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회가 불편한 이유

매거진을 시작하며

by 구수소녀

나는 모태신앙인으로 자라났다. 보통 모태신앙인이라 하면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해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다는 것을 말한다. 주일 예배와 주일학교에 빠지지 않고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우리 엄마는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집에서도 성경을 읽게 한다던지 성경이야기 전집을 사주시는 등 조금은 더 적극적인 교육을 하셨다. 아빠는 엄마를 따라 예배 참석만 하시는 정도였기 때문에 온전한 집안 분위기가 신앙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집에서는 엄마와 있는 시간이 절대적이라 교회와 믿음생활이라는 건 내게 숨쉬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주일 예배에 빠지면 큰일 나는지 알았던 내가 내 발로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된 것은 재수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모든 대학에 똑 떨어진 나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내가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것은 생각지도 않고 그동안 내가 교회에서 했던 이런저런 봉사들을 떠올리며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보상하실 순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치열해야 했을 시간 놀기 바빴던 내게 불합격은 당연한 결과였음에도 불고하고 모든 탓을 하나님에게로 돌렸으니 당시 나의 어린 마음이 얼마나 편협하고 세상에 대한 시야가 좁았었는지를 알 것 같다. 어쨌든 1년여 간 덮어놓았던 교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된 건 수능을 마친 후 내 손을 강하게 잡아 이끌었던 친구의 덕이었다.


친구 덕에 찾은 교회를 난 참 열심히도 나갔다. 그동안 개인적인 신앙 체험도 있었거니와 교회에서 만난 선배, 친구들과 매일같이 어울려 노는 것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 습관적이던 교회생활 대신 내가 직접 '믿음'이란 것에 대해 알아가 보자는 결심도 했다. 여러 책을 찾아읽으며 나의 믿음의 근거를 세워갔고, 선배들과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 교회 마당을 밟았으니 나의 대학 생활은 학교가 아닌 교회에서 거의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엔 찬양팀, 제자훈련 등에 참여했고 방학 땐 거의 일주일씩 하는 수련회에 나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에서의 연차가 쌓여갈수록 해야할 책임과 의무도 늘어만 갔다. 내가 출석하던 강남의 대형 교회는 대학부 문화를 선도하고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표정과 어깨는 점점 무거워졌다.


이런저런 상황과 생각 속에서 고민은 깊어지고 염증은 쌓여만 갔다. 더이상 못하겠다 싶었던지 두 발을 담그고 있던 교회에서 나는 슬쩍 한 발을 빼보았다.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조금은 더 자유로운 생활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슬쩍 뺀 한쪽 발은 때에 따라 두 발 모두가 되기도 했고, 이래선 안되는데 싶으면 한발씩 두발씩 다시 담궈보는 일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해방감과 불안감을 번갈가면서 느끼곤 했다.


언젠가부터 내 이상형은 ‘신실한 날라리’였는데 자기중심이 잘 잡혀있으면서도 고리타분하지 않고 유연하게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서른이 넘어 그런 사람을 만났다. 겉으로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이미지였던 내게 신랑은 자기는 사실 그리 교회를 열심히 다니지 않는다는 고백을 하면서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한다는 말로 나의 마음 한켠을 열었다. 내가 수요예배, 금요예배까지 빠지지 않고 가는 사람인 줄 알았던 신랑은 교제가 시작되면서 내가 주일에도 종종 교회를 빼먹는다는 사실에 놀라워했고, 나 자신도 왔다갔다 하고 있는 상태에서 내가 신랑에게 지도편달해줄 것은 별로 없었다. 누군가를 끈덕지게 어디로 이끌어가기보다는 내버려두거나 신랑이 하자는대로 따라가는게 더 편한 얇은 성정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나는 신랑과 교회를 가야 하는 이유가 아닌 왜 교회를 가지 않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훨씬 많이 나누기 시작했다. 관련된 주제의 영화를 볼 때마다, 모임에 다녀온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 기독교인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왜 교회에서 하는 이야기에 동의할 수 없는지, 사람들의 나눔에 공감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들이다. 신랑이 청년 모임에 한번 참석했을 때 사람들이 돌아가며 기도제목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중 한 청년의 기도제목은 '여자친구가 생기는 것^^'이었는데, 모두가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경청하고 같이 기도해줄 것처럼 끄덕이며 받아적는 분위기에서 신랑은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고 했다. "그걸 왜 기도제목으로 내놓는거지? 그러기 전에 먼저 거울을 봐! 안경도 좀 벗고 미용실도 가고. 네가 노력을 해야지." 이런 적도 있었다. 언젠가 주일 낮에 틀어놓은 기독교TV의 한 대형교회 목사님의 설교는 나도 참을 수 없이 단순하고 성의없기 짝이 없는데 성도들의 반응은 더욱 맹목적이고 열광적이었다. 신랑이 내게 말했다. "네가 가르쳐주는 성경공부가 훠어어얼씬 나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만 있었던 건 아니다. 매주 일요일 저녁 우리는 TV로 예배 방송을 같이 시청하는데, 남편이 친근하게 'J형'이라고 일컫는 그 목사님은 보기 드물게 열린 사고와 진솔한 표현, 소통에의 노력을 하는 분이라 남편에게 '내 인생에 전무후무한 목사님'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그 목사님은 아실 리가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면서도 신앙의 영역이란 남편에게 잘 와닿지 않는 추상적인 세계라 정작 'J형'이 말끝마다 전하는 예수님 이야기는 어려워했고, 지금도 우리집 거실을 나가 예배에 직접 참석하는건 보통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 아니다.


나의 생각은 지금도 오락가락한다.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은 교회에서 만나 깊은 교제를 나눠온 친구들이 많고, 엄마나 오랜 친구 등 주변에서는 여전히 신앙을 놓으면 안된다고 잔소리같은 조언을 해주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도 변함없이 성숙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이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그리울 때도, 진정한 주님을 만나기를 소망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쌓아놓은 이유들로 교회에 나가는 것이 많이 불편해진 것 또한 쉽게 바뀌지 않는 사실이자 정직한 나의 상태이기도 하다.


이야기들을 앞으로 몇 회에 걸쳐 풀어보려 한다. 10년 이상을 경험하고 고민해왔던 문제들고, 신랑과 대화를 나누면서 더욱 일반인 시각에서 생각하게 된 부분들도 많다. 인적인 경험과 생각이라 제한적이고 편협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간 쌓인 생각들을 쏟아내어 스스로 정리하는 기회를 갖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고픈 마음도 크다. 소소한 몇몇 지인들과 이런 생각들을 나누어본 적은 있지만 한계가 있었고, 나의 경험과 생각을 다른 기사나 서적에서는 잘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다. 대략 생각한 주제는 아래와 같이 펼쳐지는데, 글을 이어가며 조금씩 변동이 있을 것이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


1. 그들만의 리그: 교회 집단의 폐쇄성

2. "예수님을 만나면 당신의 삶이 바뀝니다.":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은 어디에

3. "너는 특별하단다?": 특권의식과 선민의식의 폐해

4. 자기부정과 자존감의 관계: 믿음을 주입하려 할수록 작아지는 나 자신

5. 욕망에 대하여: 적절히 배출하지 못한 욕망의 향방은?

6. 신앙인 vs. 사회인: 신앙적으로 해결하면 만사 OK?

7. 현실에 발 딛는 것의 어려움: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방법?

8. 유연성: 다른 문화에 대한 자세

9. 하나님의 뜻: 말끝마다 찾는 '하나님의 뜻'이 뭐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