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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주 Oct 11. 2024

한국 첫 노벨문학상 탄생,  제2의 '한강의 기적'

汉江에서 韩江에 이르기까지

아침에 일어나니 현관문 앞에 배달된 신문을 누군가가 신발장 앞으로 들여다 놓은 게 보였다.

1면에는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의 작품을 쓴 한국 작가 한강이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식이 대서특필 되어 있었다.


'한동안 떠들썩할 일이 생겼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침을 드시려 식탁에 앉은 아빠가 신문을 보시며 내게 말했다.

"우리 딸이 번역을 했어야 하는데, 노벨문학상 작품 말이야!"

나는 가벼운 농담으로 던진 듯한 아빠의 말에,

"내 한평생을 바쳐도 벅찬 일일 거야"라고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그건 내 진심이었다. 내 전공인 중국어로 된 책을 모국어인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모를까.

한국의 문학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라면, 한 줄 한 줄 번역하는 일이 또 하나의 창작과 같은 예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해서 보통 문학 번역은 '제2외국어->모국어' 방향으로 가능한 번역가에게 작업을 많이 맡기는 것 같다.   


<채식주의자>의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가 한강 작가의 책에 담긴 한국적인 정서를 영어로 잘 옮겨주었기에,

세계인들에게도 이 작품이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원작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여과 없이 제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번역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데버라 스미스가 번역한 <채식주의자> 영문판 표지                             출처: 한겨례 신문


서둘러 아침 PT를 받으러 헬스장으로 향한 나는 러닝 머신을 뛰다가 앞에 거치된 작은 TV 화면에서

쉴 새 없이 다뤄지는 노벨문학상 수상 뉴스와 인터뷰를 보았다.

문학계에서도, 한강 작가의 가족도, 심지어 한강 작가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전후 경제적 성장을 이룬 '한강의 기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다고 열광하는 분위기였다.

K-POP, K-FOOD로 이뤄낸 눈부신 성과에 이어 문학계에서도 드디어 한국의 저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한국 최초, 아시아 최초 여성 작가로서의 이번 수상은 더욱 획기적이라고 언론은 떠들어댔다.




한강 작가는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본인조차 수상 사실을 발표 15분 전에 연락을 받아 알게 되었다고, 저녁에 아들과 차를 한잔 하며 조용히 축하를 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보인다.  너무도 소박한 축하 자리처럼 들리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선물 같은 소식으로 가족과 단란하게 보내는 그 시간은 얼마나 축복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10년이면 많게는 3권, 적게는 2권 정도의 소설을 쓴다고 한강 작가는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한 줄 한 줄, 단어 하나하나를 고를 때 영혼을 바쳐서 선택하며 긴 호흡으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작가는 참으로 인내력을 요하는 직업인 것 같다.


학생이던 시절 나도 문학을 좋아했고, 시험기간이 끝나거나 재충전이 필요할 때면 서점을 들려 책을 왕창 구매해오고는 했다. 통번역 공부를 하러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도, 문학번역가를 꿈꾸며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클래스를 수강하기도 하고 교수님들께 출판 번역의 현황을 여쭤보기 위해 진로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출판 업계는 늘 불황이며, 사양 산업이 된 지 오래다', '돈을 벌기 힘들다'는 식의 겁을 주는 비관적인 말들 뿐이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실제로 내가 느끼기에도 책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니아층만 있을 뿐. 똑같이 소득이 불안정하고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길이라면, 나는 '문학 번역'과 '음악 창작' 중 후자를 선택했고, 지금은 통번역 일로 용돈을 벌어가며 음악을 해나가고 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은 늘 위대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과 언론은 특정한 수상 소식에 반응하게 되고, 이제 와서야 서점의 책들이 동이 나고 품절 대란이 일어나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모두가  하루아침에 호들갑(?)을 떠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웃기기도 하고 진작 좀 관심과 응원을 보내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원망스럽기도 하다. 잠깐 출판 업계에 관심을 갖고 기웃거렸을 때도 주변 사람들은 나를 만류했고,  대기업을 그만두고 음악을 하고 싶어 했을 때도 냉소적인 태도로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다. 나의 작은 경험에 빗대어 한강 작가의 지금까지의 긴 작가 인생을 상상해 보았을 때, 불황인 출판 업계 상황에서 본인이 믿는 신념에 관하여, 스스로가 바라보는 세상의 아픔에 관하여 글을 쓰는 그 시간들은 어떠한 무게였을까 싶다. 그래도 여러 책들이 알려지고 노벨문학상도 수상의 해피 엔딩들이어서 다행이다. 나는 모든 고독한 예술가들의 끝은 해피 엔딩이었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소명을 선택하고 살아간다. AI, 챗GPT 등의 기술도 중요하고, 환자의 아픔을 경감해 주고 목숨까지도 살려내는 의료 기술도 중요하며, 그 외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해주는 일들로 이 세상은 조화롭게 돌아간다. 문학, 음악, 미술, 체육 등의 예체능 분야도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는 늘 변함이 없다.


현대 중국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쉰(鲁迅)'도 사실은 의사였다. 그는 중국인들의 병든 정신을 고쳐야 한다며 이후 문학의 길을 선택한다. 대만의 인기 가수 '뤄다요우(罗大佑)'도 의사 출신이다. 나는 신체적인 아픔을 직접적으로 고쳐주는 의술이 있다면,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치유해 주는데 예술이란 것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느 날 문득 마음에 들어오는 노랫말, 나의 일기장을 누가 훔쳐본 것 같은 에세이, 내가 꿈꾸는 것을 먼저 실현해 준 듯한 소설 등, 가장 은밀한 공간에서 인간이 위로를 받을 수 있고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영역, 신이 주신 선물의 영역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이와 같은 분야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응원을 받을 수 있길 지금까지 바라왔고, 앞으로도 바란다. 고통에서 창작이 나온다는 신화 같은 핑계로, 예술가들의 고뇌를 당연시 여기고 지나쳐버리지 않으면 좋겠다.   

  



헬스를 하며 TV를 보는 내내 많은 생각이 들었고 글로 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기쁨, 위로, 원망, 감격, 자부심 등 다양한 감정이 스쳐 지나가서 그런 것 같은데, 오랜만에 다양한 감정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 한강 작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 소식이 들려와서 반갑고 자랑스럽다.



#한강 #채식주의자 #노벨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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