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미신 시리즈
누구나 태몽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태몽이 없이 태어났다면, 처음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미신이 있다.
모든 영혼은 환생을 반복하며 대부분 동물이나 식물로 태어나고, 인간으로 환생하기도 한다. 찬바람이 골목을 가로지르는 날, 나는 조용히 숨죽여 인간의 탄생을 구경한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존재들이 탄생을 축복하기도 또 시샘하기도 한다. 인간이 사는 길은 육도 중 지옥도 바로 위에 맞닿아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금줄을 많이들 달기도 달았다.
인간이 사는 현세를 처음 겪는 이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새로운 것을 탐하고 거침이 없다. 현세를 다시 겪는 이들은 이전 생의 아쉬움이나 욕망 따위를 타개하고자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보통 태몽은 업과 인연의 반영을 나타내기 때문에, 태몽을 비추어 업을 미루어 추측해 볼 수 있다.
처음 인간도에 태어난 작은 존재는 몇 날 며칠을 그 어느 것 하나 스스로 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큰 인간들이 작은 인간을 어르고 달래며 먹이도 먹이고, 잠을 자는 법부터 스스로 일어서는 방법까지 가르친다. 작은 인간은 그렇게 점점 빛이 나고 큰 인간들은 점점 빛을 잃는다.
큰 인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작은 인간은 큰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쉬이 견디지 못한다. 인간도를 살면서 셀 수 없는 번뇌를 반복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험을 준비해야 하지만, 핸드폰을 들고 침대에 누워 무아지경에 빠진다. 그뿐인가. 날 서게 서로를 바라보며 후회로 가득한 문장들을 상대방에게 거세게 내리친다.
이해할 수도 없는 이유로 서로에게 삿대질을 할고 헐뜯는다. 모든 존재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며, 완전함을 향한 욕망은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허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재밌는 점은 결국 인간의 대부분은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는 것이다. 불완전함 속에서도 움직이고, 선택하고, 후회하며 다시 움직일 기회를 엿본다. 그 에너지가 때때로 탐난다.
어떤 이는 그 에너지로 모험을 택하고, 누군가는 안정을 택하며, 어떤 이는 세상의 틀을 깨부수고, 또 어떤 이는 그 부서진 조각을 모아 예술을 완성한다. 하지만 그 끝은 결국 균열이 생기고, 그 틈을 통해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결국 이 세계를 이해한 뒤에 죽음으로 이어지고, 태몽은 다시 인간도에 돌아올 때, 존재가 스스로를 자각하기 전 마지막 기억이기도 하다. 이미 자신이 걸어갈 길의 단초이며,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은 오직 삶을 다 살아낸 뒤에 일이기도 하다.
태어난 이유를 아는 자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유를 찾아 헤매는 모든 시도가 바로 인간됨이 증거다. 태몽은 과거 생의 흔적이자, 이번 생이 품은 질문의 첫 문장이다. 그 문장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는 생애는 없다만, 역시 그 생애의 발버둥을 꽤 재밌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인간도에 머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