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내게로 오다
글 : 김경미
사진 : 고명근, 구본창, 김장섭, 김정수, 김중만, 박우남, 박재영, 배병우, 심우현, 윤명숙,
윤상욱, 이경애, 이민영, 이영훈, 이주한, 이지연, 임안나, 정세영, 정소영, 정주하,
주상연, 최경자, 최병관, 한상필, 한성필, 황규백, 황규태, 황선구, 김남진
2004
바다를 주제로 많은 작가들이 찍은 사진을 보다 보면 사람마다 바다를 이렇게 다 다르게 보는구나 하며 신기해진다. 바다의 모양도, 색도, 바다가 담아내고 있는 것들도 다 다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일생도 참 싱겁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단 한 사람도 죽음을 면책받을 수 없는 참 싱거운 싸움인 것입니다. 그 싱거움을 이기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든 무슨 흔적인가를 남기려고 지나치게 애를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자 거의 교정 불가능한 욕망은 자신을 드러내서 인정받으려는, 흔적을 남기려는 욕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생의 싱거움을 견디는 혹은 이기는 제 일의 원칙은 시간을 이기려 하지 말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원칙을 위해 몸을 낮춘 채 흔적에 집착하지 않아야 어제 걸었던 길을 새겨 두지 않는 곳,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의 그 어떤 외형적인 화려한 치장이나 결실 없이 무한한 내면만으로 존재 자체의 위대함을 구현하는 사막과 바다를 끝없이 겪고 보고 들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바다보다는 산이 좋았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나뭇잎을 보는 것이 좋았고, 숲에서 소리 높이고 있는 새들의 소리도 좋았고, 걸을 수 있는 길이 이럴 때 저럴 때 달라서 좋았고, 냄새도 좋았다. 그리고 가는 길의 목표라는 것이 있어서 올라갔다 내려왔을 때 뿌듯함도 있고. 바다는 걷게 되기보다는 어딘가 앉아서 보게 되기 때문에 목표라는 것이 없다. 몇 시간 멍때렸나 기록 세우는 것이 목표일 수도 있겠다. 흔적이 중요한 내게 바다는 답답하기만 한 대상이었다. 지금의 나는 주어를 나에서 그분으로 바꿔가는 과정 속에 있다. 나는 그분의 소리가 잘 안들리지만 그분의 소리를 듣고 싶다. 사람들은 그분에게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그 앞에서 자주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한다. 조급한 내게 머물러 있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머물러 있기로 했다. 그러고보면 그분은 참 바다 같구나. 나는 그냥 그 앞에 앉아서 끝없이 겪고 보고 들어보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