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든, 운동장에서든, 가족사진에서든 나는 늘 한 발짝 옆에 있었다. 중심에 서는 법을 알지 못했다. 누가 부르면 반 걸음 물러났고, 누가 다가오면 반 걸음 비켜섰다. 이는 조심스러움이 아니라 본능적인 습관이었다. 어디에 있든 한가운데는 위험하다는 감각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주변을 관찰하는 아이였다. 친구들이 부딪치며 떠들 때,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시끄러운 소리와 웃음 속에서도 내 마음은 늘 긴장되어 있었다. 언제 분위기가 급변할지, 누가 갑자기 화를 낼지 예측하는 것이 내 일상이었다. 나는 세상을 사랑하기보다 해석하며 살았고, 그게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차분한 아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은 “은별이는 항상 침착해요.”라고 칭찬했지만, 그 침착함은 감정을 억누른 결과였다. 조금만 소리를 높이면 미움을 살 것 같았고, 감정을 드러내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조용한 착함' 속에 나를 숨겼다. 말이 적고 공감 잘하는 아이는 사회에서 환영받았고, 그 속에서 나는 점점 투명한 존재가 되어갔다.
학교에서 단체활동을 할 때, 나는 리더 대신 조력자를 자처했다.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정리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모두가 편해졌지만, 나는 점점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도 “있으면 좋은 사람” 정도로만 남았다.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만 중심에는 닿지 않는 자리, 그것이 내 위치였다.
이 ‘옆자리 인생’에는 장점도 있었다. 나는 사람의 미묘한 표정을 읽는 데 능숙해졌다. 분위기의 온도, 말의 뉘앙스, 마음의 파문. 나는 그런 것들을 포착했다. 하지만 이 예민한 감각은 나를 극도로 피로하게 만들었다. 타인의 감정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내 감정은 언제나 뒤로 밀려났다. 누군가의 기분이 상할까 봐 조심하고, 분위기를 망칠까 봐 농담을 삼켰다. 나는 결국 모든 관계의 완충재로 살았다.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한 발짝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언제나 중심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있었지만, 그 자리는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 옆에서 안정을 얻었고, 내 조용한 배려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늘 조금 옆에서 세상을 지켜봤지만, 그 옆자리가 세상을 버티게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옆자리가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리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한 발짝 옆은 안전했지만, 그만큼 따뜻함에서 멀어진 자리였다. 웃음소리가 들려도 내 쪽으로 시선이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사라져도 아무 일 없을 것 같은 감각. 그 외로움은 나를 서서히 고립시켰다. 사람들 틈에 있지만,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외로움. 그것은 언제나 '보통'의 한가운데서 피어났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다가, 나는 처음으로 내 위치를 의식했다. 사진 속 나는 늘 끝에 서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비켜 선 나를 보며 이제야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중심에 설 용기가 아니라, 거절당하지 않을 용기였다.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늘 한 칸 옆에서 숨을 쉬었던 것이다. 그 두려움은 여전히 나의 그림자처럼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옆자리에 선다는 것이 결코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 자리는 관찰자의 자리이자 공감의 자리였다. 중심이 아닌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사람들의 진심, 표정 뒤의 그림자, 관계의 온도 차이. 나는 그것을 보는 특별한 눈을 가졌다. 그 눈 덕분에 글을 쓸 수 있었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래, 너는 언제나 조금 옆에 있었다. 그런데 그 옆자리는 정말 네가 원한 자리였니?" 그 질문에 당장 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도망치진 않는다. 때로는 중심으로 한 발 들어가고, 때로는 다시 옆으로 물러난다. 이제 그 선택이 두렵지 않다. 그 거리가 나를 지키는 '호흡의 간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한 발 옆에 선다. 하지만 이제 그 거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옆자리가 나의 관찰력이 되고, 나의 삶을 균형 있게 만들어주는 공간이 되었다. 중심에서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내 자리의 그림자로 세상을 비춘다. 그것이 내가 배운, 나만의 평범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