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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략가K Jul 05. 2020

#19. 어머니의 찬드바오리

반대방향으로 걷기

IX. 8일차 자이뿌르

  32. 물의 신이 있는 찬드바오리


  대학생때 기업공부를 굉장히 많이 했었다. 공대를 다니면서 경영학도를 목표로 마케터를 꿈꿨다. 학점이 달려 복수전공을 할 수 없는 나에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공부는 이론적인 공부보다는 기존의 있는 기업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다양한 미래의 전략을 짜는 것이 내가 대학생때 집중했던 공부였다. 물론 나의 생각이나 내가 생각했던 것이 현실성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걸 기획서로 남기는 과정에서 사고하고 로직을 연습하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인도의 물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을 짜는 것이었다. 한 회사가 물을 인도에 팔자라는 내용보다는 물을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팔아서 운영까지 전략이었다.  여기서 부터 처음으로 인도의 기후적인 특성과 경제적인 특성의 중요한 요소를 알게 되었다.

[인도의 많은 강수량과 물부족 현상]

  인도는 수자원이 풍부하다고 말 할 수 있지만 물부족 국가였다. 비가 많이 내렸고 우리나라 처럼 1/4의 국경이 해안과 근접해 있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인도는 물이 부족해서 병원들의 수술치료가 어렵고 마실물도 부족했고 심지어 내가 여행하는 도중에 아무 물이나 마신다면 질병에 쉽게 노출되는 등, 물과 관련해서는 취약한 면을 보이고 있었다.

[몬순강수량과 인도의 경제 발전 관계]

  더군다나 인도의 경제는 인도의 강수량과 크게 연관성이 높았고, 강수량이 많은 해에 농업부문의 성장률이 높았었다. 몬순강수량이 많으면 이는 적은 농업생산량으로 식품 가격 상승률이 높아지고 소비재에 대한 소비가 줄어들지만 이와 반대로 강수량이 많아지면 농업생산량이 많아져 소비자의 소비가 증진되는 선순환 과정이 생겨 경제에 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질 좋은 식수는 인도의 경제를 발전에 기여]

  인도의 수처리 관련 동향은 대부분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었고 소규모 지역과 시골지역은 수처리에 관해서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각 가정마다 개별 정수기가 있었지만 이러한 정수기는 인도의 1~4% 정도의 소득을 유지고 있는 부호나 누릴 수 있는 혜택 이었다.


  기회를 찾고자 한다면 물 위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부분과 구매력 부분에서 저소득층에서도 해결 될 수 있다면 좋은 시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고 특정회사가 수처리에 관련된 모든 Process를 진행 시킬 수 있는 역량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인도의 수처리 정화 시스템]


  몬순때 강수량이 많은 인도의 각 모든집 지붕위에 수조를 설치하고 정화시스템으로 정화를 시켜 매번 필요할 때마다 물을 마시거나 사용 할 수 있는데, 물을 정화시킬 때 사용되는 필터나 시스템을 각 마을단위로 계산해서 금액을 받을 수 있다라는 것이다. 인도인이 한달에 물을 위해 지불하는 돈이 2달러라는 얘기를 기반으로 마을단위로 이를 모아 큰 시스템을 설치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고 한번 설치하게 되면 계속해서 정화시스템 유지 보수를 하여 비지니스모델을 말 수 있을 꺼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인도인들이 질이 떨어지는 물로 질병과 고통으로 해방 시킬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진지해진 이유는 두꺼운 인도여행 안내책 반페이지나 차지했던 찬드바오리는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찬드바오리는 나의 생가과 너무 유사했다. 계단식 우물이 있고 역사각뿔의 계단식 우물이 있었던 이유는 우기에는 저수지에 가까운 역할을 했고, 계단은 지하7층 깊이는 수위와 상관없이 물과 도달 할 수 있었떤 방법중에 하나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끌림은 인도에서도 오래전부터 물을 모을 공간이 필요했다는 말에 나도 공감했다라는 증거였을지도 모르며, 1100년이 지나도 그 생각을 비슷하게 꿈을 꾸는 사람이 있었다는 꿈의 연결이었을지도 모른다.


33. 인도 택시 기사의 독특한 매력

   

   자이뿌르 근처에 있는 나하르가르성 그리고 암베르성과 자이가르성에 있는 초대형 대포도 모두 보고 싶었지만 찬드바오리와는 정반대였다. 그 모든 걸 맞바꿔 찬드바오리에 가기로 결심을 했다.


  오전 6시에 자이뿌르역에 도착하자마자 책속에 나오는 찬드바오리를 간다는 지프를 애타게 찾았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자세한 정보도 없이 책속에 있는 지프를 꺼낼수도 없이 책밖은 항상 실전이었다.  책을 덮고 찬드바오리를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 고민을 함께 하는 이는 택시기사들이였다. 그리고 날 자이뿌르에 온걸 환영해줬다. 여행 8일차, 짬에서 나오는 흥정으로 택시기사를 상대하는 건 더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5,000루피(10만원) 부터 시작된 흥정 가격은  4,000루피에 갈 수 있는 다른 택시기사를 찾았다. 그 또한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자기는 찬드바오리 뿐만 아니라 몽키템플 시내투어 등등 여러 곳을 데려다 줄 수 있다고 했다. 4,000루피이면 내가 계획한 하루 생활비의 4배 정도 였지만 난 그정도면 괜찮다 생각했다. 그리고 자이뿌르 역 앞에서 한국인들이 나오면 약간의 찬드바오리를 같이 가자 흥정도 시도해봤지만, 지금 이 순간의 자이뿌르에서 찬드바오리를 가고 싶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택시기사는 찬드바오이라는 이름보다는 아바네리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그 말은 즉슨, 찬드바오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던거 뿐만 아니라 예전에 갔다 온적이 있었던 경험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택시기사도 아바네리를 가고 싶어했다. 물론 협상을 위한 선택이었는지 4,000루피를 받게된다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4,000루피로 구두 계약을 완료하고 찬드바오리로 출발했다.


  계약금은 1,000루피정도 지불하였고, 그걸로 기름을 채우는 택시기사를 바라보면서도 택시기사를 믿기가 어려웠다. 아직도 나는 인도라는 나라를 마음속으로 경계하고 조심하는 습관을 먼저 생겼다. 물론 좋은 인도여행에 대한 스토리도 많지만, 이와는 다르게 끔찍한 상상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택시를 탄 상황에서도 아바네리쪽으로 정확히 가고 있는지는 태양의 신 수리야가 알려주었다.


 자이뿌르에서 95km 정도 떨어진 곳이라서 택시기사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가는데 거의 한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이었지만 택시기사는 돈이 생겨서 신이 났는지, 중간에 짜이파는 곳에 들려 자이를 마시기를 원했다. 어차피 5루피 밖에 되지 않는 것에 택시기사가 선심이라도 쓰듯 건네었다.

  짜이는 분명 커피와 같이 사람을 신이 나게 만든는 동시에 각성의 역활도 하는 것같았다. 짜이의 힘을 받아 택시기사는 가는 동안 입을 다물지 않았다.  한국에서 온 나의 인적 사항을 통해 그에게 있던 많은 한국 여행자들의 특징과 전에 함께 했던 고객중에 여성 손님과의 러브스토리(?) 까지 담지 못하는 내용등의 디테일한 이야기 까지 해주었다. 그런 이야기에 적당한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그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내어 냈다. 그렇게 친밀감을 쌓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였다.


  얼마 가지 않아 나도 한국에서 뛰어난 드라이버라고 소개하자. 나는 이 스틱을 사용하는 차를 운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깔보기도 하였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우린 자리를 바꿔 앉자고 제안하고 그의 운전대를 잡았다. 사실 조금 위험했지만 괜한 허세감에 주눅들어 있는 척을 하지 않고 한국의 운전대와는 반대의 운전대로 운전하였다. 몇몇의 위기가 있었지만 다행히 사고는 없었고 그렇게 장난을 치듯 드라이브를 하였다.


  어느 허름한 시골동네에 도착하여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는거 처럼 보이는 동네에 덩그러니 날 내려 주었다. 힌디어로 써있는 표지 판을 나의 바람으로 "찬드바오리"라고 자동 번역 되어 들렸다.

34. 물의 여신들은 어디갔을까?


  물이 넘치게끔 하늘에서 내려오지만 물이 부족한 나라!

  누구라도 이런 물을 잘 활용하고 싶었지 않았었을까?

  모든 사람들이 비가 내릴 때마다 입을 벌리고 하늘을 향하고 있어야 했을까?

  누군가 이런 인도의 생활을 하는 인도인을 가엽게 여긴다면 신이 있었지 않았을까?


  인도의 많은 물의 여신들은 어머니와 유사하게 표현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파(Apah) 라는 물의 여신은 마치 어머니 처럼 도움을 베풀을 축복을 나눠주고 물을 마시게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아파(Apah)는 복과 건강을 이땅에 내리고 해악을 없애준다는 어머니와 사랑과 같았다.


  아파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장소로 들어간다. 찬드바오리에 올라서자마자 나의 두눈은 이 깊은 우물속으로 빠져들아갈 듯했다. 햇살은 뜬지 얼마 되지 않아 사선으로 우물을 비추고 있었고 찬드바오리를 모두 비추기에도 햇살은 모자랐다.

   

  한 바퀴를 돌면서 구경을 하고 있었을 때, 찬드바오리를 지키는 사람처럼 보이는 분이 가이드 투어를 권장했다. 물론 2달러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분은 입장료 없는 여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시는거 처럼 보였다. 기꺼이 2달러를 지불할 테니 소개해 달라고 했다.


  8~9 세기 오래된 아바나가리와 아바네를 통치했던 니쿰바 왕조의 킹 찬드라왕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사진에 보이는 거처럼 동서남북 모두 계단형태로 만들어졌지만 내가 생각해냈던거 처럼 하늘의 비를 담아 내기 위해서 이런 형태를 만들었던것이 아니라, 저 깊은 곳에서 지하수가 올라왔다고 한다. 물론 우기 때 내려온 물은 고스란히 찬드바오리에 담아지고 생활용수로 사용 했을 것이라고 예상은 할 수 있었다.

  다른 쪽과 다르게 북쪽면에 있는 곳은 왕과 왕비의 여름 휴가지라고 소개해주었는데, 그들의 발코니와 때로는 물을 받아서 목욕을 했다라고 전해 주었다. 또한 때때로 축제를 벌이는 날에는 모든 계단형태에 시민들이 앉아서 축제를 같이 즐겼고 왕과 왕비도 함께 할 수 있는 구조였다고 한다.

  가이드님은 추가적으로 문화 유적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덫붙여 설명해주었다. 반은 남자 반은 여성인 조각상과 그리고 쉬바신/가네셔의 조각상등 어찌된 영문인지, 왜 여기에 이런 조각들이 출몰이 되는지는 여기 가이드님도 잘 알고 있지 못하는 듯했다. 다만 이런 조각상들이 나왔고, 여기 있을 뿐이었다. 여기의 역사적 가치는 아직 어떻게 증명 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을 일일이 증명하기에는 인도는 너무 넓었고 많은 문명과 사회 그리고 문화들이 뒤섞여 있었다. 다만 마치 선으로 연결되지 않은 듯한 역사위에 서 있었고, 아직 고립된 역사의 가치처럼 느껴졌다. 모든 조각물과 예술품 그리고 유적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텐데 고립된 역사는 듣고 싶어도 들리지 않았다.

  오렌지 몇 개를 사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택시기사에게 권했지만 택시기사는 배도 안고픈지 거절했다. 그렇게 다시 자이뿌르로 돌아갔다. 잠시 눈을 깜빡였을 뿐이었는데 택시기사는 몽키 템플 앞에서 나를 깨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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