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찌빗

(한국으로 취직해서 오는 아마존 출신 악어)

by 먼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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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찌빗이 올 시간이 되자 내 요요는 더 빨라졌다.

무슨 요요냐고?

그것은 내 눈동자!

나는 내 눈동자에 끈을 길게 달아 요요로 만들었다.

그리곤 하루 종일 대문 밖과 시계로 눈동자를 던졌다.

대문 밖은 조용. 시계는 오후 6시.

해님이 남극으로? 아냐 펭귄들이 뜨거울 거야.

서쪽 아프리카로 돌아가기 전 아쉽다는 듯 '지잉' 광선검을 쏘아 주었다.

그러자 창문들이 부끄럽다는 듯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나는 빨간 창문이 좋아. 그건 창문이 익었다는 거니까. 사과처럼.

그렇다고 창문을 와삭 깨물어 먹을 수도 없고....

대신 '드르륵' 활짝 열었다.

"거 봐." 반가운 손님이 상큼하게 집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2


할아버지의 머리카락들이 차멀미에 지쳐 축 늘어져 있었다.

"현이 잘 놀고 있었냐? 자아 이쪽은...." 할아버지가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미스터 찌빗!" 나는 크게 소리 질렀다.

"허허." 할아버지가 웃으시며 손 짓 하셨다.

'덜컹덜컹' 커다란 가방이 나타났다.

'저벅저벅' 묵직한 발소리가 들어왔다.

"하아이!" 찌빗이 손을 내밀었다. 엄청난 초록색 손이었다.

내 책가방만큼, 아니, 더, 더 컸다.

교과서와 공책, 필통, 간식 통에 크레파스와 스케치북도 들어갈 만큼.

나는 갑자기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다리도 말랑말랑 해졌다. 더구나 젤리처럼 바닥에 붙어 버렸다.

할아버지 뒤로 가는데도 한참 걸렸다.

할아버지 바지를 꽉 잡은 채 찌빗을 보았다.

찌빗은 양복이 꼭 끼어 온통 초록색이 된 것 같았다.

허리엔 까만 가죽 가방이 덜렁덜렁 매달려 있었다.

땀방울이 뚝뚝 얼굴에 흘렀다.

납작한 입은 놀이터 시소 같았고 새하얀 이빨들은 꿈틀꿈틀 오리떼 같았다.

금방이라도 '꽥꽥' 튀어나와 '덥석' 옷자락이라도 물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찌빗은 무안한 듯 손을 쓱쓱 허리에 문질렀다.

'덜거덕덜거덕' 호두 껍질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괜찮아, 괜찮아, 현아." 찌빗이 더듬더듬 말했다.

나는 할아버지 옷 속으로 캥거루처럼 숨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대롱대롱 달고 거실 의자에 앉으셨다.

'푸욱 삐그덕' 강아지처럼 의자가 낑낑 댔다.

"알리, 얼른 와. 앉아. 우선 앉아."

할아버지 손이 수건처럼 펄럭이자

찌빗이 가방을 조신스럽게 놓고 의자에 앉았다.

'푸욱 덜커덩' 코끼리처럼 의자가 쿠르릉 댔다.

할아버지는 나의 손을 끌어 무릎에 앉히셨다.

"현아! 할아버지랑 했던 말 기억나지?"

"네에."

나는 모래무지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물고기처럼 숨죽여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