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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상한새벽 Oct 13. 2022

#6. 나만 자기소개가 가장 힘들어?

퇴사, 띄어쓰고 이직


이직 서류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면접 일정이 하나 둘 잡히면서 급한 불은 껐다 싶었는데, 더 큰 산이 내 앞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면접이라는 이름의 산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보다 글이 편한 나에게는 면접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과제였다. 면접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조그만 휴대용 소화기 하나로 산불을 꺼야 하는 사람처럼 호흡이 가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과장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아이스 브레이킹이랍시고 반 앞에 나와 자기소개를 하도록 시켰던 새학기 문화만 아니었어도 나의 대인관계 자존감은 좀 더 높지 않았을까 싶다. 어렸을 때 타고나기를 외향으로 태어난 친구들이 반 전체가 들썩이도록 웃음을 주는 모습을 보며 즐기지도 못하고 교실 구석에서 초조하게 전날밤 써놓은 페이퍼를 암기하던 7~19살의 나를 생각하면 참 아련해진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를 해놓고도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주어진 시간을 대차게 말아먹곤 했다. 고개도 못들고 자리로 돌아가 앉는 사이 약간의 동정심과 당황스러움이 느껴지는 힘 빠진 박수 소리가 들리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어졌다.


종종 내 자신이 접근성 좋은 지상파 혹은 인기 많은 예능 채널 중간에 끼인 유료 다큐 채널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빠르게 바뀌는 화면 속에서 무언가 다른 것도 있었다는 건 알지만 그 누구도 주의 깊게 보지 않는 그런 채널. 우리는 공통점이 있었다. 끝나고 나서 우리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그 채널 이름이 뭐더라? 넌 이름이 뭐였지? 그마저도 물어봐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렇게 다년간의 숙련된 실패로 자기소개에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긴 나는 최선을 다해 그런 자리를 피해 다녔다.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는 호감을 얻어낼 자신이 없었고 오랜 기간 알았던 사람들에게는 그런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게 컸다. 적어도 내 사람들에게만큼은 멋진 사람이고 싶은 마음. 하지만 결국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리니 더이상 피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뽑혀야 한다는 간절함. 월세살이 한국 대표 K장녀라는 타이틀이 주는 압박감이란 상상 이상으로 컸다.


실패에 취약한 성격인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첫 면접에서 승부를 봐야한다는 엄격한 기준선을 두고 시작을 했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영화 기생충에서 최우식 배우가 분한 기우 역의 대사 중 "실전은 기세야, 기세!"라는 말이 있었는데, 한 번이라도 불합격을 받는 순간 내 기세는 정말이지 땅을 뚫고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런 이유로 첫 면접일이 정해지고 나서는 그야말로 잔잔한 패닉 상태였다. 답변을 미리 쓰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거울 앞에서 표정과 제스처까지 연습해 달달 외웠는데도 불안해져 학교에서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주던 일박이일 취업 캠프에도 참여해 컨설팅까지 받았다. 모의 면접 시간에서 따뜻한 피드백을 받고 나서야 찾아든 안도감에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캠프에서 받은 두꺼운 면접 메이크업을 지우지도 않은 채로 커튼 뒤에서 눈물 찔끔 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실전의 날 시종일관 억지스러운 쾌활함으로 나를 무장했고, 그것이 신입사원다운 패기로 받아들여졌는지 처음으로 자기소개에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다. 어쩌면? 하는 기대감이 됐다! 하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면 다들 웃으려나. 다행히 예감은 들어맞았고 인생 첫 취업 면접에서 바로 최종합격을 하면서 실패 뿐이던 내 자기소개 연대기에도 첫 성공담이 생겼다.


하지만 8년만에 준비하는 경력직 자기소개는 신입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도움 받을 곳도 없이 혼자서 한동안 참 막막했었다. 과거의 나에게서라도 힌트를 얻어볼까 싶어 노트북 '취뽀' 폴더 속 신입 자기소개 글을 다시 읽어봤지만 나 열심히 살았네... 자본주의 무서워 같은 의미없는 생각만 났을 뿐이었다. 나중에는 위인전 저리가라 할 정도의 이직 과정을 담은 온갖 유튜브 영상, 후기글을 찾아보며 이번에도 불안감에 온갖 명언과 숫자들로 나를 치장해보려다 면접 전날에야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를 뽑아줬으면 하는 간절함, 어디서나 인기스타가 되고 싶은 어린 소망은 여전히 품고 있지만, 단언컨대 나는 처음 본 사람도 빵 터지게 할 수 있는 언어의 마술사는 절대 아니었다. 면접이라는 경직되고 긴장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이 그랬다. 첫 회사를 그만두고 쉬는 동안 회사 밖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의 강점은 다른 데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끊임없이 나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며, 매번 좋지 못한 결과에도 다시 페이퍼를 준비했던 성실한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그래서 면접 대표 첫 질문에서의 목표는 이번 면접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준비했다는 인상을 주는 걸로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나라는 사람의 매력과 역량은 그 다음 질문들에서 차분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하자. 세월이 지난 게 다 나쁜 건 아니어서 어느덧 내 나이와 경력이 진지한 다큐의 화법도 어색하지 않게 차 있었다. 그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잔뜩 주고 있던 힘을 풀고 면접장을 드나들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 나를 좋게 봐 준 곳과 연을 맺어 약 일년 반 가량의 공백기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내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못 줬다면 다시 한 번 더 말하면 되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새벽입니다.


이걸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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