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히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써서 식자연한다면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이민자, 이주민, 이주민 공동체라는 말로 뭉뚱그려 설명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디아스포라에는 있는 듯하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고대 그리스어로 '~너머'를 뜻하는 '디아(dia)'와 '씨를 뿌리다'는 뜻의 스페로(spero)가 결합한 단어로 파종(播種)이란 어원적 의미를 갖고 있다. 원래는 바빌론의 유수 이후 중동 전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유대인 공동체를 가리키던 말이었으나, 지금은 자의든 타의든 본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집단), 정치적 난민, 소수 인종, 이주 그 자체 등을 뜻하는 말로 의미가 확장됐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디아스포라 영화를 꼽는다면 아마도 “대부(The Godfather)”일 것이다. 미국으로 건너 온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갱스터 영화의 클래식은 미국영화연구소 선정 100대 영화 2위에 올라있고 1편과 2편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가장 최근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디아스포라 영화라면(디아스포라 영화라고 확실히 분류하기는 좀 어렵지만) 2019년의 “그린 북”을 들 수 있다. 1960년대 흑백 차별이 뚜렷하던 미국에서 흑인 피아니스트에게 고용돼 운전과 허드렛일을 하는 자존심 센 이탈리아 이민자(공동체)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최근 관객 30만 명을 돌파하며 올해 최고의 입소문 흥행작이 된 양자경 주연의 멀티버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역시 디아스포라의 삶을 다루는 영화이다. 홍콩에서 액션배우로 영화 인생을 시작한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의 양자경은 본인 스스로가 몇 단계에 걸쳐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고 있다.(말레이시아-영국-홍콩-미국)
“에에올”에서 양자경이 맡은 에블린이란 역도 홍콩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 빨래방을 운영하는 이민자다.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을 한 뒤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했지만 현실의(‘제1우주’라고 명명해본다) 에블린은 다른 평행 우주의 에블린과 달리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위기의 중년 여성이다. 미국 생활과 영어에 완벽하게 익숙지는 않아서 세무 당국에 쪼이고, 생긴 건 동양인인데 내면은 서양인에 가까워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딸은 딸대로 속을 썩인다.
디아스포라에게는 그들만의 외로움과 그들만의 고민과 그들만의 정체성이 있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 ‘미운 오리 새끼’의 감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이들이 그들일 것이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디아스포라 영화의 역사는 길고 디아스포라는 그들 문화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한인 디아스포라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는 거의 없었다. 한인 역할이 없으니 심지어 한인 배우가 중국인 역할을 하거나 일본인 역할을 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변화가 일고 있다. 독립예술 영화의 명가 A24의 “미나리”는 80년대 한인 이민자의 이야기이고, 애플TV의 “파친코”는 일본과 미국을 배경으로 한 자이니치 이야기이다. “파친코” 역시 이민자인 이민진 작가의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시리즈니 이제 미국에서도 책과 영화를 통틀어서 한인이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디아스포라로 당당히 평가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극장가에서 상영 중인 두 편의 한인 디아스포라 영화가 눈길을 끈다. “초선(CHOSEN)”은 미국 내 한인 정치인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맨 처음 눈에 들어왔던 건 ‘감독 전후석’이라는 크레딧이었다. 그의 전작 “헤로니모(2019)”를 감동적으로 봤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헤로니모” 개봉 전 축약본인 “헤로니모를 찾아서”를 KBS 광복절 특집 다큐로 보았다)
“헤로니모”는 쿠바 한인 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내려고 애썼던 쿠바 한인 2세대 헤로니모 임, 한국명 임인조 씨의 일생을 다룬 작품이다. 피델 카스트로와 아바나 법대 동기로 쿠바 혁명에 참여하고 나중에 쿠바 정부에서 산업부 차관을 역임했을(당시 장관이 체 게바라였다!) 정도로 거물이었는데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여서 냉전 시기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충고를 듣지 않고 한국어를 배우지 않았던 헤로니모는 말년에 한국을 방문한 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고 쿠바 한인회 설립을 위해 헌신하는데 이 모습이 영화에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솔직히 “초선”은 “헤로니모”만큼 감동적이진 않았지만 대충은 안다고 생각했던 미국 속의 한인 디아스포라, 즉 코리안 아메리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맥락들을 알려주는 영화였다. 우선 이 영화는 우선 올해가 LA 폭동 30주년이라는 사실을 되새겨 주었다. 한인 사회의 엄청난 물리적·정신적 피해를 입힌 LA 폭동은 한편으로는 한인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 폭동 당시 코리아타운이 흑인들의 무차별 공격의 대상이 되는 동안 미국 경찰은 미국인 부촌만 경비했을 뿐 코리안타운은 방치했다. 한국 상점은 불타고 약탈당했다. 배트맨 영화에서나 보던 (한인)자경단이 만들어졌고, 군대에 다녀온 한인 남성들은 건물 옥상에서 총을 들고 폭도들에 맞섰다. (LA 폭동의 배경은 단순하지 않으며 한인 사회가 타깃이 된 데는 여러 배경들이 있다) LA 폭동으로 한인들은 정치적 대표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각성했다.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노동 이민을 오면서 시작됐던 미국 한인 이민사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초선”에서 전후석 감독은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1명은 3선, 3명은 재선) 한국계 의원들의 2020년 선거 운동에 따라붙는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제1주인공은 정치에 첫발을 들여놓는 데이비드 김 민주당 후보다. 미국에 이민 온 목사의 아들인 그는 무명의 정치인이고 성소수자다.(목사의 아들인데 성소수자였으니 그가 집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는 안 봐도 짐작할 수 있지만… 영화에 나온다) 게다가 아버지는 공화당 지지자인데 그는 민주당 후보다. 그가 출마한 LA 34지구는 코리아타운이 있는 곳이지만 역시 같은 디아스포라인 히스패닉계가 다수라 아직 한 번도 한인 의원이 없었다. 한국말을 곧잘 하는 한인 2세 변호사지만 아버지와 달리 사실상 미국인에 가까운 그가 어떤 이유로 정치를 하려 하는지 영화는 디아스포라의 시각에서 그의 도전을 따라간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장면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재미 언론인 이경원 기자(93)의 사자후이다. 한국인 최초의 미국 주요 일간지 기자(새크라멘토 유니온)로 활약하고 20세기를 빛낸 언론인 500명 가운데 한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된 그는 한국식 영어 발음으로 거의 울부짖듯이 강연한다.
“4.29(재미 한인들이 LA 폭동을 일컫는 말)는 우리에게 증명했어. 4.29 피해자의 자녀들만이 부모를 도우려고 폭동 현장에 뛰어들었다는 거야. 너희만이 부모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어. 그것을 꼭 기억해야 해! 이게 내가 너희들에게 주고 싶은 유일한 메시지야. 너희 운명은 너희 방식대로 개척해야 해. (LA 폭동 당시 한인들의 투쟁이 실린 신문을 흔들며) 3만 명의 재미 한인들이 시위를 했어. 미국에서 가장 대규모 행진이었어. 빌어먹을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너희 부모님들이 말이야! 나는 그 순간 다시 태어났어. 바로 그때 코리안 아메리칸이 된 거야."
극장에 걸려있는 또 한 편의 한인 디아스포라 영화는 “수프와 이데올로기”다. 감독인 양영희 씨는 조총련계 가정 출신이다. “디어 평양(2006)”, “굿바이 평양(2011)”을 만들어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해온 양 감독 본인은 이 영화들 때문에 반체제 인사로 찍혀 오빠 가족이 있는 북한 입국을 거부당한 남한 국적 취득자이다. 그러니까 국적상 한국인이지만 일본인의 정체성과 ‘두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디아스포라의 경우다. (게다가 “수프와 이데올로기” 조연으로 나오는 일본인 남자와 결혼했다)
양 감독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해 늘 조국이 그리웠던 어머니를 10년 동안 틈틈이 영상으로 기록해서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큰 힘은 세월의 축적이다. 영화 초반 곱고 단정한 노인이던 양 감독의 어머니가 영화 후반부에는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면서 정신마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머니 강정희 씨는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2차 대전 당시 미군 폭격을 피해 부모님의 고향인 제주로 갔고, 거기서 약혼까지 했지만 1948년 4.3 사건으로 혈육과 이웃, 약혼자가 죽임을 당하자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다시 일본으로 밀항한다. 그 이후로 오랜 세월 동안 어머니에게 4.3은 딸에게도 꺼내서는 안되는 말이었다. 일본에서 조총련 활동을 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한 뒤 세 아들과 동생, 부모님 모두 북송한 강정희 할머니는 결국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올해 1월 일생을 마쳤다. 기자 간담회에서 양 감독은 말했다.
“자기가 나서 자란 나라(일본)에 애착을 갖기 힘들고 부모님의 고향인 제주도에 가서도 4.3을 겪고… 정말 우리 어머니는 평생 고향을 가지고 싶었는데, 조국을 가지고 싶었는데 못 가졌구나… (울먹인다) 그래서 북한을 그렇게도 믿으셨구나 해서 어머니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 것 같습니다. 그 후에 어머니가 북한을 다니시면서 북한의 모습이나 현실을 보면서 불만도 많으셨지만. (중략) 어머니는 북한에 정말 인질처럼 가족을 많이 내보냈어요. 그러니까 북한을 원망하고는 살 수가 없고 북한에 보낸 가족을 서포트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살아오셨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어머님의 인생에 대해서 저의 시선이 아주 달라졌죠.”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파친코”의 첫 문장을 온몸으로 살아 낸 강정희 씨의 삶은 가슴을 숙연하게 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은 양 감독에게 절대 일본인과 결혼은 안된다고 했지만 딸이 데려온 일본인 사위에게도 닭백숙을 끓여주며 마음을 열었던 강정희 씨는 민주화되고 4.3이 재평가된 세상에서도 4.3 때 겪었던 트라우마 때문에 제주에, 한국에 가기를 두려워한다. 강정희 씨의 신산한 삶에 비하면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둡지 않지만 이 대목만큼은 비극이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수프는 닭백숙이다. 통마늘을 듬뿍 넣고 푹 끓인 치킨 수프는 디아스포라 강정희 씨 가족에게 영혼의 음식과도 같다.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입니다(You are what You eat).” 강정희 씨에게 조국은 떠올리기 싫은 제주의 악몽도 아니요, 집 안에 걸려있던 김일성 부자의 사진도 아니었다. 조국은 바로 닭백숙이었다.
디아스포라 영화가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는 것은 경계인의 이야기다. 100% 이쪽도, 100% 저쪽도 아닌 그들은 우리 안의 타자이고 타자 속의 우리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통해서 우리를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다. 쿠바 혁명 이후 쿠바를 이끌었던 리더 가운데 하나였던 헤로니모 임,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부친 임천택(애국지사)과 달리 쿠바 사회에 완전히 동화됐던 헤로니모는 만년에는 한인의 정체성을 깨닫고 쿠바에 한인회를 설립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그가 마지막으로 자녀들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쿠바의 한인들은 쿠바 사회에 온전히 동화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뿌리는 영원합니다. 부정할 수 없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