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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하 Oct 21. 2024

마녀와 마녀

’당신이 그 마녀구나···‘



늙은 마녀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한눈에 보아도 성에 불러들인 다른 마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어두운 기류와 다르게 자신을 따뜻한 눈길과 온화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이런 사람이 흑마술을 사용했다는 게 믿기 어려웠다.



“무슨 일이야, 칸나?”



다정한 리온의 말투에 긴장이 풀린 칸나는 굳었던 몸과 목소리를 가다듬고, 오늘 식사 때 나온 차가 무슨 의미인지를 물었다.



“···차?”



모르지는 않을 텐데.

이제껏 왕비의 식사에 나온 적이 없던 메뉴였어.

왕도 모르게 누군가가 내놓았다고?



“대답할 마음이 없는 건가요?”


“······”


“됐어요. 어쨌든 그 차를 더 이상 식사에 올리지 않았으면 해요. 다 마시는 것을 지켜보고 가다니. 그런 불편하고 위협적인 행동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고요.”



칸나의 불쾌함을 감지한 늙은 마녀가 그저 왕비님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차일 뿐이라고 둘러댔다.



“일이 바빠 건강을 해칠까 염려되신 전하께서···”


“건강을 해칠까 염려하는 사람이 임신을 종용한다고요?“



칸나의 화가 난듯한 말투와 표정, 그리고 예상치 못한 답안에 리온과 늙은 마녀는 당황했다.



“저도 전하도 아직 젊기 때문에 자연히 생기지 않는 아이를 염려할 필요도 없으며, 그런 방법을 사용해서 지금 임신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외 문제도 어지러운 이때에 왕실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제 임신으로 귀족들이 분열되는 걸 원하시나요?“



어라.

당신···

이렇게 똑 부러진 사람이었나.



칸나의 색다른 모습에 리온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리온을 뒤로하고, 그녀는 늙은 마녀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마법 기사단 소속은 아닌데, 어디서 온 사람인가요?”


“···그냥 여기저기 떠도는 마녀입니다.”



어디서 왔는지도 숨긴다고?

리온에게도 이런 방법이 통할리는 없을 테고.

나에게는 말할 필요가 없다는 건가?



애써 누르던 불편한 감정이 칸나의 안에서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방 밖으로 흘러나오던 검은 기운의 주인은 분명 이 사람이었을 텐데.

여기서 뭘 했길래 숨기려고 하는 것일까.



“흑마술을 사용한 이유는 뭐죠?”


“······.”



칸나의 질문에 이제껏 따스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늙은 마녀의 표정이 굳었다.



‘......의 아이 칸나...'



마녀가 흑마술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그 모습을 직접 보지 않으면 흑마술인지 알 수 없었고, 보통은 그것을 구분하거나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칸나는 마법을 시전 하는 것을 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알았을까.


고민 끝에 늙은 마녀는 차를 만들 때 마법을 사용했던 것을 핑계로 삼았다.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차를 만들 때요. 하지만 그 차는 흑마술과는 거리가 먼···”


"그 차는 흑마술과 무관한 것을 나도 압니다. 그 차를 어떻게 만드는 지도 물론 알고요. 그 얘기가 아닌 것을 잘 알 텐데 말 돌리지 마세요."


"........"



칸나는 대답 없는 마녀에게로부터 눈을 돌려 리온을 바라보았다.



"대체 이 문제를 '언제부터, 어디까지' 숨길 건가요?"



그녀에게는 리온이 왕궁에서 흑마술을 사용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서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이 일이 겉으로 드러난다면 현재의 마법 기사단에 대한 계획도 모조리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마녀들에 대한 차별과 박해는 지금보다 더 거세질 것이며, 이전처럼 마녀사냥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치료사들로 쓰일 거라며 귀족들을 달랬던 그날, 그들 앞에서 더 이상 흑마술을 사용하는 마녀는 없으니 안심하라고 공표한 걸 잊으셨나요?"



잊었다기보다 외면하고 있었던, 그녀의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에 리온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를 대신해 늙은 마녀가 다시 입을 열어 칸나를 달래려 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흑마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나도 알아요. 둘러댄다고 능사가 아니에요."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날이 선 칸나의 태도에 늙은 마녀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왕비님께서도 사용한 적이 있으십니까?"



지금 누구를 취조하는 건지, 그녀는 울컥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게 지금 당신이 할 적절한 대답이라고 보는 거예요?! 당신은 여기서 사람을 저주했다는 죄목으로 지하 감옥에 끌려가도 할 말이 없다고요!!"


"......제가 흑마술을 사용했다는 걸 확신하고 말씀하시는군요."



증거는 없을 테니 차라리 뻔뻔하게 나오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늙은 마녀의 대답은, 오히려 칸나의 화가 끝까지 차올라 냉정해지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런 적이 없다?"


"....없습니다."



날 얼마나 우습게 보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새파랗게 어린 마녀 하나가 왕비 자리에 올라서 어설프게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그래서 이렇게 눈을 마주하고도 거짓을 말하는 거겠지.



차분하게 이성을 되찾은 칸나가 리온에게도 물었다.



"전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 할 말 없나요?"


"...진정해 칸나... 나도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어."


"...그래요?"



칸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눈을 마주치면 눈길을 돌릴 법도 한데, 뻔뻔하고 당당한 모습이 어이없이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이윽고 불편한 침묵끝에 그녀가 조용히 마법을 읊었다.

따로 준비도 없이 시전 되는 칸나의 마법은, 늙은 마녀가 사용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흑마법이었다.



"...!!!..."



칸나의 심장에서부터 목을 타고 얼굴로 올라오는 핏줄의 검은빛과, 몸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기류를 본 늙은 마녀가 서둘러 그녀에게로 다가가 저지시켰다.



"왕비님!!! 그만!! 용서해 주세요...!!!!!"




<마녀와 마녀 2.>



강한 마력을 타고난 마녀들은, 마법의 기운이나 마력의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늙은 마녀 또한 그러했고, 칸나와 그녀의 모친인 지오니도 마찬가지였다.


흑마술의 시전자는 악마와의 계약을 통한 것이기 때문에, 온몸의 핏줄이 검게 물들거나 몸 밖으로 검은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일반 사람들이나 적은 마력이 있는 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


흑마술을 사용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마녀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는 사람은 일단 모두 수상해 보였다.

어둠의 마녀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어둠의 마법에 눈 뜬 자가 변화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흑마술을 사용하는 마녀를 골라내어 처벌하는 것보다, 마녀들을 모두 처벌하는 것이 더 안심되었다.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불안요소를 가지고 있던 자들.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특이함을 가진 자들.

강하지만 소수였던 자들.


마녀 사냥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들이었다.



"당신도 알고 있네요? 내가 흑마술을 사용했는지, 아닌지."


"......"



칸나의 말에 늙은 마녀는 입을 꾹 닫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흐르는 식은땀과 불안한 얼굴은 이미 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도 그래서 알았습니다. 이 방에서 흑마술이 사용되었다는 걸."



방 밖으로 새어나가는 검은 기류를 생각하지 못한 늙은 마녀의 실수였다.

아니, 이 타이밍에 칸나가 찾아오리라 생각하지 못한 그들의 실수였다.


복도를 걸어 리온의 방으로 오는 칸나의 마력의 기운을 눈치챈 늙은 마녀가 마법을 멈추고 문을 열었지만, 그녀가 흑마법을 눈치채고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거기에 당연히 모를 것이라 생각했던 차의 비밀까지.



'역시 너는.....'



칸나를 보는 늙은 마녀의 머릿속에 많은 일들이 떠오르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제 당신이 지하로 가도 될까요?"



용서할 마음은 없다는 듯, 단호한 칸나의 모습에 리온이 얼른 뛰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두 손을 꼭 붙잡으며 사과를 건넸다.

늙은 마녀는 자신이 부탁한 일을 위해 온 것이며, 사람을 해칠 마법을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변명했다.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흑마술의 종류는 극히 드뭅니다. 전하는 분별하실 수 없고요."


"정말 미안해, 칸나.. 당신을 속이려던 게 아니라... 아니, 속인 게 되었지만...."


"우리의 관계에 신뢰가 남아있길 원한다면, 더 이상 속이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리온은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저주를 입힌 무기를 만들어서 마법 기사단에게 배분하려 했다는 이야기.

특수한 무기가 될 것 같아 한 번 시도해보려 한다는 그의 이야기에 칸나의 머리가 아파왔다.



'........'



무기에 저주를 입히면, 일반적인 마력 무기와는 다르게 사용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마검같이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회용으로 끝나기 때문에, 저주는 대부분 화살에 입혀지고 많은 저주와 마력에 노출된 사용자는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아주 오래전, 전쟁에서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위험한 방법.



'리온이 이걸 알까?'

'이렇게까지 해서 얻으려는 게 뭐지..?'



칸나는 왕실의 기사단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이 방법을 리온이 굳이 원하는 건, 마녀들이 단순한 예비병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마법 기사단으로 일하는 수많은 마녀들이 죽게 될 이 문제에 저 늙은 마녀가 협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이제 솔직히 말했으니 그녀를 지하로 데려가지는 않겠지?"


".....조건이 있습니다."


"?"



이 일을 멈춰달라고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칸나는 늙은 마녀와의 독대를 청했다.

망설이던 리온에게 늙은 마녀가 먼저 나서서 그녀를 따라가겠다고 이야기했고, 둘은 칸나의 방으로 향했다.


돌아서서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던 리온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너는 자꾸 예상을 벗어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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