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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Jun 29. 2024

가만히 있기가 참 힘들다

얼마 전 회사에서 임원진 앞에서 발표를 할 일이 있었다. 내가 마지막 발표자였는데 이상하게도 앞선 발표자들이 모두 하체를 전혀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꼿꼿이 서서 발표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발표 시간 내내 난 저렇게 가만히 서 있지 못할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역시나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비록 화면과 단상 사이의 짧은 거리를 왕복한 정도이긴 하지만, 내가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를 하면서도 의식할 수 있었다.


나는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회사에서는 급한 일을 끝내놓고 시간이 나면 잠시 쉬는 게 아니라 의미 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메일함 정리를 하는 등 뭔가를 끊임없이 한다. 그렇게 구부정한 자세로 계속해서 PC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으니 일자 목 증상도 생긴 것이리라. 주말에 집에서 쉬고 있으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 되는데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할 때도 있다.


뭔가를 하고 있으면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전화 통화를 길게 하거나 생각에 빠져 있을 때도 한 자리에 앉아 있거나 서 있지 못하고 계속 왔다 갔다 하는 버릇이 있다. 이러한 버릇 때문에 '정신 사납다'는 아내의 잔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나마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는 가만히 앉아있는 편이긴 한데 길게 앉아있지는 못하는 것 같다.


언젠가 명절 때 고향 집에서 어머니의 행동을 보고 이러한 나의 성향에 유전적 요인도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음식 만들고 차례 준비하고 식사 준비하고 방 청소하는 등의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 같았는데도 어머니는 쉬지를 못하고 계셨다. 보다 못해 '이리 와서 앉아서 좀 쉬시라'라고 말씀을 드려도 계속 왔다 갔다 하시며 이런저런 일을 하셨다.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는 성격이다. 가장 흔하게는 부지런해 보인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 근면성실한 태도는 과거 산업화 시대에 우리 경제의 눈부신 발전을 이끈 원동력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어른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독서광이었던 스탈린이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되듯이, 방향이 틀려먹은 부지런함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 나아가, 개인적으로 연관성이 그렇게 높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몇몇 주변 사람들이 내가 끊임없이 움직이니 체형이 마른 편이라고 생각하는 탓에 '기초대사량이 높아서 좋겠다'는 부러움과 '많이 먹고 덜 찌기 때문에 오히려 몸의 에너지 효율이 나쁜 거다'라는 농담 섞인 저주의 대상이 동시에 되기도 한다. 사실은 내 몸무게는 정상 체중을 약간 초과하는 수준인데도 말이다.


요즘에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나의 성격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일부러라도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머릿속을 비우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뇌를 쉬게 해 주면서 '멍 때리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창의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많이 나오고 있는데 나도 어느 정도 이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 또한 계속 이런 식으로 사는 습관을 유지한다면 은퇴 후의 삶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겠다는 두려움도 영향을 미쳤다. 엄밀한 의미에서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도 오후 3~4시 정도에는 무조건 한 번씩 일어나서 회사 건물 내를 10분 정도 산책을 하고 오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과학 문명이 이렇게까지 발달했는데도 아직 인간 뇌의 많은 부분이 구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들었는데, 정보화가 상당히 진척된 세상에서 나의 뇌도 산업화 시대에 맞는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부지런하게 계속 뭔가를 하는 태도가 우리 사회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쉼, 휴식 등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때쯤이면 나도 좀 더 가만히 있기가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v.daum.net/v/Xs0ru5QS6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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