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지 않는 통증

몸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통증

by Intimate distance

자신의 몸과 단절된 여자.

그녀는 마흔 후반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오래된 통증으로 인해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그것이 얼마나 비극적인 경험인지 장황한 언어로 호소하고 있었다.

통증과 고통은 끝없이 설명되었지만, 정작 그녀의 얼굴에는 그 고통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표정은 무표정했고, 근육의 움직임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화장은 짙었고, 얼굴에는 성형의 흔적이 많아 주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이미 수차례 여러 병원을 전전했으며, 그 어떤 치료도 자신에게는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을 통증 치료 방식을 하나 제안했다.

의도적으로 더 강한 통증 자극을 유도해 통증의 역치를 변화시켜 보는 치료였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치료는 통증이 꽤 강합니다. 괜찮으시겠어요?”

그녀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자신은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겪어왔기 때문에, 웬만한 자극에는 둔해졌다고 했다.

치료를 받는 동안 그녀는 거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보통 이런 방식의 치료를 비교적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환자들은 치료 효과가 좋은 편이었기에, 이번에도 혹시 잘 맞는 경우 일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한참 후 다시 내원한 그녀는, 치료가 전혀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자신은 이미 뇌와 몸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이고, 자신의 몸은 이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말했다.

“의학적으로는 더 이상 당신을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몸과 해리된 채, 의미 있는 통합에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

통증은 더 이상 하나의 증상이 아니었다.

통증 그 자체가 그녀의 self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통증 때문에 괴롭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그 통증은 그녀의 정체성이었기에 필연적으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고, 견뎌야만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렇게 자기 자신을 하나씩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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