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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Aug 25. 2022

재난 속에서 생겨나는 희망

데이비드 스몰, 사라 스튜어트, <리디아의 정원>

<리디아의 정원>, 그림책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추천한 이 책을 도서관에서 오래 기다린 끝에 상호대차로 겨우 빌려 읽었다. 데이비드 스몰이 그리고, 부인 사라 스튜어트가 글을 쓴 책으로, 대공황 시기인 1935년 8월 27일부터 1936년 7월 11일까지 주인공 리디아가 가족과 친척에게 쓴 편지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말하자면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묘사한 일종의 '로드 스토리'다.


이야기 내용인 즉, 주인공 가족의 생계 수단이 끊기자 대도시(아마도 뉴욕)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외삼촌이 주인공을 잠시 보살펴주게 되었다. 10살 남짓의 주인공은 '꽃과 식물을 가꾸는 사람'이다. 주인공은 외삼촌이 사는 곳으로 떠나면서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재능과 기술, 그리고 '원예사의 영혼'도 함께 가져간다. 주인공이 머무는 1년 남짓의 기간 동안 외삼촌의 빵집 건물을 중심으로 그곳은 도시 정원으로 바뀐다. 주인공이 꽃과 식물을 키우면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도 꽃과 웃음이 활짝 피어난다. 주인공이 다녀간 그곳은 원예사의 영혼이 남긴 유산으로 도시 정원으로 탈바꿈한다는 그런 이야기.

  

데이비드 스몰은 사람도 동물도 그다지 '예쁘게' 그리지 않는다. 책의 미적 요소는 그림이 만들어내는 풍경과 분위기, 그리고 이야기의 힘이다. 그리고 자주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인물로 나온다. 실제 주인공이 살아가는 장소의 인구학적 다양성이 반영되어 있는 것. 영화로 치자면, 영화의 배경으로 삼는 장소의 인구학적 다양성을 등장인물의 구성에 반영하는 '포용(inclusion rider)' 규칙을 실천하고 있는 것. 데이비드 스몰이 그린 책에는 인종적 다양성이 담겨있다. 이주민들의 나라,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그의 이야기에는 자주 타자성의 표식인 피부색을 가진 이들, 즉 유색인들이 희망과 구원의 행위자로 등장한다.   


책을 보면 이 책이 그토록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좋아하는 점을 꼽아보자면 이렇다. 이 책에는 좋은 사람들만 나온다. 가족도, 외삼촌도, 외삼촌 빵집에서 일하는 히스패닉계 부부도, 빵집 고객들과 마을 사람들도 다 좋은 사람들이다. 시골에 사는 좋은 사람의 영혼이 도시로 이동하여 그 모든 사람들의 '좋음'과 연결되거나, 그것을 촉진하여 확장시키는 그런 멋진 판타지다. 사람들이 좋은 이유, 좋아지는 이유, 그것은 모두 '정원 가꾸기'를 매개로 한다.


이 책을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소개해 줬다. 내 서재에는 그림책 섹션이 따로 있다. 이 책은 사서 곁에 두고 한동안 품고 있을 거다. 다 읽은 책 없애기/나누기 프로젝트와 좋은 책 사기 프로젝트를 동시에 하고 있다. 책은 우리 모두의 영혼이니까. 좋은 책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니까. 그 좋은 걸 나 혼자 즐길 수 없으니까. 함께 즐기면 더 좋으니까.


대공황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희망은 재난 속에서 생겨나서 널리 퍼진다는 그런 생각. 기후 위기, 전쟁, 감염병 확산 등 여러모로 지구 멸망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더욱 책으로 영혼을 채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책의 첫페이지에 이렇게 원문을 프린트해서 오려 붙여두었다. 귀여워서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이런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 도서관에서 책 빌려보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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