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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분홍 Jan 13. 2019

에필로그

우연에서 시작된 10년 크루즈 사랑

2010년 8월, 서부 지중해, 미국 로얄캐리비안사의 네비게이터 호, 나의 첫 크루즈 여행이었다.


2010년 7월 나는 몰타에 있었다. 지중해 섬의 짭조름한 바닷바람, 뜨거운 햇살, 특유의 바다 내음과 어디서 퍼져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꽃향기까지 어우러진 그런 날. 나는 몰타에 있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상황이 어려워지자 1년 이내의 무급 휴직자를 지원받았다. 하루 12시간이 넘는 업무량에 지쳐 퇴사를 고려하던 차에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얼른 손을 들었다. 모아놓은 돈에 맞춰 딱 6개월만! 

휴직 첫날 출국해서 복직 전날 귀국하는 일정으로 이 기회를 알차게 누릴 거라 결심하며 말이다. 




몰타의 노오란 거리에 서서 우리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했더랬다. 그때는 시답잖은 대화였고, 지금은 아닌 그런 이야기. 이름도 얼굴도 또렷이 기억나지 않는 그녀와의 대화가 이토록 생생한 것은, 그날의 대화 한토막이 내 삶을 바꿔놨기 때문이다. 한국인 여행객으로 우연히 만나 며칠의 일정을 함께했던 그녀는 내게 크루즈 이야기를 했었다. “내 평생소원은 크루즈를 타는 거였어. 여기는 유럽이니까 크루즈가 엄청 많대. 귀국하기 전에 꼭 탈 거야.” 누군가의 평생소원이라는 기운이 나의 발길을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말 나온 김에 제일 가까운 여행사에 들렀다. 망설이다 후회하기보다는 부딪친 뒤 수습하는 종류의 인간에게 내재된 추진력은 이런 것 아니겠는가. 젊은 여행사 직원은 크루즈에 대한 설명 끝에 친절하게도 서너 가지 일정을 추천해주었다. 알아나 볼까 하고 찾아온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일어섰으나, 열정적인 직원은 내 손에 기어이 브로셔를 들려주었다.


돌아와서 천천히 브로셔를 살펴보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크루즈 선사와 배는 다양했다. 크루즈가 뭔지도 모르는데 심지어 여러 종류라니! 검색을 해보았으나 한국 포털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에잇, 영문으로 봐야 하나. 우려와는 달리 크루즈 선사의 영문 홈페이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원하는 날짜와 지역을 넣으면 일정과 가격을 바로 보여주었다. 어라?? 영국에서 출발하는 7박 8일짜리 크루즈 금액이 30만 원 대라고?? 이건 당장 가야 해!! 


하지만 복병이 있었다. 영국 내의 주소가 필요했다. 자세히 읽어보니 영국인 한정 프로모션이란다. ‘아, 아무 주소나 적고 영국 산다고 할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영국 여권번호를 미리 입력해야 했다. 알고 보니 출발 국가에 따라 고객 유치 차원에서 프로모션을 제공하기도 한다고.


난 영국인은 아니었지만 의지의 한국인! 미지의 세계에 눈을 떴는데 포기할쏘냐. 나에게 적용되는 프로모션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스페인 여행사를 발견했다. 게다가 한 달 뒤 출발하는 서부 지중해 크루즈가 50% 할인행사를 한단다. 이건 내가 꼭 가야 한다는 계시였다. 그런데 누구랑 가지?? 급박한 여행의 동행인은 가족이 최고지! 당장 이 기쁜 소식을 한국에 알렸고, 4주 뒤에 언니와 엄마를 로마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라찌에 Grazie(감사합니다)!! 


서부 지중해 크루즈 여행은 로마에서 출발했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해안도시를 거쳐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크루즈 여행은 십 년 동안 아시아, 북미, 남미, 유럽, 호주, 뉴질랜드와 그 대륙을 둘러싼 대서양, 태평양, 지중해까지 다양한 빛깔의 바다도 함께했다. 크루즈 여행의 가장 독특한 점은 언제나 바다를 체험한다는 것이다. 나와, 크루즈와, 대륙과, 바다의 서로 다른 빛깔이 어우러져 색다른 시간을 선사해줬다. 다음 여행도 말할 것 없이 크루즈일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이번 여행도 크루즈로 가? 뭐가 그렇게 좋아?” 


동일한 궁금증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는 도움을, 이미 크루즈의 매력에 흠뻑 빠진 분들과는 공감을 나누길 바라며 하나씩 풀어볼 예정이다. 같이 동행하실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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