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운동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신호등이 하나 있다. 건널목이 꽤 넓은 편이어서 신호 시간도 꽤 긴 편이다. 그래서 가끔은 뛰어야 할지 아니면 다음 신호를 기다려야 할지 애매할 때가 있다. 선뜻 결론을 내리기에도 애매한 시간의 간격일 때가 있는 것이다.
쌀쌀한 아침에도 여느 때와 같이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이었으니 대략 7시가 되지 않아서 어스름이 남아있는 때였다. 신호등 앞에 서니 빨간불이어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횡단보도 중간쯤에 길을 건너고 있는 한 노파가 보였다. 나이는 칠십 대 후반 정도로 보였고 한 손엔 지팡이에 의지하는 걸음걸음이 편해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행색은 젊은 시절의 고생을 대변하는 듯 초라하다기보다는 촌스럽고 빛바랜, 계절보다 두터운 옷을 입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신호가 빨간불임에도 길 중간을 겨우 건너고 있었지만, 건널목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몇 안 되는 차들은 경적 소리 하나 내지 않았고, 다들 그 노파가 길을 건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이 조용했고, 모두 할머니의 걸음과 행색에서 고단했던 그녀의 삶을 떠올리는 듯했다. 짧지만 긴 시간이 흐른 후, 그 노파는 길을 모두 건넜고, 기다리던 차들은 제각기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나는 왠지 그때 그 노파를 바라보던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 늙겠구나!’
사실 노파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신호의 중간쯤 출발해서는 건널목 길을 완전히 건널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살아온 삶이 아마 그랬을 것이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고, 특출하게 잘난 인물도 아니라서 세상의 귀퉁이에서 어렵게 삶을 이어왔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삶은 수많은 실망과 배신과 억울함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아온 ‘억척스러움’이었을 것이다. 억척스러움에는 무지와 무식과 뻔뻔함과 고집이 들어있고, 평생을 세상의 귀퉁이에서 버티며 가까스로 살아온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죽어갈 것이다. 누가 그 노파를 비난할 수 있을까? 노파의 걸음과 뒷모습엔 이런 인생의 쓴맛이 담겨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라는 사람이 그 노파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것 또한 나의 지적 오만으로 느껴졌다. 이와 동시에 ‘그 노파와 내가 다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 무엇이 그리 다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난한 자나 부자인 자나,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잘난 얼굴을 가진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결국 모두 늙고 죽는다. 결국 무엇을 하든 어떻게 살든, 인간은 죽음을 향해 늙어가는 존재일 뿐이다.
그럼에도 어느새 잘난 척하고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흠칫 놀라는 내 자신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어리석음에 작은 한숨이 나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