 행사가 많으니 잘 살펴보시길!
VPN 설정과 개통 뒤 정상적인 연결 확인까지 직원분이 해줬다. 엔트리카드를 배달받을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설치하다 오류나고 뭐하고 정신없을 바에는 그냥 돈 내자 하는 심정으로 점포에서 개통하기로 한 건데 개이득! 유심 가격(400엔)만 첫 달 요금에 포함돼 나왔다. 통화료는 30초에 20엔(부가세 별도)으로 좀 비싸다. 10분 이내 통화는 880엔에 무제한할 수 있는 10分電話かけ放題 옵션이 있긴 한데 어차피 쓸 일이 없을 거 같아서 처음엔 패스. 1년 간 일본에 살면서 10분 통화 옵션을 딱 한 달 썼던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사 준비하면서 수도, 가스, 전기 등 해약하고 가구랑 남은 용품들 나눔, 배달하던 마지막 달뿐이었다.
라인모바일을 가입할 때 필요한 것은 재류카드와 주민표, 신용카드다. 주민표는 직원이 사진 찍고 확인한 뒤 다시 돌려준다. 뽑아놓은 주민표는 재활용이 가능하니 괜히 추가로 뽑아갈 필요는 없다. 신용카드는 한국에서 발급한 카드로 통과. 2018년 9월 개통하러 갔을 때 마침 한국어로 된 주의사항 안내서가 처음 나와 한글로 된 약관 읽고 확인! 너무나 편한 것.
설명서에도 쓰여있지만 주의할 것은 음성 플랜 유심은 개통하고 1년이 안 돼서 해지하면, 즉 12개월을 꽉 채워 사용하지 않으면 위약금이 9800엔 나온다. 카드 등록해놨으니 거기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재류기간이 정확하게 딱 1년이어서 돌아오는 날 해약하면 하루 차이로 위약금을 물게 될 판이었다. 그래서 한국 돌아올 때 해지하지 않고 가지고 왔다가 석 달 뒤 다시 일본에 갈 일이 생겨 마지막 한 번 더 사용하고 돌아올 때 해지한 뒤 유심도 우편으로 보냈다. 쓰지 않았던 2개월 분을 생돈으로 냈지만 그래 봤자 3400엔으로 위약금보다 덜 나왔다.
가입 절차는 신규 회원 정보를 직원용 패드에 써넣고 나면 끝나는데 확인 절차가 끝나면 종이 한 장을 준다. 블로그와 유튜브 후기에서만 봤던 이 종이를 나도 받는 날이 오다니,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여기에 적힌 시간에 다시 오면 가입 완료! 전화번호가 나와 있다. 30분 정도 걸린 듯. 전화번호는 그냥 랜덤이다.
라인앱은 한국 버전을 깔아도 일본 전화번호로 계정을 만들면 된다. 계정 로그인 한 뒤 라인모바일(ラインモバイル)을 친구 추가하면 폰 관리를 위한 세팅 끝! 친구 대화창에 들어가 메뉴를 열면 契約者連携(マイページ)가 있다. 여기서 남은 데이터, 요금명세서, 계약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 속도도 나쁘지 않았다. 사람 많은 전철에서는 3G가 뜨기도 하는데 역에서 내리면 다시 4G로 돌아온다. 집 인터넷을 도쿄와 오사카에서 5G 속도까지 나오는 포켓 와이파이를 계약해서 썼는데 라인모바일 4G가 아주아주아주 조금 느리다. 한국 LTE랑 비교하면 약간의 로딩 속도가 느껴지는 정도? 하지만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더 저렴했고 가입하기도 간단해서 대만족이었고 다시 만들어도 라인모바일 쓸 거다.
일본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다시 일본에 가게 됐을 때 유심을 우편으로 반납했다. 그 후 코로나19가 터졌고, 다시 일본(뿐만 아니라 어디에도)에 가지 못했다. 언젠가 가더라도 한국 스마트폰을 포켓 와이파이에 연결해 인터넷을 쓰게 될 것이다. 보조배터리도 챙겨야겠지. 현지에 소속될 필요 없는, 잠깐 스쳐가는 여행자답게 말이다. 그래도, 조금은 아쉬울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