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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amongaroo Jul 04. 2022

장롱 속 사과

몰래 먹었던 사과 

마당에서 흙장난을 한창 하고 있었다. 엄마는 흙장난하는 내 손을 냉큼 낚아채서는 방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엄마는 뭐가 그리도 급한지 내 손에 흙이 묻어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엄마는 재빠르게 나를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엄마는 방문 안쪽 문고리에 튀어나온 잠금 버튼을 눌렀다.     


‘딸깍’


엄마는 방문 고리를 잡고 몇 번을 돌려 잘 감겼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엄마는 나를 방 한 가운데에 앉혔다. 그리곤 엄마는 방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갈색빛깔의 장롱으로 향했다. 장롱 안을 열어보니 컴컴했다. 컴컴한 곳에 엄마의 손길이 닿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스락거리는 곳에서 검은 봉지 하나가 나왔다. 엄마는 검은 봉지를 내 앞에 두곤 다시 장롱 옆 개켜진 채 쌓여있는 이불 더미로 갔다. 나는 검은 봉지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해 검은 봉지를 냉큼 내 품으로 가져왔다. 검은 봉지는 이미 여러 번 돌려 묶은 듯 꽁꽁 묶여있어 열어 볼 수가 없었다. 포기한 채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는 이불 속 어딘가를 더듬거리다 분홍색 보자기에 싸인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나는 그저 엄마의 발길을 따라 분주히 눈알을 굴리며 엄마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멈추길 기다려야만 했다. 마침내 엄마가 내 앞에 마주 앉았다. 분홍색 보자기 속에는 커다란 칼이 들어있었다. 과일을 깎는 칼은 아니었다. 엄마는 큰 칼을 이용해 꽁꽁 묶인 매듭을 끊어버렸다.      


⟳↻↷⟳Ó 

    

사과 한 알이 굴러와 내 발에 부딪혀 멈췄다. 엄마는 큰 칼을 잡고 있던 손 매무새를 다시 정리하고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콕’     


엄마는 사과를 깎기 전에 첫 시작점을 칼로 찍어둔다. 큰 칼로 사과의 빨간 껍질 부분을 한 번도 끊지 않은 채 도려냈다. 엄마가 거침없이 빨간 껍질을 깎아갈수록 하얗고 노리끼리한 사과의 민낯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과의 밑 부분까지 껍질이 벗겨졌다. 

검은 봉지 위로 빨간 사과 껍질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 위로 엄마는 껍질을 벗긴 사과를 두었다. 사과가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그리곤 큰 칼로 사과의 중앙부를 쪼개어 잘랐다. 사과의 가운데 심지를 도려내었다. 사과의 배꼽 부분에 남아있던 빨간 껍질을 도려낸 뒤에 나에게 사과 반쪽을 건네었다. 사과를 건넨 뒤 엄마는 엄마의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먹으라는 말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린 단면의 모서리 부분을 크게 베어 물었다. 달큰하고 새콤한 사과 국물이 온 입안에 퍼져나갔다. 입안 양옆의 침샘이 터져 나왔다. 


뒤뜰에 고야나무(토종자두)가 있었다. 여름이 무르익으면 노랗게 익은 고야가 땅에 떨어진다. 떨어진 고야를 주어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고야라고 말했던 나다. 그런데 더 맛있는 것을 발견한 것 같아 행복했다. 난생처음 맛보는 향긋하고 달콤한 맛이었다. 엄마는 내가 먹는 모습을 본 뒤 나머지 사과 반쪽을 베어 물었다. 엄마는 말없이 단숨에 사과를 먹어 치웠다. 엄마가 평소랑 다른 것 같았다.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래도 사과는 맛있었다. 천천히 사과를 베어 물어 입 안에서 사라질때까지 꼭꼭 씹어 먹었다. 아껴먹고 싶은 맛이었다. 엄마는 나머지 사과들을 다시 장롱 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다. 엄마가 장롱 속에 시선을 둔 사이에 나는 잠긴 방문을 열었다. 몇 입 베어 문 사과는 이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떨컥’    

 

우리가 지내는 방 옆에는 할머니가 있는 거실 겸 큰 방이 있었다. 나는 엄마와 있던 방을 빠져나와 창호지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엄마가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와 함께 나는 바닥에서 공중으로 올라가 있었다. 엄마는 나를 들쳐 안고서 다시 방으로 데려와 앉혔다.      


‘이 사과는 우리만 먹는 거야. 다른 사람한테 주면 안 돼. 특히 할머니가 알면 안 된다고.’     


나는 왜냐고 물었다. 할머니에게도 자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맛있는 걸 먹었는데 할머니만 모르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는 나의 이야기에 어떠한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내일 또 먹을 거니까 그때는 절대 방문을 열고 나가면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하고 말았다.      

엄마에게서 이유를 듣지 못한 날,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할머니의 눈동자 속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할머니 눈동자 속에 비친 나는 뾰족한 모습이었다. 나는 이유를 알았지만, 이해는 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한테 미운 짓을 하지 않았는데...’          


엄마는 사과를 볼 때마다 장롱에 몰래 숨겨두고 먹었던 그때의 사과 맛을 자주 이야기한다. 그리고 꼭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요즘 사과는 너무 맛이 없어. 그 시절에 먹었던 사과가 제일 달고 맛있었어. 그때는 사과가 귀하기도 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때 먹던 사과가 그리울 때가 있어.’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사과를 몰래 숨겨두고 먹을 정도로 엄마는 사과를 정말 좋아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숨겨놓고 먹을 정도로 힘들게 지내야 했던 예전의 엄마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엄마는 장롱 속 사과처럼 자신을 보호하고 싶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엄마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때의 엄마가 이해된다.


장롱에서 몰래 사과를 꺼내 깎아주던 엄마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와 같아서일까.      







#에세이

#기록

#옛날이야기 

#어린시절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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