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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삶... 흔들리며 살아가다

by 석은별

아무 일 없는 하루가 이어진다. 눈을 뜨면 남편이 아들을 챙겨 등교시킨다. 그 사이 나는 커피를 내리고 스케줄을 확인한다. 남편과 아들이 먹고 덜 치운 식탁에 앉아 천천히 아침을 먹는다. 예전엔 늘 내가 아침을 도맡았지만, 어느 날부터 남편이 등교를 챙겼다. 첫째 때 흘려보낸 시간을 떠올리며, 둘째만큼은 곰살맞게 챙기겠다고 했다. 그 덕분에 아침은 한결 너그러워졌다. 한때 내가 바라던 ‘보통의 삶’이 바로 이런 장면이었겠구나 싶다. 감사가 문득문득 밀려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감사의 뒤편을 스치듯 지나가는 그림자가 있다.
감사하고 있는데 왜, 동시에 가슴이 쿡 내려앉을까.
나는 그 반전의 감정 앞에서 잠깐 얼어선다. “지금 이 순간이 끝나 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고요한 식탁 위로 고개를 든다.


아이는 학교로, 남편은 출근으로 흩어진다. 프리랜서인 나는 일정에 맞춰 매일 다른 장소로 향한다. 평일엔 분주하고, 주말엔 함께 쉬거나 외식을 하거나 근교로 나들이를 간다. 모든 게 정상이다. 누가 봐도 평범한 삶이다.


그런데도 나는 종종 두렵다. 아니, 괴롭다. 별다른 사건이 없는데도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한 피로가 밀려온다. 이 괴로움은 외부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도, 일도, 관계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겁고, 왜 이렇게 공허할까. 처음엔 우울인가 했지만 조금 달랐다. 무너짐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정지의 소음’에 가까웠다. 결핍은 없는데 만족도 없고, 문제는 없는데 편안하지 않았다.


그 감정을 선명히 자각한 건 어느 늦은 저녁이었다. 식탁 위에 반찬이 놓여 있고, 남편이 챙겨준 따끈한 한 끼가 기다리고 있었다. 평화롭다 못해 행복한 장면. 그런데 갑자기 숨이 막혔다.
‘이 순간이 여기서 끝나면 어쩌지?’
두려움이 튀어 오르자, 나는 재빨리 다그쳤다. “이 정도면 감사해야지. 괜히 불행을 부르지 마.” 하지만 다독임에도 그 물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면의 괴로움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겉모습은 단정하고, 일상은 잘 돌아간다. 그런데 내 안에서는 미세한 균열음이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 웃을 때 함께 웃지만, 그 웃음의 끝에서 허공이 느껴진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마음은 자주 비어 있다. 그것은 고독이라기보다, 삶의 질감이 손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보통의 삶’을 목표로 살아왔다. 보통의 가정, 보통의 일상, 보통의 행복. 그런데 막상 그 삶 속에 들어오니 이상하게 ‘살아 있음’이 약해졌다. 내가 원했던 건 평화였는데, 그 평화는 정적처럼 느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 무게의 정체는 마음을 관찰하면서 조금씩 드러났다. 나는 오랫동안 ‘문제 해결의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극복하고 정리하고 이겨내는 일에 익숙했다. 그러니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는 내게 방향성을 잃은 상태였다. 고통이 나를 움직이던 시절이 지나자, 움직임이 멈춘 자리에 정체가 앉았다. 평화로워야 할 시간에, 나는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는 막막함 속에 서 있었다.


보통의 삶은 나를 구원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내 깊은 불안을 드러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이렇게 사는 게 정말 사는 걸까?’
그 질문들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한 것은 ‘평범’ 그 자체가 아니라, 의미 있는 평범이었다는 것을. 반복되는 하루가 아니라, 그 하루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분명히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을 나는 원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게 산다. 커피를 내릴 때 향을 충분히 맡고, 아이의 웃음에 잠시 머문다. 이전처럼 큰 목표로 나를 몰아세우지 않는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의식적으로 존재하기’를 연습한다. 아직도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삶의 괴로움은 결핍이 아니라 무감각의 결과라는 걸. 살아 있다는 감각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불러와야 하는 것이라는 걸.


나는 여전히 평범한 하루를 산다. 그러나 그 평범 속에서 작은 떨림을 찾는다. 커피잔의 온기, 창을 스치는 바람의 결, 누군가의 목소리. 그 미세한 진동들이 나를 다시 살게 한다.

이제 나는 안다. 이 괴로움은 나쁜 징후가 아니다. 삶이 아직 나를 흔들고 있다는 증거다. 흔들림을 느낄 수 있을 때, 보통의 하루는 비로소 살아 있는 평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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