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어로 함께 읽는 윤동주의 '새로운 길'
폴리네시아어족에 속하는 하와이어는 한때 하와이 왕국의 공식 언어이자 일상어였습니다. 아름다운 모음과 간결한 자음 체계를 가진 언어로 하와의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외세의 유입과 정치적 격변으로 인해 하와이어는 심각한 소멸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는 소수 민족 언어가 겪는 전형적인 고난의 역사이자 현재 티베트어, 아이누어 등 다른 언어들이 겪고 있는 언어적 탄압의 선례를 보여줍니다.
1778년 제임스 쿡 선장의 방문 이후 서구 문명이 유입되면서 인구 급감과 함께 영어의 영향력이 증대되었습니다. 그리고 1893년 미국인들에 의한 하와이 왕국 전복과 임시정부 수립은 언어 탄압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896년, 하와이 정부는 공립 및 사립학교에서 하와이어 사용 및 교육을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영어를 교육의 유일한 매체로 지정한 것입니다. 이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와이어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고 처벌받는 결과를 낳았으며 언어에 대한 사회적인 낙인을 찍게 됩니다. 부모세대가 자녀에게 하와이어를 가르치길 꺼리게 되는 겁니다.
그 결과, 20세기 중반까지 하와이어는 니하우 섬과 같은 극히 고립된 지역이나 노인 세대의 가정 내에서만 사용되는 언어로 전락했습니다. 세대 간의 언어 전승이 완전히 단절되면서 심각한 소멸 위기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에 하와이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납니다. 민족 정체성 회복을 위해서 하와이어를 살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1978년에 공식 언어로 재지정했습니다. 영어와 함께 하와이의 공식 언어가 된 것입니다. 언어 부활을 위한 제도가 발판이 되었습니다. 1983년에는 마오리족의 코항카 레오 운동을 본받아서 하와이어를 몰입해서 교육하는 푸나나 레오가 설립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을 통해 언어를 되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푸니나 레오는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1987년부터 하와이 주 공립학교 시스템 내에 하와이어 몰입 교육 프로그램은 초, 중등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제는 하와이 대학교 마노아 캠퍼스에 하와이어 학위 과정도 개설되고 하와이어 언어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공적 사용이 점점 넓어지는 것입니다.
하와이어의 부활은 주권과 정체성 회복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탄압과정에서 거의 소멸할 뻔했던 언어가 시민 사회와 교육 시스템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와이어에는 Aloha, pono, Mana 등의 폴리네시아 철학적 개념이 언어 구조와 어휘에 뿌리 깊이 내리고 있습니다. Aloha는 사랑, 평화, 연민을 뜻하고 Pono는 정의, 올바름, Mana는 초자연적인 권위와 힘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하와이의 여신인 펠레가 언어에도 깃들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펠레 여신은 하와이 신화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지 생성과 파괴의 양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Pele라는 이름 자체가 용암, 화산, 분출 등을 지칭하는 하와이어 어휘로도 사용됩니다. 관광이나 문화 행사, 예술 작품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펠레 여신 자체가 자연과 인간을 잇는 매개로 작동합니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주는 셈입니다.
그런데 번역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어순도 완전히 다릅니다. 한국어와 반대라고 보면 됩니다. 동사-주어-목적어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AI는 문장을 구조에 맞춰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어와 음운 숫자도 다릅니다. 하와이어는 자음 8개, 모음 5개로 이루어져 잇습니다. 한국어의 복잡한 자음/모음 체계를 극복해 내는 것이 주요 과제입니다. 이는 발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AI는 단순한 음운으로 복잡한 한국어의 뉘앙스를 표현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거기다 특수문자가 있습니다. 하와이어에서 '가 들어가는 것을 오키나라고 합니다. 이는 성문 파열음입니다. ¯은 카하나우라하여 모음 장음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들어가면 단어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버립니다. 이런 과제를 AI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Keʻa i ke kahawai, a i ka ulu lāʻau
Keʻa i ka puʻu, a i ke kauhale
Hele i nehinei, a e hele nō i kēia lā
Koʻu ala, he ala hou
Pua ka pua hōkūleʻa, lele ka manu
Hala ke kaikamahine, ala ka makani
He ala hou mau koʻu ala
I kēia lā... i ka lā ʻapōpō...
Keʻa i ke kahawai, a i ka ulu lāʻau
Keʻa i ka puʻu, a i ke kauhale
생명의 물을 건너, 깊은 숲으로 들어가네
성스러운 언덕을 건너, 정겨운 마을로 들어가네
어제의 여정은, 오늘 의미를 담아 계속되네
나의 길은, 드러난 새로운 길이네
꽃들은 찬란히 피어나고, 새들은 날아올랐네
사랑하는 소녀는 떠나고,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네
이것이 바로 내가 설 새로운 길이네
오늘 서 있으니, 내일은 드러나리라
생명의 물을 건너, 깊은 숲으로 들어가네
성스러운 언덕을 건너, 정겨운 마을로 들어가네
인공지능(AI)이 한국어 시(詩)를 하와이어로 번역하고, 다시 한국어로 역번역하는 과정은 단순한 언어 규칙의 적용을 넘어선 심층적인 '변환 규칙'을 따릅니다. 여기서 '문법'이란 AI가 두 언어 사이의 의미론적, 통사론적, 그리고 문화적 간극을 어떻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는지에 대한 일련의 원리를 의미합니다. 본 장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 분석을 통해, AI가 이질적인 언어 쌍 사이에서 의미를 증폭시키거나 재해석하는 과정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신경망 기계 번역(NMT) 모델은 방대한 학습 데이터를 통해 언어 간의 패턴을 파악하지만, 시와 같이 함축적인 텍스트를 번역할 때는 대상 언어의 표현 방식과 문화적 관습에 맞춰 의미를 **'재구성'**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주요 재구성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의미론적 증폭 (Semantic Amplification): 원문의 단어에 내재된 잠재적 의미나 연상되는 이미지를 대상 언어의 표현을 통해 더욱 풍부하게 확장하는 현상입니다. (예: '내' $\rightarrow$ '생명의 물')
통사론적 재구조화 (Syntactic Restructuring): 원문 언어의 문장 구조를 대상 언어의 자연스러운 통사 구조에 맞게 변형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문장의 구성 요소가 추가되거나 순서가 바뀌며, 문장이 분리되기도 합니다.
특정성 상실 및 일반화 (Loss of Specificity & Generalization): 특정 문화권에 고유한 구체적인 명칭(예: '민들레')이 대상 언어에서 일반적인 상위 개념(예: '꽃들')으로 대체되거나 치환되는 경향을 말합니다.
시적 재해석 (Poetic Reinterpretation): AI가 원문의 운율, 이미지, 정서 등을 구현하기 위해 원문에 없는 새로운 비유나 철학적 함의를 추가하여 텍스트를 **'재창조'**하는 모습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 번역 사례를 통해 AI 번역의 '문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한국어 원문: "내를 건너서 숲으로"
하와이어 역번역: "생명의 물을 건너, 깊은 숲으로 들어가네"
분석: 원문의 '내'(개울)는 역번역 과정에서 하와이어의 문화적 맥락(물의 중요성)이 반영된 **'생명의 물'**로 증폭되었습니다. 또한, 원문에 없던 '들어가네'라는 능동적인 동사가 추가되어 통사론적 재구조화가 일어났습니다.
한국어 원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하와이어 역번역: "꽃들은 찬란히 피어나고, 새들은 날아올랐네"
분석: 구체적인 '민들레'와 '까치'는 역번역에서 **'꽃들'**과 **'새들'**이라는 일반적인 복수형으로 대체되어 특정성을 상실했습니다. 대신 '피고'가 **'찬란히 피어나고'**로, '날고'가 **'날아올랐네'**로 변하여 시적인 아름다움과 역동성이 증폭되는 시적 재해석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어 원문: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
하와이어 역번역: "어제의 여정은, 오늘 의미를 담아 계속되네 / 나의 길은, 드러난 새로운 길이네"
분석: 단순한 시간적 연속성('가고 오늘도 갈')이 **'오늘 의미를 담아 계속되네'**라는 철학적이고 심오한 의미로 재해석되었습니다. 원문의 두 행이 역번역에서 두 개의 독립적인 문장으로 분리(통사론적 재구조화)되었으며, '의미를 담아', '드러난' 등 추상적인 개념이 추가되어 함의가 증폭되었습니다.
한국어 원문: "오늘도…… 내일도……"
하와이어 역번역: "오늘 서 있으니, 내일은 드러나리라"
분석: 원문의 단순한 시간 나열이 **'오늘 서 있으니, 내일은 드러나리라'**는 운명론적이고 계시적인 문장으로 변모했습니다. 이는 AI가 시의 전체 맥락과 정서를 파악하여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을 시도했음을 보여줍니다.
AI의 한국어-하와이어 번역은 뛰어난 '창조성'을 보이지만, 동시에 다음과 같은 미묘한 차이와 한계를 드러냅니다.
AI의 '창조적' 번역: 역번역된 한국어 텍스트는 원문보다 훨씬 더 서정적이며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를 부여합니다. 이는 AI가 원문의 정서와 주제를 바탕으로 대상 언어의 표현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텍스트를 **'재창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문화적/언어적 거리의 영향: 한국어와 하와이어처럼 언어 간 거리가 멀수록 AI는 직접적인 대응어 대신, 의미를 일반화하거나 대상 문화권에 더 적합한 표현으로 **'의역'**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정보의 손실과 획득: 구체적인 특정성('민들레')은 손실되지만, 새로운 시적 깊이('생명의 물', '드러난 길')가 획득됩니다. 이는 AI 번역이 단순히 정보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정보를 재분배하고 재구조화하는 복합적인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블랙박스'의 해석: AI가 어떠한 알고리즘적 판단을 통해 이러한 의미 변환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여전히 '블랙박스' 영역에 남아 있습니다.
AI가 한국어를 하와이어로 번역하는 과정은 의미론적 증폭, 통사론적 재구조화, 시적 재해석이라는 복합적인 '의미 변환의 문법'을 따릅니다. 이러한 '문법'을 통해 AI는 단순한 언어적 치환을 넘어, 원문의 본질을 유지하려 하면서도 대상 언어의 문화적 맥락과 표현력을 활용하여 텍스트를 **'재창조'**하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AI 번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별 언어의 문법을 넘어, 언어 간의 상호작용과 의미 변환을 지배하는 AI 고유의 '번역 문법'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