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 호텔리어

댓츠 미

by Stolazy

역과 쇼핑몰을 품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호텔. 그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침에 내려온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챙겨 내린다.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점검하고 출입증을 찍은 뒤 사무실 복도를 걷는다. 번듯한 호텔 건물 사무실에서 캐주얼 정장에 구두를 신고 '오늘의 할 일(To-do list)'을 작성하는 나. 겉보기에 나는 누군가 선망할지도 모르는 직업을 가졌다. 바로 '호텔리어'다.


image.png 오... 안궁금...


'호텔리어'라는 단어를 들으면 누군가는 드라마 <호텔리어>를, 누군가는 <호텔 델루나>, <킹더랜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혹은 영화 <호텔 뭄바이> 같은 콘텐츠를 떠올릴 것이다. 아주 멋진 비주얼루다가 말이다.

우선 그런 환상 속 비주얼과 나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고 시작하려 한다. 나는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는 멋드러진 호텔의 호텔리어는 아니다. 해당 범주에는 속하나 100% 완벽하게 부합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드라마 속 호텔은 대부분 5성급이지만, 내가 일하는 곳은 4성급이다. 럭셔리와 비즈니스 사이 어드메를 헤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포지션이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감히 제언한다. 5성급 호텔리어의 화려한 삶을 기대하며 이 글을 클릭했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으셨다. 오히려 이 글은 그런 환상을 와장창 깨부술지도 모른다. 호텔리어 꿈나무들에게는 매우 '유해한' 글이다.

나는 올해로 5년 차, 호텔 경력만 따지면 만 8년을 꽉 채운 마케터다. 잠깐! 햇살이 내리쬐는 사무실에서 시티뷰를 내려다보며 팀원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모닝 브리핑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면 다시 넣어두세요. 실상은 이렇습니다.


image.png 빨간약 드실래요 파란약 드실래요? 아, 참고로 파란약은 유통기한이 지났어요.


비용 절감을 위해 전구를 듬성듬성 빼두어 침침한 복도를 지나 '통합사무실'이라 적힌 문을 연다. 사무실 안쪽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모비딕의 아가리 속 같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불을 켜고 나서야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인테리어는 좋게 말하면 '노출 콘크리트 공법'이고, 솔직히 말하면 마감이 덜 된 창고 비주얼이다. 천장에는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를 배수관과 굵은 파이프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다. 가끔 물이 '우르르릉' 소리를 내며 파이프를 오가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대화하다가도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멈춰야 할 정도다. 창문은 없다. 공조기가 있긴 하지만 돌아가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빛도, 환기도 허락되지 않는 곳. 등을 켜지 않으면 낮이건 밤이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칠흑이다. 겉은 위풍당당한 화려한 건물이지만, 정작 내가 찾아 들어가는 곳은 골방이나 다름없다. 이 사무실 가장 안쪽, 구석진 자리의 1.5m 폭 책상에 앉으면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골방 호텔리어'. 지금의 내 상황을 보자면 떠오르는 이 단어는 호텔 업계의 역설을 의미 하기도 한다. 가장 빛나는 자리는 고객에게, 가장 어두운 자리는 직원에게. 백조가 물밑에서 바쁘게 물갈퀴질을 하듯, 어두운 곳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직원들의 노력이 고객의 빛나는 순간을 만든다. 그러니 빛나고 편안한 자리가 직원의 것이 될 리 만무하다. 첫 호텔 면접 당시, 지하 2층에 있는 사무실을 보고 팀장에게 물었었다.


“왜 사무실이 지하에 있는 거죠?”

"좋은 곳은 고객에게 드려야죠.”


좋은 공간은 곧 이윤을 창출하는 공간이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매출을 위한 공간이 된다. 그렇게 직원들은 수익을 낼 수 없는 곳으로 점점 밀려난다. 오래된 호텔 일수록 사무실은 더 작은 공간으로, 더 어두운 공간으로 파고 들어간다. 내가 앉은 골방 같은 곳으로.


호텔의 연식이 오래 될수록 시설 보수와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은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다. 그렇기 때문에 추가 매출을 발생시킬 만한 방법을 고민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창문이 하나라도 달려있는 공간은 매출 공간으로 팔려 나간다.

공간에 대한 추가 매출을 발생시킨 후에 하는 것은 조직 규모 축소다. 연식이 오래됐다는 뜻은 곧 안정적인 매출원이 발생하고 있다는 뜻과 같다. 호텔을 오픈한 후 초기 몇 년은 자체 매출 시스템, 서비스 문화를 만들기 위해 상당한 인원을 투입한다. 이때 글로벌 브랜드 체인이라면 총지배인은 본사에서 지정한 외쿡인이 들어온다. 그들은 각 브랜드의 테스트를 통과한,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몸에 익힌 찐 호텔리어들이 대부분이다. 외쿡인임에도 은근 타협이 없다. 호텔을 호텔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건물이 아니라 호텔 안을 채우고 있는 직원들이다.

현재 이 호텔의 마케팅팀은 나뿐이다. 우리 호텔은 업력이 꽤 긴 축에 속한다. 이쯤이면 왜 마케팅 담당자가 한명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우린 매출 루틴도 정해져있고, 서비스 문화도 정해져있고, 사람 하나가 빠져도 일단은 굴러가게 할 시스템이 있다. 원래 마케팅팀의 T.O는 2명이어서 '팀'이라 칭하는 것도 거창하긴 하다. 마케팅 듀오 정도가 적절한 것 같다. 어쨌든 조금 우스운 꼴이니 '팀'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로 정의해 보겠다.


내가 하는 일은 '호텔의 모든 상품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다.

호텔은 물리적 자산으로 매출을 일으킨다. 초기 투자금에 따라 객실 수와 레스토랑, 부대시설의 수준이 결정되고 보통은 시스템이 잘 구축된 브랜드와 계약을 맺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하드웨어'에 객실 패키지, 프로모션 같은 '소프트웨어'를 녹여 상품을 구성한다. 얼핏 보면 상품 기획에 가까워 보이는 업무이지만 호텔 마케팅의 영역에는 '디자인'도 깊게 관여되어 있다. 앞서 말한 내가 하는 일, '호텔의 모든 상품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란 문장에서 방점이 찍히는 부분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이다. 사이니지 하나, 테이블 조명 하나를 바꾸는데도 '마케팅 팀 불러'를 외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꼭 필요하지만, 우리 팀에는 애초에 디자이너 TO가 없다. 그럼 누가 하지?


thats-me.gif ...아냐, 나 안울어

이러하다 보니, 어느정도 미감에 대한 테스트도 끊임없이 받는 것이다. 어떻게든 전시회를 다니고, 인테리어 편집숍도 가보고, 올해의 디자인 트렌드도 챙겨보고.. 또 한편으로는 마케팅 트렌드도 챙겨보고 또 다른 쪽으로는 브랜드 가이드라인이 업데이트되는 것도 챙겨봐야 한다. 아무튼, 챙겨봐야 하는 것들이 참 많다. 책 읽기는 필수다.이런 것들이 누가 보기엔 상당히 있어 보일 수도 있으나....이 구역 헤르미온느가 되는 것은 녹록지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론에 가깝다.

바깥에서 보여지는 호텔이라는 건물의 화려함, 업무적 화려함을 둘째치고 나는 골방에서 일하는 호텔리어다. 업계 밖 사람들은 호텔의 화려함을 보고 일하는 사람도 그럴 거라 오해한다. "점심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나요?", "공짜로 숙박하나요?", "사무실 뷰 좋겠네요." 같은 질문들. 뷰에 대한 답변은 되었을 것 같고, 나머지에 답하자면 이렇다.


“아뇨, 저희도 직원식당에서 식판 들고 6,000원짜리 밥 먹어요.”

“아뇨, 저희도 돈 내고 자요. 직원가는 있지만… 누가 회사에서 자고 싶어 하겠어요?”


이런 대답을 자동응답기처럼 할 정도로 이 업계에서 오래 일할 줄은 몰랐다. 대행사에서 인하우스 마케터가 되고 싶어 선택한 호텔행이 8년이나 이어질 줄이야.

나는 초기 경력의 대부분을 마케팅 인하우스 대행사에서 일했고, 중반에는 잠시 호텔, 그리고 다시 일반 B2C 중소기업의 마케팅팀에서 일했다. 이제 일반 회사에서 일했던 경력보다 호텔업 경력이 더 길어졌지만, 내 업무를 대하는 태도와 회사를 바라보는 시선의 태생은 호텔 업계의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게 이 짝사랑 비극의 시작이었을런지도 모르겠다.


image.png love is pain...


폐쇄적인 호텔 구조상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기에 성장에 한계도 느낀다. 하지만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할 생각은 없다. 그 정도의 애정과 열정은 이미 식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내게도 작고 반짝이는 것들이 있었다. 애정이라 불리는 것, 열정이라 불리는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이 있었기에 내 기획을 컨펌하는 라인을 내부 결정자로 한정 짓고 싶어 인하우스 마케터가 되고 싶었다.

수많은 광고주의 반려와 수정, 그 과정을 거치며 처음의 모습을 잃어버린 기획안 말고, 나의 기획 의도가 30% 정도는 보존될 수 있는 환경으로 나를 데려오고 싶었다. 처음 접한 호텔은 기획부터 촬영, 제작, 판매, 매출 분석, 마케팅 활동까지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사랑하게 됐다.

하지만 그 작고 소중했던 열정과 애정은 세월의 풍파에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래서 내 시선이 더 신랄할지도 모른다. 내 애정과 열정을 마지막으로 불태운 대상이 알고 보니 짝사랑이었으니까.


이토록 내 ‘태생’을 강조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가 호텔 현업에서 일하는 실무자이면서도 철저히 이방인의 포지션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걸 분명히 하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업계를 대했던 것은 아니나, 8년 동안 이 업계에서 내가 느꼈던 미묘한 이질감의 정체를 이제는 잘 안다.


그들은 '호텔을 잘 모르는 사람'은 호텔 안으로 들여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호텔을 잘 모르는 사람'은 호텔 경영학이나 관광경영학을 전공하지 않고,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해외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한 경력이 있어야 하고, 실습을 통해 서비스 마인드를 장착한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호텔 업계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을 이론과 실습을 통해 체득해야만 '호텔을 잘 아는 사람'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마치 성골과 진골만이 귀족이라는 범주 안에 존재할 수 있듯, '특수성'을 외치며 외부로부터 새로운 사람이 유입되는 것을 막는다. 6두품조차 되기 어렵다. 이력서부터 탈락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여러 호텔을 관리하는 본사 마케팅팀도 아니고, 특정 지역에 있는 호텔의 사원급 마케터를 뽑을 때조차 “이 사람은 호텔을 잘 모르는 것 같아”라는 말로 퇴짜를 놓을 수 있는 업종이다. 실무 책임자가 이력서와 면접을 통해 좋은 평가를 내려도, 그들의 눈에 장착되어 있는 “호텔을 잘 아나요?1차 필터링 시스템”에 갈려 나간다.

그래서 이 업계는 라푼젤의 성같이 폐쇄적인 곳이 되었다. 비슷한 사람이 이 호텔에 갔다가, 저 호텔에 갔다가, 새로운 얼굴들이 유입되었다가도 금방 사라지거나, 살아남으면 또다시 유령처럼 이 호텔 저 호텔에 나타난다. 특정 지원자의 레퍼런스 체크는 너무나도 쉬워지고, 한 번 업계에서 평판이 나쁘게 소문나면 이직은 어려워진다. 어울렁더울렁 사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고, 이전 회사에서 아무리 머리 쥐어뜯고 싸웠어도 다음 회사에서는 "다 같은 호텔리어끼리! 우리가 남이가!"로 퉁쳐진다. 그래서 정체된다. 변화가 없고 혁신이 없다.


이 정체된, 잔잔한 파문 정도는 금세 상쇄되고 태풍이 불 일도 없는 견고한 성 같은 호텔 업계에서 내가 겪어온, 또 겪고 있는, 앞으로도 겪어갈 일들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