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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멍 불멍, 그리고 멍

by 러브블랙홀

아파트 창가를 개울 물가로 옮깁니다

층간소음 없는 일 층 일 열에서

송사리 놀이터의 숨바꼭질을 직관합니다


사무 의자를 접고 접이 의자를 펼칩니다

일이 눌어붙은 엉덩이 털고 앉아

장작들 불꽃쇼에 기름 한통 부어줍니다


그때마다 쑤셔둔 머리통 잡동사니들

초침보다 느긋하게 물길 따라 불길 따라

서랍으로, 휴지통으로 이동합니다


왜, 물 앞에선 불 앞에선

이리 단순하게 정돈되는 걸까요?

그게 사람 앞에선 안 되는 걸까요?


잡념일지 관념일지 모를 생각이

이끼 낀 돌틈 혹은 마르지 않은

어느 장작 틈에 끼여 잠시 실행을 늦춥니다


문득, 스마트폰과 약정한

거리 두기를 해제하고

'멍 때리다'를 검색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다


그리고 하나 더 검색합니다

'멍'

-맞거나 부딪혀 맺힌 피

-일로 입은 마음의 상처


불현듯 가라앉았던 상처들이

수면 위로 꾸역꾸역 올라옵니다

저는 잠시 평온을 잃고

아물지 않은 자국들에 몸을 긁습니다


사람 일을 정리하는 건 참 어렵습니다


무심히


잔잔한 개울에 돌 던지듯

모난 상처 한 번 던져나 봅니다


꺼져가는 모닥불에 잔가지 넣듯

오랜 멍자국 하나 던져나 봅니다


졸졸졸 졸졸졸

물소리가 말갛게 닦아 줍니다


타다닥 타다닥

불꽃이 발갛게 소독해 줍니다


나는 지금 마음 멍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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