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너무 오랫동안 나 자신을 오해하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늘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조용하고, 감정이 많고, 관계에 서툴고, 자꾸 상처받는 내가 이상하다고 여겼다. 왜 나는 늘 벽을 만들까, 왜 나는 늘 혼자일까, 왜 나는 이렇게 쉽게 무너질까. 그 모든 질문의 끝에는 '나답지 못한 나'에 대한 혐오가 있었다. 남들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나, 눈치를 못 보고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나, 어딘가 어긋나 있는 나. 나는 그 어긋남을 고쳐야만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야 알겠다. 나는 고장 난 게 아니었다. 다만 한 번도 충분히 이해받은 적이 없었던 거였다. 외로웠고, 혼자였고,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내 안에 무겁게 쌓여 있었다. 그걸 꺼내어 본 적이 없었기에, 그게 얼마나 아픈지도 몰랐고, 그 아픔이 나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감정을 억누르는 데 익숙해져 있었고, '괜찮아야 한다'는 말 아래 진짜 나를 눌러놓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나조차 나를 오해하게 되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나는 원래 차갑고 무심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마음을 지워가며 살아왔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어긋났던 시간들도, 서툴렀던 마음들도, 모두 나를 이루는 일부였다는 걸. 그것들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지나온 생생한 흔적이었다는 걸. 나는 그 흔적들을 없애는 게 아니라, 다만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야 했다. 마음의 모양을,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나조차 외면했던 내 진짜 감정을. 그렇게 천천히, 나는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조심스럽지만, 분명히.
누군가는 여전히 나를 이상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말에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아왔는지를 알고 있고, 어떤 상처를 품고 있었는지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해는 나를 바꾸지는 않았지만, 나를 지탱하게 해 주었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지만, 이제는 그 불완전함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나는 늦게야 나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래서 아주 조금, 살아볼 용기가 생겼다.
서툰 감정도, 무뎌진 마음도, 때때로 겁이 많은 나도, 이제는 내 편이 되어주고 싶다.
누군가의 기준이 아닌, 나의 속도로, 나의 말투로, 나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조금 늦더라도, 이제부터는 내 편으로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