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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오 Apr 26. 2024

사랑의 다른 이름들

#떡볶이는 떡볶이다움으로도 충분하지만... 


-태어나서 이렇게 맛없는 떡볶이는 처음 먹어본다.  너네 집 떡볶이 진짜 이상해~

-야! 다시는 너 초대 안 해!

-나도 맛없어서 안 갈 거거든?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납작하고 둥그런 버터케이크 위에는 긴 초 1개와 짧은 초 1개,  눈 아플 정도로 쨍한 핑크색의 인조 장미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촛불이 꺼지고 네모반듯한 교자상에 둘러앉은 내 친구들은 모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과 접시를 상위에 내려놓은 우리 엄마는 두 손을 분주히 움직이며 말했다.


 -너희 왜들 보고만 있니 촛불 다 불었으면 얼른 맛있게 먹어야지.  어서, 먹어먹어~!


열한 살, 

떡볶이에 환장할 국민학생들의 포크가 마지못해 움직였다. 엄마의 떡볶이는 엄지손가락 반만 한 가래떡과 길게 썬 소고기, 큼직한 당근들, 링모양으로 가지런히 썰린 피망으로 가득했다.  


-엄마, 나도 떡이랑 어묵만 들어있는 떡볶이 해주면 안 돼? 애들이 학교에서 놀려~!!!

-걔들이 진짜 맛있는 걸 몰라서 그러네!


위로 살림 똑순이 언니들만 있는 넷째이자, 막내딸로 태어난 우리 엄마는 내가 국민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외할머니 곁에 딱 붙어살았다. 내가 어릴 때 본 엄마는 빈 냄비를 들고 할머니 집으로 뛴다던지,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반찬을 만드는 걸 담는 모습뿐이었다. 

할머니를 잃은 해, 돌아온 나의 첫 생일이었다. 음식의 음자도 모르던 엄마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겠다며 

학원을 등록했다. 그리고는 영양소와 재료들의 궁합이 중요하다며 모든 음식에 피망과 당근을 넣기 시작했다. 엄마는 결국 자격증은 따지 못했다. 음식 하나를 하려면 온 주방이 초토화였고 시간도 엄청 오래 걸렸다. 

어린 나이에도 우리 엄마는 요리를 못한다고 확신했다. 


나는 분명히 생일 파티를 안 해도 된다고 했는데 엄마는 자신 있다면 친구들을 초대하라고 했다. 

결국 내 생일을 시작으로 엄마의 떡볶이는 영원한 나의 기피 음식이 되었고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나는 자극적인 음식에 중독되었다. 

엄마와 살며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순대 볶음, 주꾸미, 매운 갈비찜, 골뱅이 무침 같은 음식들을 너무 사랑하게 되었다.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던 나였지만, 아이를 낳고 이유식을 해주며 당근, 가지, 단호박, 브로콜리 등 다양한 재료로 이것저것 먹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버섯만 입에 들어가면 신기하게 혓바닥을 쏘옥 내밀어 뱉어버리는 아들을 위해 잘게 다지고 계란과 부치고 볶음밥 속에 숨기며 옛날 우리 엄마의 떡볶이가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사랑한다는 말만이 꼭 사랑이 아니다.

아침마다 일기예보를 먼저 보고 운전 조심하라고 말해 주는 것

신발장에 벗어 놓은 신발을 신기 편하게 돌려놓는 것

떡볶이에 야채와 고기를 가득 넣는 일

음식을 못해도 딸의 생일 파티를 꼭 해주고 싶었던 그 마음

그 모든 것이 사랑의 다른 이름임을 너무 늦게 알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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