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 초연결 세상으로 가려는 이유

by 몰라

미래 예측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미래를 예측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래를 남들보다 먼저 예측할 수 있다면 그 미래를 선점하여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내일 급등할 주식 종목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그는 아마도 복리의 마술에 의하여 금방 갑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어느 위치의 어느 아파트나 땅을 사야 가격이 급등하여 고가의 부동산을 소유한 부자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하여 고민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현재와 같이 급변하는 산업사회에서 기업은 먹거리 산업으로 어디에 투자를 해서 개발을 해야 향후 이윤을 많이 얻을 수 있을까에 사투를 벌이는 것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국가 차원에서도 미래에 어떤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해야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 선점하여 천문학적인 수익을 얻어 부국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모든 정책을 집중을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이 미래를 부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이유는 돈이 주인인 자본주의 세상 속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며 이는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부자가 되려는 이유도 사실 알고 보면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데 과연 부자가 된다고 행복해지는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현시대를 바라보면 사람이 중심에 있지 않고 돈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듯하다. 진정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돈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이제는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 사람이 주인인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제대로 된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아니라 사람의 행복을 위한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우리 앞에 구현시킬 때 모든 사람들 앞에 행복한 세상이 올 수 있기에.



차원 이야기

과연 미래는 예측 가능한 것일까? 미래를 예측하려면 먼저 차원에 대한 개념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인 3차원 세계에 ‘시간의 축’을 더하면 4차원 세계가 된다. 4차원 세계를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영화를 보면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시간의 축을 따라 전개되는 장면들이 하나의 롤필름에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하나의 시공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의 영화를 보여주는 롤필름 하나가 하나의 4차원 세계인 셈이다. 그런데 그 영화의 어느 한 시점에서 주인공이 다른 문을 통하여 다음 장면으로 이동한다면, 그 영화는 또 다른 롤필름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영화 속의 주인공은 시간 축을 따라 무수한 시점에서 무수한 방향으로 그의 미래를 전개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인공이 펼칠 수 있는 영화의 롤필름 수는 무한대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즉 무한한 4차원의 세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무한한 4차원을 ‘무작위 (random)의 축’을 따라 전개하면 차원은 5차원으로 확장되게 된다.

이제 4차원 세계와 5차원 세계로의 확장을 이해했다면 과연 우리가 지금으로부터 0.00000001초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는 것일까? 예측 그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짓이다. 일어날 수 있는 미래의 시공은 무수히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지금 현재 바로 이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논리적 사고 구조를 기초로 미래를 예측하려 든다. 진실로 미래의 예측을 원한다면 먼저 자신의 논리적 사고 구조를 버려야 한다. 논리적 사고 구조는 현재까지 자신이 쌓아온 지식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모든 무작위의 가능성에 대한 황당한 예측을 방해하여 내가 보고 싶고 볼 수 있는 미래만 보게 한다.
무한히 존재하는 미래 중, 존재할 수 있는 하나의 미래 세상에 대한 기록을 미래학자들은 단지 이야기할 뿐이다. 그들이 예언하는 미래 세상이 이후 우리 앞에 도래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논리적 사고 구조를 과감히 버리고 우주의 무한한 싱크탱크 (think tank)에 접속하여 우리에게 도움이 되며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새로운 어떤 미래 세상의 그림을 그리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는 데 있다. 어떤 미래의 롤필름을 선택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롤필름.jpg



기술 발전 방향에 대한 지혜

새로운 미래 구현의 원동력은 과학기술에 있다.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구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신기술이 없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떤 신기술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 우리에게 더 나은 세상을 가져다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는 기술 발전의 역사로부터 그 방향성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기술 발전의 역사 중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그 답이 있다. 교통과 통신 기술의 발전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 간의 거리를 단축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태고의 원시시대에는 교통이나 통신 수단이 없었기에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과만 교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말을 타는 기술이나 수레를 발명하여 이동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활용함으로써 사람들은 보다 먼 거리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이웃 마을 사람들과의 왕래와 물물교환이 가능해졌다. 이후에 깃발이나 봉홧불을 이용하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물리적 이동을 하지 않고도 원거리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교통수단이 배로부터 기차, 자동차, 비행기로, 통신 수단이 전화기로부터 컴퓨터 통신, 인터넷, 모바일 네트워크로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 간의 거리는 점점 더 줄어들어 마침내 지구 전체가 하나의 촌으로 인식되는 지구촌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이 개발되기 이전만 하더라도 그다지 각 개인들 간의 의사소통 채널의 거리가 짧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였으나, 스티브 잡스에 의하여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통신 기술이 개발됨으로써 현재는 각 개인들이 전 세계에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무엇일까? 과연 10년 아니 20년 후에도 스마트폰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까?
지금보다 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 사이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선 어디로 가야 할까? 2000년 초반 유비쿼터스 기술에 대한 개념이 제시되었고,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후 IOT(Internet Of Things)라는 사물인터넷으로 기술의 콘셉트가 더 진화 확장되면서 현시대는 전 세계가 '초연결 세상'으로 나아가자며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초연결 세상으로 가려는 이유는 단순히 사물과 사물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데에 그치지 않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자동차나 스마트폰과 같은 교통 통신 수단들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개인의 공간을 확장해 주는 대리 매개체로써 나라는 존재의 영역 확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IOT를 통한 초연결사회는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가 지금보다 좀 더 가까워지는 세상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이다. 만약 스마트폰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나를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통신 기술이 개발된다면 어떤 세상이 도래할까? 좀 더 먼 미래에 영화 '스타트렉'에서 나오는 공간이동 교통수단이 또한 함께 발명된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래서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가까워진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까?



초연결 세상으로 가려는 이유

초연결 세상을 지향하는 대기업들은 전 세계인들을 하나의 인터넷으로 연결하여 실시간으로 각 개인들의 생각과 행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그것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의 사람들은 하나의 글로벌 대기업이 인류를 지배하는 Big Brother로 군림하여 세상을 조종하고 통제할 수도 있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보를 점유하는 Big Brother의 출연이 초연결 세상으로 가려는 이유가 되어서도 안되고 될 수도 없다.
만약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사람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번 상상해보자. 내 머릿속의 생각이 뇌파인 아날로그 신호가 검출되어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는 장치가 개발되고, 이 디지털 정보가 인터넷 중계기에 전송되는 날이 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재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는 IOT 수준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두뇌를 서로 연결하는 그러한 세상 일명 '텔레파시 소사이어티(Telepathy Society)'라는 세상이 온다면? 지금과 같이 스마트폰을 통하여 전화나 문자로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내 생각이 누군가에게 전달될 수 있다면 어떤 세상이 올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계공학, 화학, 재료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함께 팀을 이루어 연구를 할 때 팀워크가 잘 발휘되지 않는 이유는 각자의 생각을 교환하고 공유하는 의사소통 채널에 노이즈가 너무 많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의 두뇌가 실시간으로 서로 연결되어 복수 전공을 한 하나의 사람과 같이 작동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더 나아가 과학기술인과 예술인, 그리고 사상 철학가 등의 두뇌가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면 과연 어떤 작품이 나올까?

초연결.jpg


더 행복해질까 더 불행해질까?


더 나아가 한 사람의 두뇌가 다른 사람들의 두뇌뿐만 아니라 세상의 IOT와 실시간으로 연결된다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다. 현재와 같이 암기식 교육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하여 고생할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실시간으로 모든 정보를 검색하고 통번역 하여 자신의 두뇌 속에 원하는 지식으로 축적할 수 있으므로 단지 그 정보를 활용하여 창조적 활동을 하고 이를 통하여 자신의 특성을 100% 발휘하게 됨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우리가 사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며 보람되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과 실시간으로 자신의 머릿속이 연결되기 때문에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모든 정보들이 세상과 공유될 수밖에 없으므로, 기억 속에 부정적인 과거의 정보가 있는 사람은 그 정보가 공개되는 것이 두려워 텔레파시 소사이어티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것을 꺼리게 될지도 모른다. 즉 과거에 부정한 짓을 저질렀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텔레파시 소사이어티에 탑승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어 도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반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기에 스스럼없이 텔레파시 소사이어티에 합류하여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데 한몫을 하는 새로운 인종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중세 철학자 니체가 '초인'이라고 불렀던 새로운 인종인 '호모 아라핫투스(Homo Arahattus)'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아라핫투스는 고대 인도의 팔리어에 그 어원을 둔 말로서 깨달음이라는 의식의 각성을 이룬 자를 뜻한다. 이들은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서로의 조화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지금의 현세인보다 한 단계 진화된 인종이다. 이 시대가 오면 조화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어 문명과 기술의 발전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됨으로써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하여 세상이 하나의 님(The One)인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으로 되어 있는 것을 깨닫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지난 500년간 인간의 힘은 경이적이고 유례없이 커져왔다. 인구는 14배, 생산은 240배, 에너지 소비는 115배로 늘어났다. 500년 전 사람들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때도 인간들의 욕심이 극에 달하여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것이며 세상의 종말이 조만간 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500백 년이 지난 현시점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그전보다 훨씬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아마도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부정적이고 부패한 욕심으로 가득한 사람들보다 긍정적이고 선한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희망을 노래 부르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상을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가 미래의 선두 자리를 차지하는 것임을 알기에 세계열강 선진국들이 초연결사회 구현과 뇌연구에 엄청난 연구비를 투입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기술들이 개발되어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면 더 행복해질까 더 불행해질까?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행복한 미래와 불행한 미래 중 어떤 미래를 선택할지의 열쇠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서로 더 많은 부를 걸머쥐겠다며 전쟁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자며 상생을 선택할 것인가. 옳고 그름이란 없다. 무엇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만 있다. 옳고 그름으로 서로 시비하고 서로 다투기보다는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데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

행복한 세상.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