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훈은 “남한산성(2007)” 을 내놓을 즈음부터 한동안 책 표지에 자신을 ‘자전거 레이서’라고 소개했다.(실제로 자전거를 열심히 탔다) 하지만 이후로도 계속 글만 잘 써서 장편 소설만 여섯 편을 냈으니, ‘자전거 레이서’라는 자기 소개는 김훈 특유의 위악적 농담이라고 하겠다.
한데 주윤발은 진짜로 ‘러너(runner)’로서 여생을 보낼 작심을 한 것 같았다. 메타포라는 토를 달기는 했지만, 그는 자기 인생의 첫번째 장은 끝났으며 이제 자신은 러너라고 말했다. (“first part of my life is gone. running is my new life”)
처음 들을 때는 농반진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가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그는 자신이 러너라는 얘기를 기회만 되면 네댓 번이나 반복했다. 배우를 완전히 그만둔다는 얘기라기보다는 더 이상 배우나 스타로서의 정체성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렸다. 배우 인생 50년을 맞은 그는 올해 68세다.
주윤발은 부산에 오자마자 이틀 연속 해운대에서 러닝을 했고(목격자가 많다), 기자회견 다음 날은 부산에서 10km 달리기를 할 거고, 다음달 19일에는 홍콩에서 하프 마라톤에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주윤발은 주윤발이다.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고 노래한다면 영 맛이 살아나지 않듯이, 주윤발은 ‘저우룬파’나 ‘초우연팟’이 아니라 ‘주윤발'이다. 주.윤.발. 이름부터가 주윤발스럽다.
한국인에게 ‘주윤발’의 어감은 이미 문화적 DNA가 되었다. 어감이 어둡고 큰 음성 모음 ‘ㅜ’와 ‘ㅠ’로 이름을 시작하지만 어감이 밝고 산뜻한 양성 모음인 ‘ㅏ’에 이어 끝을 닫지 않고 약간 흘려보내는 ‘-ㄹ’ 발음으로 끝나야만 주윤발이라는 이름이 갖는 아우라가 완성된다.
‘ㅗ’가 아닌(‘조윤발’을 상상해보시라) ‘ㅜ’, ‘ㅠ’는 따거(大哥)의 풍모를 내비치는데, 마지막 ‘발’이 서민적인 향취를 풍기면서 전체적인 톤을 잡는다. 한국어의 ‘발’ 어감이 풍기는 약간의 희화화는 주씨 성(姓)이 방어한다.
나름 사연이 있겠지만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 주윤발에게 ‘아시아영화인상’을 주기로 한 것은 좋은 결정은 아니었다. 명색이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에서 주는 상이고, 상에도 정무적 균형과 안배가 필요한데 지난해 수상자가 같은 홍콩 영화배우인 양조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먼저 받은 양조위는 주윤발보다 일곱 살 아래다. (나이로 순서나 자격을 따지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나마 주윤발과 양조위의 연기의 '결'과 '폭'이 달라 다행이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주윤발이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영웅본색(1986)” 이후 그는 아시아에서 시대의 아이콘이자 청춘의 히어로로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한국 광고에 나온 최초의 외국인 모델로서 주윤발이 “싸랑해요 밀키스!”를 외치는 바람에 당시로서는 정체불명의 이상한 음료를 맛본 한국인들이 어디 나뿐일까.
“한국의 젊은 영화 관객들에게 80년대 후반은 홍콩 영화의 시대였구요, 주윤발은 믿음직스럽고 의지하고 싶은 큰형님이었죠.” (박찬욱 감독. 75회 칸 영화제 감독상)
“우리처럼 가난한 아이들은 주윤발의 영화를 보며 흥분에 사로잡혔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흥분했냐구요?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남자들만의 에너지와 그들 간의 의리를 가득 담고 있었고 그 혈기왕성했던 정신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지아장커 감독. 66회 칸 영화제 각본상)
주윤발과 한국의 인연은 의외로 깊었다. 기자회견에서 주윤발은 1980년대에 한국에 와서 촬영하면서(한중 합작 영화 “순성마”) 갈비탕에 밥을 말아 김치와 먹던 일, 남대문 시장에서 밤마다 번데기를 사먹던 일, 당시 한국에 계엄령이 내려져 있었다는 것까지 세세하게 기억해냈다.
그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과 기자회견장에서 “시간없어요”, “빨리 빨리”, “잠깐만요”, “기뻐요”, “사랑해요” 등등의 한국말을 ‘불시에’, ‘성의있게’ 꺼내어놓는 걸 봤을 때 -물론 열심히 연습도 했겠지만- 왠지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건 아닐 것만 같다.
“영웅본색”에 관한 질문에 답변할 때도 그가 광동어나 보통화가 아닌 한국어 발음으로 ‘영웅본색’이라고 발음하는 걸 나는 분명히 들었다. 그러나 주윤발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호스트이자 아시아영화인상 시상자인 송강호가 자신에게 한 인사말을 하나도 못알아 들었다고 유머러스하게 둘러댔다.
자신을 돋보이거나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게 몸에 밴 사람 같았다. 또다시 화제가 된 기부금 관련한 얘기는 더 꺼내고 싶지 않다. 본인도 잘 모르겠다는 기부금 액수를 정확히 확인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액수를 언급하는 게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주윤발은 한 시간여 기자회견을 완벽하게 리드했다. 초반에는 그만의 유머와 화법이 순차 통역의 장벽에 막혀 의도한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중반 이후에는 노련하게 기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웃기기까지 했다. 게다가 기자들 대부분이 이미 그의 팬이었으니 언제든 ‘따거'의 멋진 멘트를 들을 준비가 돼 있었다.
좋게 말하면 관록이 넘쳤지만, 때로는 기자들의 질문을 슬쩍 눙쳐넘기거나 건너뛰기도 했다. 광동어는 못하니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눈치껏 파악해 보건대 통역 탓도 있었던 것 같고(단순히 광동어만 잘하기보다는 주윤발과 관련한 시대적 문화적 맥락을 더 잘 파악해 한국어로 전달할 수 있는 통역을 냈어야 한다고 본다), 다소 뻔한 질문 탓도 있었을 것 같고, 그저 그런 답을 늘어놓기 싫었던 주윤발의 의도 때문인 것도 같다.
하지만 주윤발은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는 -본인 말대로 메타포를 섞어- 성심껏 전달했다. 사회를 본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집무대행이 기자회견 들머리부터 영화와 관련없는 정치적인 질문은 삼가달라고 못을 박은 게 무색하게, 홍콩 영화의 퇴락 이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주윤발은 그것은 중국 당국의 과도한 규제(“a lot of restrictions”) 때문이라고 스스럼없이 발언했다.
용기와 품성은 가방끈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주윤발은 요즘 기준으로는 거의 무학에 가깝지만(중학교 중퇴로 알려져 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한국어 질문엔 광동어로, 영어 질문엔 영어로, 어떤 질문에는 보통화로 답했다.
"저는 홍콩의 한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10살에 도시로 나갔고 18살에 연기 수업을 받았습니다. 공부를 많이 못한 저에게 영화는 큰 세상을 가져다줬고 제가 맡은 배역들은 인생을 경험하게 해주었습니다. 영화가 없으면 주윤발도 없습니다."
기자들은 특히 그의 거액 기부와 인생을 대하는 태도, 마음가짐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졌는데(나도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주윤발은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대개 선문답이나 약간의 동문서답, 그리고 농담으로 받아냈다. 활자로 만들어진 감동은 진짜 감동이 아닌 걸 아는 어른처럼.
“지금 이 자리에서 저는 배우이고 당신은 기자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단해보일 수도 있지만 이곳을 벗어나면 우리는 그저 일반인일 따름이지요. 제 생각에 저는 보통 사람에 불과합니다.”
주윤발은 ‘지금 이 순간만이 진짜다’라는 말을 믿는다고 했다. ‘현재에 살아라’라는 말도 좋아한다고 했다. 갓 서른이 넘은 시절의 주윤발도 그걸 알았을까.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은 홍콩 구룡반도의 야경이 내려다보는 유명한 산 중턱 씬에서 말한다.
"홍콩의 야경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네. 이런 것도 한 순간이니 정말 허무하군."
자신과 자신의 형제와 다름없는 적룡을 배신하고 조직의 보스가 된 이자웅과의 한판 결전을 앞둔 사당 씬에서는 적룡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송자호(적룡): 신을 믿나?
마크(주윤발): 믿어. 내가 바로 신이니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 바로 신이야.
지금 보면 다소 유치하게 들리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던 청(소)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대사였다. 주윤발이야말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당국의 압박과 돈의 구속, 과거의 명성에도 크게 얽매이지 않는 듯한 삶을 살고 있다.
지난해 양조위도 그랬지만(씨네멘터리 46회 “양조위 ‘받아들인다는 것에 대하여’ 참고), 이제 인생 후반부를 러너로서 달리고 있는 주윤발도 과도한 욕심과 명예욕에서 한발 물러서 있었다. 주윤발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데도 이미 해봤던 관직까지 차지하고 또 차지하며 "봉사하고" 또 봉사하는 한국의 각료들도 있는데.
주윤발은 “영웅본색”과 “첩혈쌍웅”, “와호장룡”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았다.
이번에 부산에서 “영웅본색”을 다시 보았다. 다행히 광동어 버전으로 보았고(부산국제영화제측에 감사한다) 다행히 극장에서 보았다. 언제 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을까 싶다.
이 영화를 일고여덟 번은 본 것 같은데, 어쩌면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극장에서 “영웅본색”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이 봐서 첫 관람이 어디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재개봉관에서 동시 상영으로 봤을 수도 있고, 어디선가 비디오로 봤을 수도 있다. 대학 때는 밤에 술에 취하고 차도 끊겨 어두컴컴한 영화 동아리방에서 혼자 들어가 캐비닛을 뒤져 영웅본색 비디오를 꺼내본 적도 있다.
분명한 것은 “영웅본색”이 처음 개봉했을 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반에서 쉬는 시간만 되면 왜 아이들이 훔쳐온 아버지 선글라스를 쓰고 성냥개비를 질겅질겅 씹고 다니는지 알지 못했다. 수년 뒤 이 영화를 처음으로 접하고 땅을 쳤었다. 나는 왜 이 영화를 이제야 본 것일까,하고. 소싯적 얘기다. 주윤발도 늙고 젊은 팬도 나이가 들었다.
P.S.
한 기자가 주윤발에게 당신은 검소한 생활로 유명한데 혹시 플렉스하는 건 없냐고 물었다.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주윤발은 최근 삼천 홍콩 달러를 들여 카메라 렌즈를 중고로 하나 샀는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인공 조명없이 촛불 켜고 찍은 영화에 쓴 렌즈라고 말했다.
큐브릭이 촛불 켜고 찍은 영화라면 “배리 린든(1975)”을 말하는 것 같은데, 이때 썼던 렌즈는 독일의 칼 짜이스사가 나사(NASA)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50mm f/0.7렌즈다. 세계에서 가장 밝은 이 렌즈는 총 10대가 만들어져 여섯 대는 나사에 납품하고 한 대는 짜이스사가 보유하고 석 대는 스탠리 큐브릭이 사간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2021년 경매에 나온 이 렌즈의 가격이 한화로 억대라 삼천 홍콩 달러로는 이걸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통역이 잘못된 건지, 값이 내린 건지, 다른 렌즈를 말하는 건지 궁금하다. 아시는 독자분 계시면 정보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