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축 지윤오 선생님 득남]
오지랖 넓은 교감 선생님께서 축하 메시지와 함께 교무실 칠판에 직접 적은 글씨를 사진 찍어 보내주셨다.
잠시 후 친하게 지내던 선생님들의 연락이 빗발쳤다.
-뭐예요 쌤, 목요일에 휴가 쓰고 월요일에 바로 출산하다니, 너무 못 쉰 거 아녜요? 헐. 우리 다들 황당하다고 난리야. 몸은 괜찮은 거죠?
-쌤, 대박! 몸 잘 추스르고 나중에 아기 사진 보내줘요~ 축하축하!
임시로 올 선생님에게 인수인계 자료를 친절하게 남기고 만삭 끝자락까지 수업을 했다.
출산 휴가에 들어간 지 겨우 3일 만에, 예정일을 2주 앞두고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첫 아이라 배도 많이 나오지 않았고 남들 다 겪는다는 입덧도 튼살도, 심지어 변비도 없었다.
막달에 다리에 쥐가 몇 번 나긴 했지만 임신이 체질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는 건강했다.
뱃속 아이는 검사마다 순조롭게 통과했고 태동조차 매우 순했다.
일요일 저녁에 양수가 터진 것 같아서 병원에 갔는데 자궁이 아직 열리지 않았고 오늘 입원하면 하루치 입원비가 추가된대서 -내일 다시 올게요 하고 쿨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입원 하자마자 무통주사 한방 맞고 진통 4시간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나의 임신과 출산은 신기할 만큼 모든 게 수월했다. 나는 자연분만이라 병원에 이틀 있다가 조리원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출산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오신 시부모님과 우리 아빠 엄마는 나의 진통시간을 듣더니,
나는 안중에 없고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만 기다리며 신생아실 앞에서 한 무리의 미어캣처럼 커튼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출산 당일 저녁부터 내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번 갈아입는 산모복을 세네 번 갈아입어도 모자랄 정도로 두피와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너무 이상해서 간호사를 불렀더니,
–산모님, 혈압이 매우 낮네요. 원래 혈압이 이렇게 낮으세요?라고 되물었다.
옆에서 귤을 까먹던 엄마는
-얘가 임신 전에 술을 마셔서 그런가? 그러기에 술 좀 적당히 먹지.
라며 면박을 주었다. (참고로 우리 엄마는 술을 한 방울도 못 마시고, 맥주 한 캔 이상 마시는 걸 알코올중독자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병원을 퇴원하는 날은 배가 너무 아파서 허리를 필 수조차 없었다.
조리원 원장은 입구에 도착한 나의 몰골을 보더니
–산모분, 제왕 아니시잖아요? 하며 갸우뚱했다.
병원에 서 가져온 내 차트를 보더니 같은 날 자연 분만한 다른 산모님들은 지금 휴게실에서 날아다닌다며
나를 유난인 사람 취급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비슷한 증상이 훗배앓이라고 불리며, 출산 후 흔한 증상인 듯했다. 무조건 모유수유를 해야 지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젖이 심할 정도로 잘 돌았다.
게다가 아이는 몇 개월 굶은 걸인처럼 어찌나 젖을 허겁지겁 먹는지 꿀떡꿀떡 목구멍으로 젖 넘어가는 소리가 수유실 안에 다 들릴 정도였다. 하도 급하게 먹어서 목에 공기가 걸려 컥컥 대기에 얼른 물린 젖을 빼 내기도 했었다. 나는 모성애는커녕 젖 넘어가는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고 부끄러웠다.
유축기를 들고 와 소중하게 한 방울을 짜고 또 짜내는 다른 산모들은 나를 하염없이 부러워했지만
나는 아이가 조금 무서울 정도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기요 선생님, 저는 그냥 제 방에서 수유할게요. 그리고 밤에는 제발 저 콜 하지 마시고 그냥 분유 먹여주세요.
출산 후 5일이 지났다.
조리복 바지 끈을 대충 매고 뒤돌아보니 좌욕기 안에 주먹보다 조금 큰 핏덩어리가 가라앉아있었다.
나는 너무 소스라치게 놀라서 조리원으로 퇴근한 남편과 상주 간호사님, 조리원 원장님까지 호출했다.
모두 그 물체를 한 번씩 보며 나보다 더 놀란 눈치였다.
원장님은 새 나무젓가락으로 핏덩이를 살짝 누르더니 어깨를 움찔했다.
-이거……. 단순한 핏덩어리가 아닌 거 같아요. 딱딱해요.
그 순간 나는 머리가 쭈뼛 솟고, 남편은 재빨리 어디선가 위생장갑과 비닐을 가져와서 핏덩이를 건져 소중히 담았다.
-응급실로 가자, 옷 챙겨 입어.
응급실로 가는 30분 사이, 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이의 장기 일부가 달리지 않고 이제야 나온 건가? 아니면 내 자궁 안에 들어있던 내가 몰랐던 혹인가? 오들오들 떨며 아산병원 응급실에 비닐봉지를 제출하고 기다렸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더 이상 몸에서 땀도 나지 않았다. 잠시 후 수련의로 보이는 젊은 남자 의사가 우리에게 오더니 덤덤히 말했다.
-출혈 지혈용 붕대네요. 의료사고 인 듯한데, 이럴 경우 봉합한 수술 부위를 뜯고 자궁 안을 다시 검사해야 합니다. 산모 분은 침대 위로 올라가시고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 위에 누웠더니 아까 그 남자 의사가 커튼을 확 친 후, 탁 소리를 내며 라텍스 장갑을 꼈다. 아무렇지 않은 그 말투도, 지나치게 커다란 손도 두려웠고 출산도 일부러 여의사를 찾아서 했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용기를 내 말했다.
-저 정말 죄송한데, 여자 선생님은 없으신가요?
잠시 후, 한 이틀은 잠을 못 잔 퀭한 눈의 여의사가 베드 커튼 안으로 들어오더니 내 이불을 거침없이 걷었다. 똑같이 라텍스 장갑을 끼더니 마취 스프레이를 몇 번 뿌렸다. 아래로 차가운 기구의 느낌이 나더니, 봉합부위가 툭툭 뜯어지고
-자 시작할게요.라는 말과 동시에 손을 넣어 휘저었다.
출산 중에도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는데 악 소리가 절로 나고 고개가 뒤로 꺾였다.
병원침대 시트를 다 뜯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친 듯이 아팠다. 두 눈 양쪽으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끝났어요. 다행히 괜찮네요. 남은 조각은 없어요. 퇴원하시고 출산한 병원에 한번 연락해 보는 게 좋겠어요.
한 땀 한 땀 다시 꿰매던 여의사는 그제야 친절한 말투로
-붕대가 좌욕하다 나왔다고요? 모유수유 하셨나 봐요? 아기한테 고마워해야겠어요. 모유 수유 때문에 자궁이 빠르게 수축돼서 붕대를 밀어낸 거 같은데 운이 좋으셨네요. 모르고 살다가 한참 후에 자궁이 괴사 된 사례도 있어요.
출산한 병원은 남편과 시아버지가 들었다 놓으러 출발했고 조리원으로 혼자 돌아온 나는 한참을 잊고 있던
아이에게 달려갔다. 신생아실 앞에 서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 수유…….
-산모님 괜찮으세요? 오늘 못 들어오실까 봐 방금 분유 먹이고 재웠어요.
잠든 아이를 한참을 내려다보고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날부터 아이는 이상하게 힘껏 젖을 빨지 않았다.
내 마음이 달라져서 그럴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도 그날은 아이와 내가 어떤 미묘한 끈으로 이어져 있었고, 아이가 나에게 고마운 존재였다는 것은 잊을 수가 없다.
긴 세월이 흘러 사춘기가 시작된 아들은 오늘도 분주히 자기 영역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문득 그날이 생각나서 가만히 다가가 통통한 볼을 손가락으로 콕 찔렀더니 역시나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책을 읽는 내 책상 위로 아무 말 없이 새콤달콤 캐러멜 한 알을 쓰윽 내밀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또 한 번의 고마운 순간을 저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