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내 뒤통수를 친 아파트키드의 상큼 발랄한 나의 살던 고향記
'자기 삶의 기획'. 내가 5년째 붙잡고 사는 화두다. 아마도 지금껏 살면서 후회막급인 순간순간이 많아서인지도 모른다. 특히 일 하느라, 애 키우느라 '의무감'에 지나치게 짓눌려 '그 시점에서 중요한 걸 가장 먼저 해야 한다'는 진리를 깜빡하고 산 나의 30대가 제일 아쉽다. 이런, 보석처럼 반짝이는 내 인생의 30대를... 쯧쯧.
18년간 다니던 회사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맞이한 40대. 나는 진짜 열심히 세상을 '공부'하며 자기 삶을 기획하고 멋지게 실천하는 재야의 고수들을 만나러 다녔다.
나는 솔직히 보고 듣고 느낀 걸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살짝 있다. 뭐 그렇다고 밀린 숙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거지 기록을 100% 실천에 옮기는 건 아니다. 때문에 나의 기록물은 맥락도 두서도 소재도 중구난방이다. 그런 내게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의 이인규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나의 살던 고향 아파트를 잡지에 담다
33살 이인규는 강동구 둔촌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 키드다. 1979년 지어져 6000세대의 낡은 아파트는 재건축을 앞두고 곧 헐릴 운명이다. 곧 사라질 고향을 위해 그는 글로 쓴 다큐 작업, 1인 잡지 발간을 시작했다.
“곧 재건축이 될 테니 추억을 기록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게는 둔촌아파트가 즐겁고 푸근한 고향이니까요. 어찌 보면 아파트를 차가운 콘크리트의 성냥갑으로 비하하는 고정관념에 내 나름의 삐딱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할까요.”
그의 감성과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 글쓰기와 사진 작업, 편집디자인까지 6개월 꼬박 홀로 작업해 자비출판으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펴냈다.
이 친구가 그렇다고 시간 헐렁한 백수는 결코 아니다. 되려 업무 강도 세기로 악명 높은 유명 광고대행사에 다니며 피 터지게 일하는 회사원이다. 없는 시간 쪼개 자기 돈 들여가며 '고향'에 대한 의리를 지킨 거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잡지 발간을 알리자 반향은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모두들 같은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둔촌키드’들이었다.
“둔촌아파트에는 20년, 30년씩 산 사람들이 많아요. 나와 비슷한 코드를 가진 아파트 키드들이 내가 벌인 ‘판’에 뜨겁게 반응하더군요. 3000명의 페북 친구들은 추억을 담은 장문의 글과 옛 아파트 사진을 올리며 둔촌의 추억을 공유했어요. 힘들 때마다 고향 같은 둔촌아파트를 찾아 힘을 얻는다는 고백부터 어릴 때 살던 424동 사진 좀 찍어서 올려달라는 외국에 살고 있는 젊은이의 부탁까지 사연도 각양각색이지요.”
잡지는 벌써 3호째 나왔다. 한 권씩 나올 때마다 사진이며 디자인이 훨씬 세련돼 졌고 힘을 보태는 고마운 이들도 늘었다.
둔촌아파트에 살았거나 사는 사람들에게 '상징 코드' 같은 존재인 아파트 내 기린 미끄럼틀이 안전 때문에 철거될 수밖에 없자 그는 특별한 이벤트를 열었다. 입소문만 듣고 주민 100여 명이 미끄럼틀 앞에 함께 모여 불꽃 놀이하고 손편지 적으며 아쉬움과 공감을 나눈 특별한 밤을 보냈다고 한다.
“3호까지 나온 잡지는 둔촌아파트가 재건축될 때까지 계속 발행할 겁니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의 ‘안녕’은 굿바이(Goodbye)인 동시에 하이(Hi)라는 중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재건축이 단절이 아니라 추억의 이어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았지요.”
차분차분 그간의 스토리를 들려주는 그를 바라보며 '똘끼'를 느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을 일'을 분리해서 둘 다 해내고야 마는 영특함, 바지런함도 엿보았다.
사실 나는 그의 사연을 건너 건너를 통해 전해 듣고 어느 토요일 오후에 무작정 그를 찾아간다. 그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따끈한 차 한잔 건네며 동네 언니 대하듯 술술 이야기 털어 놓는 그가 참 예뻤다. 그리고 에너지를 받았다.
끙끙거리기만 할 뿐 습작하지 못하던 내가 뭔가를 마음 가는 대로 쓸 수 있는 좋은 기운을 그에게 선물로 받았다. 땡큐! 이인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