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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오 May 29. 2024

짧은 임신, 너무 긴 출산

#의료사고 

   

[축 지윤오 선생님 득남] 

오지랖 넓은 교감 선생님께서 축하 메시지와 함께 교무실 칠판에 직접 적은 글씨를 사진 찍어 보내주셨다. 

잠시 후 친하게 지내던 선생님들의 연락이 빗발쳤다.


-뭐예요 쌤, 목요일에 휴가 쓰고 월요일에 바로 출산하다니, 너무 못 쉰 거 아녜요? 헐. 우리 다들 황당하다고 난리야. 몸은 괜찮은 거죠?

-쌤, 대박! 몸 잘 추스르고 나중에 아기 사진 보내줘요~ 축하축하!     


임시로 올 선생님에게 인수인계 자료를 친절하게 남기고 만삭 끝자락까지 수업을 했다. 

출산 휴가에 들어간 지 겨우 3일 만에, 예정일을 2주 앞두고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첫 아이라 배도 많이 나오지 않았고 남들 다 겪는다는 입덧도 튼살도, 심지어 변비도 없었다. 

막달에 다리에 쥐가 몇 번 나긴 했지만 임신이 체질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는 건강했다. 

뱃속 아이는 검사마다 순조롭게 통과했고 태동조차 매우 순했다.  


일요일 저녁에 양수가 터진 것 같아서 병원에 갔는데 자궁이 아직 열리지 않았고 오늘 입원하면 하루치 입원비가 추가된대서 -내일 다시 올게요 하고 쿨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입원 하자마자 무통주사 한방 맞고 진통 4시간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나의 임신과 출산은 신기할 만큼 모든 게 수월했다. 나는 자연분만이라 병원에 이틀 있다가 조리원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출산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오신 시부모님과 우리 아빠 엄마는 나의 진통시간을 듣더니, 

나는 안중에 없고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만 기다리며 신생아실 앞에서 한 무리의 미어캣처럼 커튼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출산 당일 저녁부터 내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번 갈아입는 산모복을 세네 번 갈아입어도 모자랄 정도로 두피와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너무 이상해서 간호사를 불렀더니, 


–산모님, 혈압이 매우 낮네요. 원래 혈압이 이렇게 낮으세요?라고 되물었다. 

옆에서 귤을 까먹던 엄마는 

-얘가 임신 전에 술을 마셔서 그런가? 그러기에 술 좀 적당히 먹지. 

라며 면박을 주었다. (참고로 우리 엄마는 술을 한 방울도 못 마시고, 맥주 한 캔 이상 마시는 걸 알코올중독자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병원을 퇴원하는 날은 배가 너무 아파서 허리를 필 수조차 없었다.

조리원 원장은 입구에 도착한 나의 몰골을 보더니 

–산모분, 제왕 아니시잖아요? 하며 갸우뚱했다. 

병원에 서 가져온 내 차트를 보더니 같은 날 자연 분만한 다른 산모님들은 지금 휴게실에서 날아다닌다며 

나를 유난인 사람 취급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비슷한 증상이 훗배앓이라고 불리며, 출산 후 흔한 증상인 듯했다. 무조건 모유수유를 해야 지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젖이 심할 정도로 잘 돌았다. 

게다가 아이는 몇 개월 굶은 걸인처럼 어찌나 젖을 허겁지겁 먹는지 꿀떡꿀떡 목구멍으로 젖 넘어가는 소리가 수유실 안에 다 들릴 정도였다. 하도 급하게 먹어서 목에 공기가 걸려 컥컥 대기에 얼른 물린 젖을 빼 내기도 했었다. 나는 모성애는커녕 젖 넘어가는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고 부끄러웠다. 

유축기를 들고 와 소중하게 한 방울을 짜고 또 짜내는 다른 산모들은 나를 하염없이 부러워했지만 

나는 아이가 조금 무서울 정도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기요 선생님, 저는 그냥 제 방에서 수유할게요. 그리고 밤에는 제발 저 콜 하지 마시고 그냥 분유 먹여주세요.      



출산 후 5일이 지났다. 

그날도 어김없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아직도 배가 너무 아파 낫처럼 굽은 등으로 좌욕실에 들어갔다. 자연분만은 회음부 상처를 낫기 위해 좌욕을 자주 해주면 좋다고 했다. 수유 콜이 올까 두려워 진을 치고 숨어 있을 생각으로 핸드폰까지 방에 팽개치고 좌욕실에 들어갔다. 뜨거운 물에 엉덩이를 담그고 5분 정도 있었는데 갑자기 몸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쑤욱- 나왔다. -이게 뭐지?  


조리복 바지 끈을 대충 매고 뒤돌아보니 좌욕기 안에 주먹보다 조금 큰 핏덩어리가 가라앉아있었다. 

나는 너무 소스라치게 놀라서 조리원으로 퇴근한 남편과 상주 간호사님, 조리원 원장님까지 호출했다. 

모두 그 물체를 한 번씩 보며 나보다 더 놀란 눈치였다. 

원장님은 새 나무젓가락으로 핏덩이를 살짝 누르더니 어깨를 움찔했다.


-이거……. 단순한 핏덩어리가 아닌 거 같아요. 딱딱해요.


그 순간 나는 머리가 쭈뼛 솟고, 남편은 재빨리 어디선가 위생장갑과 비닐을 가져와서 핏덩이를 건져 소중히 담았다.


 -응급실로 가자, 옷 챙겨 입어.   

응급실로 가는 30분 사이, 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이의 장기 일부가 달리지 않고 이제야 나온 건가? 아니면 내 자궁 안에 들어있던 내가 몰랐던 혹인가? 오들오들 떨며 아산병원 응급실에 비닐봉지를 제출하고 기다렸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더 이상 몸에서 땀도 나지 않았다. 잠시 후 수련의로 보이는 젊은 남자 의사가 우리에게 오더니 덤덤히 말했다.


-출혈 지혈용 붕대네요. 의료사고 인 듯한데, 이럴 경우 봉합한 수술 부위를 뜯고 자궁 안을 다시 검사해야 합니다. 산모 분은 침대 위로 올라가시고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 위에 누웠더니 아까 그 남자 의사가 커튼을 확 친 후, 탁 소리를 내며 라텍스 장갑을 꼈다. 아무렇지 않은 그 말투도, 지나치게 커다란 손도 두려웠고 출산도 일부러 여의사를 찾아서 했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용기를 내 말했다.


-저 정말 죄송한데, 여자 선생님은 없으신가요?


잠시 후, 한 이틀은 잠을 못 잔 퀭한 눈의 여의사가 베드 커튼 안으로 들어오더니  내 이불을 거침없이 걷었다. 똑같이 라텍스 장갑을 끼더니 마취 스프레이를 몇 번 뿌렸다. 아래로 차가운 기구의 느낌이 나더니, 봉합부위가 툭툭 뜯어지고

 -자 시작할게요.라는 말과 동시에 손을 넣어 휘저었다.


출산 중에도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는데 악 소리가 절로 나고 고개가 뒤로 꺾였다. 

병원침대 시트를 다 뜯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친 듯이 아팠다. 두 눈 양쪽으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끝났어요. 다행히 괜찮네요. 남은 조각은 없어요. 퇴원하시고 출산한 병원에 한번 연락해 보는 게 좋겠어요.  


한 땀 한 땀 다시 꿰매던 여의사는 그제야 친절한 말투로

-붕대가 좌욕하다 나왔다고요? 모유수유 하셨나 봐요? 아기한테 고마워해야겠어요. 모유 수유 때문에 자궁이 빠르게 수축돼서 붕대를 밀어낸 거 같은데 운이 좋으셨네요. 모르고 살다가 한참 후에 자궁이 괴사 된 사례도 있어요. 


출산한 병원은 남편과 시아버지가 들었다 놓으러 출발했고 조리원으로 혼자 돌아온 나는 한참을 잊고 있던

아이에게 달려갔다. 신생아실 앞에 서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 수유…….

-산모님 괜찮으세요? 오늘 못 들어오실까 봐 방금 분유 먹이고 재웠어요.  


잠든 아이를 한참을 내려다보고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날부터 아이는 이상하게 힘껏 젖을 빨지 않았다. 

내 마음이 달라져서 그럴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도 그날은 아이와 내가 어떤 미묘한 끈으로 이어져 있었고, 아이가 나에게 고마운 존재였다는 것은 잊을 수가 없다.     


긴 세월이 흘러 사춘기가 시작된 아들은 오늘도 분주히 자기 영역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문득 그날이 생각나서 가만히 다가가 통통한 볼을 손가락으로 콕 찔렀더니 역시나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책을 읽는 내 책상 위로 아무 말 없이 새콤달콤 캐러멜 한 알을 쓰윽 내밀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또 한 번의 고마운 순간을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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